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25.

마포자모 x 윤디자인, ‘직업으로서의 서체 디자이너’를 이야기하다


서체 디자이너 선후배가 서체 디자인 회사에서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질문에 이미 답이 있습니다. 서체 디자이너 선후배가 서체 디자인 회사에서 만나면··· 역시나, 서체 디자인 이야기를 합니다. 10월 18일 윤디자인그룹(이하 윤디자인) 사옥에 모인 서체 디자인 팀 ‘마포자모’의 아홉 멤버들, 그리고 14년차 ‘업계 선배’는 그랬습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에세이가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소설가’를 ‘직업’으로 바라보고, 이 시선에 기반한 저자만의 직무 노하우와 애로 사항 등을 담담히 술회한 책이죠. <직업으로서의 서체 디자이너>란 책이 한 권쯤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포자모가 윤디자인을 방문했던 날 말이죠.


글·사진 _ 기획콘텐츠팀 임재훈



서체 디자인은 '딱딱'하다? 아니, '똑똑'하다!


지난해 마포구는 서울형 뉴딜일자리 사업의 일환인 ‘서체 디자이너 청년 일자리 창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11개월간(2018.12~2019.11) 마포구의 서체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였고, 모집 공고를 통해 서울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만 39세 이하 아홉 명이 참여자로 최종 선발됐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서체 디자이너를 지향하는 청년들이 의기투합한 것이죠. 이들은 마포구 산하의 마포창업복지관 서체 디자인 개발실에 소속되어, ‘마포자모’라는 팀명으로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11개월 여정의 끝자락에서, 마포자모는 특별한 전시도 마련했습니다. 윤디자인 사옥 ‘엉뚱상상 갤러리’에서 열린 <제몫서체: 마포형 제목서체 9종, 그 11개월 몫의 기록展>(10.6~18, 이하 ‘제몫서체’) 얘기입니다. 아홉 서체 디자이너 각자가 마포구의 지역성을 담아 개발한 제목서체 9종, 작업 노트 등이 소개된 자리였죠. 


실은 윤디자인도 마포자모의 11개월 여정에 동행해 왔습니다. 마포형 제목서체 9종의 OTF·TTF 제작 및 PC 설치용 인스톨러 개발 같은 기술 부문 협력, 서체 디자인 자문(윤디자인 타입디자인센터 임광규 센터장) 등을 통해 함께한 것이죠.


마포자모 아홉 서체 디자이너들의 마포형 제목서체 아홉 종을 만날 수 있었던 <제몫서체> 전.

각 서체마다 마포구의 지역 특색을 담고 있습니다.


 

 

 

 

[이미지 제공: 마포자모]

이 가운데 일곱 서체가 올해 ‘제27회 한글 글꼴 디자인 공모전’에서 입상했습니다.

으뜸상(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장상) Mapo애민, 버금상 Mapo꽃섬·Mapo금빛나루, 

아름상 Mapo배낭여행·Mapo한아름·Mapo다카포·Mapo당인리발전소 등이었습니다.

수상작들을 포함한 마포형 제목서체 9종은 아래 마포구청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 마포형 제목서체 9종 내려받기 ▶ 바로 가기


 디자이너

 서체명

 서체에 담긴 테마

 강병호

 Mapo마포나루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

 김민정

 Mapo꽃섬

 '자생하는 난지도'

 김연아

 Mapo배낭여행

 '자유와 글로벌'

 마기찬

 Mapo금빛나루

 '역사와 문화'

 서희원

 Mapo한아름

 '개방과 소통'

 손재선

 Mapo애민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임성화

 Mapo홍대프리덤

 '홍대 문화'

 임혜은

 Mapo다카포

 '클래식 공연' 

 장수화

 Mapo당인리발전소

 '당인리 발전소'


<제몫서체> 피날레가 있던 그날, 바로 10월 18일, 무려 금요일 오후 세 시! 윤디자인 타입디자인센터의 14년차 서체 디자이너 정유권 차장이 특강을 준비했습니다. 마포자모 아홉 명에겐 ‘업계 선배’ 격인 인물의 강연이었을 텐데요.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1부 실무 강의부터, 일체의 레토릭을 배제한 팩트 위주의 2부 직무 토크까지. 이날 강의는 당초 두 시간 반 일정을 훌쩍 넘겨 세 시간 동안 진행됐습니다.


‘Metric 정보’, ‘EM 사이즈’, ‘UPM(Unit Per EM)’, 

‘BBox 값’, ‘Ymax’, ‘Ymin’, ‘Xmax’, ‘Xmin’, ···


1부에서는 위와 같은 단어들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각종 기술용어들이 서체 디자이너들의 ‘또 다른 언어’임을 짐작하게 해준 강의였죠. 왜 ‘또 다른 언어’라 표현했냐고요? 서체 디자인이 ‘심미성’ 내지 ‘조형성’ 측면에서만 논의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같은 ‘아름다움에의 식별’은 서체 디자이너가 구사해야 할 중요한 언어죠. 여기에 더하여, ‘기술 이해도’라는 언어 또한 중요합니다. 특히 디지털 서체 개발 작업에서는 필수 요소죠. 기술용어(기술언어)를 알지 못한다면 엔지니어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할 테고, 그러면 한 벌의 온전한 디지털 서체가 완성되지 못할 것입니다.


마포자모 팀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윤디자인 정유권 차장의 서체 디자인 실무 강의


정유권 차장 스스로도 “지루하게 느껴지실까 봐 걱정”이라 우려했던 이날 강의. 누군가에겐 딱딱함으로 받아들여질 서체 디자인 실무 강의. 하지만 마포자모 아홉 팀원들은 서체 디자이너답게, ‘딱’의 모음 ‘ㅏ’를 ‘ㅗ’로 변환―디자인해 받아들이는 집중력과 적극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딱딱할 뻔했던 강의 분위기가 더할 나위 없이 ‘똑똑’했던 건, 오롯이 마포자모 멤버들의 열의 덕분이었습니다.



"야근 식대는 얼마나 지급되나요?"


2부 직무 토크 때는 윤디자인 소속 서체 디자이너 두 명이 더 합류했습니다. 1990년대생이자 입사 1년차인 박현준·윤준석 사원이었죠. 두 신입사원과 14년 차 고참은 직업으로서의 서체 디자이너, 직장으로서의 윤디자인에 대한 소회를 풀어냈는데요. ‘서체 디자이너 청년 일자리 창출 사업’을 통해 선발된 주인공들인 만큼, 마포자모 팀원들도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야근 식대는 얼마나 지급되나요?”

“윤디자인의 서체 디자이너로서 가장 힘든 점과 뿌듯한 점이 뭔가요?”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졌는데, 서체 디자이너는 어떻게 은퇴 이후를 준비해야 하죠?”


솔직담백 혹은 팩폭담담! 

14년차 선배와 1년차 신입사원, 그리고 마포자모 팀원들의 서체 디자이너 직무 토크.


서체 디자이너 간 전문 언어로 소통했던 1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죠? 이렇듯 2부 직무 토크는 직장인 보편의 언어로 교유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영화 <고령화 가족>의 원작자인 소설가 천명관은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불편한 진실일 수도 있지만 문학을 계속 사랑하기 위해선 밥벌이가 되어야 한다.” 창작자로서의 소설가 말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절절이 명상하게 만드는 에피그램입니다. 또한··· ‘직업으로서의 서체 디자이너’란 명제에도 충분히 동기화(synchronization)될 만하죠. ‘문학’의 자리에 ‘서체 디자인’을 놓는다면···


마포자모 아홉 서체 디자이너 여러분, 또 만나요!


오후 세 시에 시작한 특강은 여섯 시가 조금 넘어 끝났습니다. 윤디자인과 마포자모 아홉 서체 디자이너들, 서로 작별 인사는 했지만 언젠가 또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같은 회사의 동료로, 동종 업계의 종사자로, 혹은 그 어떤 형태로든. 다시 볼 때까지 윤디자인은 ‘직업으로서의 서체 디자이너’라는 명제를 넘어, ‘30년차 서체 디자인 기업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이라는 보다 큰 그림을 완성해 나가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