[시간의 얼굴, 글자의 표정] 1부. 담배 패키지


상적인 물건들은 그 일상성 때문에 사용자의 특별 대우로부터 얼마간 멀어지는 부당함(?)을 겪곤 합니다. 새것이 일상화되면 ‘헌것’으로 변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헌것에는, 새것에는 없는 무언가가 깃들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역사성’이지요. 현명하고 사려 깊은 분들은 헌것, 옛것, 지난 것 들을 아낍니다. 그 덕분에 신제품이 애장품으로, 기억이 추억으로, 과거가 역사로 승격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보기 힘든 어떤 제품의 형태, 글자, 시각적 요소들은 그 제품을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당시의 감각과 문화를 엿보게 해주지요. 윤톡톡에서 ‘시간의 얼굴, 글자의 표정’이라는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첫 순서는 담배 패키지입니다. 애연가로 유명한 소설가 박범신 씨는 “담배는 비의적인 영혼과 다양한 문화, 팍팍한 삶의 언저리에 두루 놓여 있다”라고 썼습니다.(한겨레신문 2012년 6월 5일자 칼럼) 누군가에게는 궐련 스무 개비가 고스란히 ‘감성’ 스무 개비가 되기도 하는 법이지요. 


사물을 통한 정서적 감화는 그 사물만의 시각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담배 패키지에 쓰인 글자가 어떤 형태로 변화해왔는지 살펴봄으로써 시대별 사회적 분위기나 문화를 짐작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호주머니 속의 문화, 담뱃갑


[표 1] 1945년부터 2000년대 이후까지의 시대별 담배 패키지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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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담배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618년(광해군 10년) 조선 땅에 담배가 들어온 것을 그 기원으로 보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요. 최초의 국산 담배는 1945년 9월 ‘조선군정청 전매국’에서 발매한 ‘승리’입니다. 8월 15일 해방의 기쁨을 기념하며 제작되었지요. 10개비들이로 가격은 3원이었다고 합니다. 한국담배인삼공사가 민영화한 지금의 KT&G가 해방 이후부터 발매해온 담배는 150종 이상이라고 하는데요.그러고 보니 담배는약 400년간 여러 가지 표정(패키지)을 짓고서 우리 일상과 함께해온 문화 코드라는 생각이 듭니다. 


담배 패키지는 시대에 따라 디자인뿐 아니라 제품 네이밍에서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단순 명사부터(개나리, 진달래, 거북선, 남대문, 나비 등등) 당대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표어적 특징(건설, 새나라, 새마을, 승리 등등), 그리고 현대에는감각적인 아이덴티티 인지를 목적으로 고려되었을 영문 이름들(레종, 시즌, 람보르기니, 보헴시가 등)까지, 실로 다양한 제품명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제품명을 좀 더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식 또한 각양각색이지요. 일러스트레이션, 기하학적 그래픽 패턴, 상징물, 타이포그래피등,작달막한 담배 패키지 하나에는시각적 요소가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담뱃갑의 글자 짓기, 표정 짓기


글자의 표정을 결정하는 디자인 속성은 크게 글자의 구조, 시각 흐름선, 장식적 요소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이 글에서는 1945년 해방 이후를 기점으로, 시대별 글자의 구조적 특징(장체, 평체, 네모꼴, 탈네모꼴)과 장식적 요소(손글씨, 정리된 자형)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담배 패키지의 얼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표 2] 담배 로고타입의 글자 폭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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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글자의 폭에 따라 분류해보았습니다. 제품 특성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글자 폭이 넓은 형태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좁은 형태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폭이 넓은 글자는 대체로 넉넉하고 안정적이면서 단단한 인상을 주지요. 반면에 폭이 좁은 글자일수록 날렵하고세련되며 깔끔한 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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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를 통해 알 수 있듯, 우리나라의 담배 로고타입은 1970년대까지 네모꼴에 꽉 차는 글자 구조가 주를 이루다가 1980년대부터 점차 탈네모꼴의 경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꽉 찬 장방형 구조는 글자의 덩어리꼴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소비자에게 강하고 듬직한 이미지를 심어주지요. 이와 달리, 네모 틀에서 벗어나면 글자의 흰 공간(여백)이 다양하게 표현되므로 자유로운 리듬감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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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그에 따른 전용서체, 로고타입 등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글자로써 시각적 차별화를 두려는 시도가 많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글자 돌기에 형태를 부여하거나, 특징적인 요소를 반영하는 방식은 요즘의 디자인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지요. 특히 1960년대 ‘신탄진’의 경우, 글자 자체를 사선 형태로 제작하여 속도감을 주고 있습니다. 타 제품명과의 차별성은 물론이고요. 이 같은 형태 인지적 요소는 소비자들에게 보다 쉽게,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습니다. 


반면, 담배 제품의 네이밍 전달 용도로 최소한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단순 형태의 글자도 상당수입니다. 장식성을 걷어내고, 네모꼴이라는 규격화된 공간 안에서 일련의 규칙을 따르며, 수직과 수평의 직선적 획을 사용함으로써 간결미를 보여주고 있지요. 이렇게 장식적 요소가 부여되지 않은 글자들은 다른 글자와의 차별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제품명을 명확히 전달하고 담배 패키지 디자인에 포함된 다른 시각적 요소(일러스트, 컬러등)와 결합하여 제품 디자인의 다양성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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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의 ‘재건’처럼 손글씨(붓글씨) 느낌이 많이 묻어나거나, ‘충성’과 같이 자소 형태가 딱딱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획순이 부각되는 비형식적 로고타입 또한 초기 디자인에 많이 나타납니다. 이런 디자인들은 대체로 부드러운 인상을 가지며 우리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오지요. 


지금까지 광복 이후부터 현대까지 대표적인 담배 패키지에 활용된 글자의 다양한 표정을 간단히 알아봤는데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시 환경과 가치관에 따라, 글자에도 특징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또한, 저는 이 글을 쓰는 동안 옛 담뱃갑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담배 이름에서 느껴지는 우리말의 푸근하고 따듯한 말맛이 그리워지기도 하네요. 


‘시간의 얼굴, 글자의 표정’ 시리즈는 앞으로도, 한때는 익숙했지만 어느새인가 사라져버린 사물들의 글자 디자인 변화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순서였던 담배 패키지 편에 이어 2부 역시 흥미로운 시간이 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및 참고자료]

중앙일보 2009년 6월 18일자

경향신문 1995년 8월 9일자

http://www.ilovesmok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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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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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하루사리 2016.06.21 1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습니다~~ ^^

  2. 이틀사리 2016.06.21 13: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익한 정보네요!

  3. 사리곰탕 2016.06.21 13: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할아버지가 피시던 하나로!! 정겹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