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지날수록 최첨담 테크놀로지가 홍수를 이루고 있는 요즘, 우리의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복고’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죠. 최첨단과 복고가 어우러지는 시대, 어찌 보면 뭔가 아이러니한 게 아닐까 싶지만,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그리 이상하지도 않은 것 같아요.
복고의 사전적 의미를 한번 되짚어볼까요? 복고(復古)는 회복할 ‘복’에 옛 ‘고’를 써서 과거의 모양, 정치, 사상, 제도, 풍습 따위로 돌아간다는 뜻인데요. 과거 유행했던 문화나 상품이 다시 유행하는 것을 말하죠. 요즘 들어 사회, 드라마, 음악, 영화, 음식, 패션, 디자인, 예술 분야를 막론하고 복고 콘텐츠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지난 날들에 대한 추억과 향수, 복고의 유행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답니다. 복고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유행이 아니라, 지난날에 대한 추억과 향수,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라고 볼 수 있어요. 복고는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감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사로잡는 매력이 있답니다. 복고의 매력은 투박함과 느림이라는 향수에서 출발하는데요. 복고는 모양이 정교하고 예쁘게 다듬어지거나 세련되게 만들어진 것과는 다르게 투박하면서도 순수합니다.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일부 혹은 과거의 이미지가 아련한 추억이라는 양념과 함께 버무려져 현 시대에 맞춰 등장한다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제가 즉흥적으로 만들어본 이미지에요. 어때요, 복고 느낌이 물씬 느껴지시나요?>
전인권 1집 ‘돌고 돌고 돌고’의 가사처럼 인생은 수 많은 반복의 연속일지도 몰라요. 수십 년을 주기로 유행 패션이 돌고 도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겠네요. 제가 대학생 때 디자인 잡지를 보다가 읽은 편집장의 칼럼이 아직도 인상적으로 남아있는데요. ‘크리에이티브 자원의 고갈’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웬만한 건 이미 다 만들어져 있고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존재하기 어렵다라는 내용이었어요. 내가 만들려고 보면 이미 과거에 누군가가 먼저 다 생각을 하고 만들었다는 것이죠. 실제로 신제품이 나오더라도 ‘과거에 어디서 본 것 같다.’, ‘비슷한 것 같다.’라고 느낄 때가 많죠. 비슷한 것들이 여기저기 넘쳐나는 상황에서 더 새로운 것을 찾다 보니 과거로 다시 돌아가는 이치라고 생각되네요.
<두꺼운 금목걸이와 촌스러운 니트티, 항아리 바지까지! 복고 냄새가 물씬 풍기죠?
출처 : 형돈이와 대준이 ‘안 좋을 때 들으면 더 안 좋은 노래’ MV>
요즘의 우리는 1%의 실수도 용납되기 어려운 시대에서 살고 있어요. 경제와 사회적 불안정 속에 급속한 변화를 겪으면서 불안한 심리상태가 확산될 수 밖에 없는데요. 근 50년간의 대한민국 사회는 빠르게 성장해왔지만,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느림이 없는 사회였는데요. 그동안은 뒤돌아볼 여유가 없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점차 풍족해지고 여유가 생기면서 문화소비 욕구와 더불어 그 속에서 여유를 찾게 되었답니다. 경제 불황이 지속될수록 사람들의 정서적 불안감이 더해져 안전 추구 성향이 어느 때 보다 강해지고, 과거의 좋았던 기억과 추억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면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성향이 강해지기도 하죠. 오래된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과거를 이야기 하고 “그때가 참 좋았는데…” 하며 술 한잔 기울이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닐 거예요.
복고폰트가 뜰 수 밖에 없는 이유
복고 폰트가 뜰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앞서 말씀 드렸던 경제성장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여집니다. 디지털 폰트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시점은 1980년대 후반으로, 한글서체디자이너 박경서, 최정호 등이 일구어온 바탕체(명조체), 돋움체(고딕체)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요. 한글 폰트라는 것이 처음 만들어지던 시기이다 보니, 스타일이 다양하지 못했고, 다소 정형화된 서체가 많았습니다. 투박하고 손맛이 느껴지는 폰트는 전무했죠. 이런 상황에서 제목용과 본문용 서체들이 많이 개발되었고, 서체 사업에서 경쟁력이 있는 새로운 시장을 모색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각종 문화 전반에 캘리그래피, 손 글씨, 북한폰트가 뜨기 시작하면서 복고폰트의 유행과 타이밍이 적절하게 맞아 떨어진다고 봅니다.
책에 비유하자면 복고폰트는 한 때 반짝 유행하고 사라지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한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와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기계적인 느낌의 디지털 폰트가 감성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손 글씨와 만나,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답니다.
<출처 : tvN 응답하라 1997 공식 홈페이지>
작년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되어 엄청난 인기를 불러 일으켰던 드라마 ‘응답하라1997’을 기억하시나요? tvN 브랜드디자인팀에서 로고를 제작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해당 폰트는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90년대의 감성을 그대로 간직한 듯한 8자의 글씨는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큰 빛을 보게 됩니다. 온라인 상의 각종 이벤트 페이지나 뉴스레터의 제목에서 로고의 글자를 조금씩 변형하여 사용하였고, 그 외 수 많은 패러디 작품을 낳았습니다.
이처럼 복고폰트는 사라져 가는 글씨에 대한 아쉬움과 다시 그 것을 만날 수 있다는 반가움으로 기성서체와 신서체를 이어주는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해, 신구세대에게 두루 공감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는 것이죠. 또한 최근에 보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로 느껴져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디지털 폰트에 지친 사람들에게 옛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윤디자인연구소에도 복고폰트가 있다!
디지털 한글 폰트의 시작, 윤디자인연구소의 윤서체 중에도 복고폰트가 있다는 사실! 글자를 보기만 해도 옛 추억과 향수에 젖어 들게 만드는 윤디자인연구소의 복고폰트들을 소개해드릴게요.
붓글씨에서 오는 복고적인 향수와 자유스러운 획의 방향으로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사춘기체’를 필두로 한 복고폰트의 등장은 큰 이슈를 몰고 왔습니다. 사춘기체는 오래된 만화책이나 옛날 영화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향수 가득한 복고적인 느낌을 서체에 녹여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어 제작하게 되었답니다. 요즘 온라인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대표적인 복고폰트 중 하나랍니다. ^^
지난해 출시한 윤디자인연구소의 신서체 ‘성공한 커리어우먼 시리즈’ 중 하나인 ‘어반빈티지’ 폰트도 윤디자인연구소의 복고폰트랍니다. 서체에 빈티지한 감성을 입혀보자는 의도로, 자유분방하고 편안한 홍대 앞 스타일을 담아낸 폰트죠. 익숙한 구제의 느낌을 질감으로 살리되, 장체 스타일의 모던한 형태를 취해 도시적 감성의 빈티지한 스타일이 느껴지도록 디자인된 것이 특징입니다.
낱개폰트로 판매중인 ‘쾌남열차’ 폰트는 단단한 생김새의 열차가 달리는 듯한 모습을 닮은 복고 스타일의 서체입니다. 영화 ‘다찌마와 리’가 연상되기도 하고, 7080 컨셉의 선술집 벽에 붙어있는 그 시절 신문 속 광고 지면에서 한번쯤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요?
<장미여관 1집 선공개 ‘오빠들은 못생겨서 싫어요’ 표지 / 출처 : 록스타뮤직 페이스북>
사실 복고폰트의 제작은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모험이나 다름 없어요. 이게 과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폰트는 우리 생활 전반에서 빠질 수 없는 언어를 시각화하여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문화 전반에 걸쳐 불어오는 복고 바람과 함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80~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포스터에는 복고적인 느낌의 폰트가 필요할 것이고, 기업이 자사 제품의 20주년 기념 마케팅을 할 때에도 옛 느낌이 나는 복고폰트가 필요하겠죠. 꼭 제가 예로 든 상황이 아니라도 최근 TV광고나 예능 프로그램 자막, 웹사이트 등 여러 곳에서 복고폰트가 두루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작된 폰트가 의도와 컨셉에 맞게 사용되어 본래의 목적을 다하게 되는 것이 폰트를 사용하는 소비자의 몫이라면, 폰트를 만드는 회사는 양질의 콘텐츠를 다양화하여 소비자가 여러 가지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이 있을 거예요. 현명한 소비자와 생산자가 많아질수록 대한민국의 폰트 시장도 함께 성장한다는 점을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더불어 윤디자인연구소의 복고폰트는 물론, 모든 폰트들을 늘 아끼고 사랑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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