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핀 꽃 소식에 기뻐하던 것도 잠시, 꽃나무마다 후두두 떨어진 꽃잎을 보며 그 초라함에 서글픈 마음 한번쯤 가지셨을 거예요. 새로 난 것이 있으면 소멸하는 것도 있는 것! 여러분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고 계신가요?
윤디자인연구소 갤러리뚱에서는 이렇게 사라지는 것에 대한 슬픔을 작품으로 표현한 동양화가 구본아 개인전 ‘침묵의 봄(the Silent Spring)’이 열리고 있어요. 구본아는 수묵을 작업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작가인데요. 그녀가 표현하는 수묵은 새로운 표정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현대미술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게 하죠.
그럼 지금부터 동양화의 새로운 바람, 구본아 개인전 ‘침묵의 봄’에는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는지 살짝 엿보러 가볼까요?
자연의 적나라한 이름, 시간의 이빨
<시간의 이빨, 30x50cm, 한지꼴라쥬에 먹, 채색, 2011>
이번에 전시되어있는 작품들은 ‘시간의 이빨’ 시리즈입니다. 이는 온갖 물질과 현상을 쉼 없이 거둬들이는 자연에 대한 표현이라고 해요. ‘이빨’이라는 적나라한 단어는 바로 이런 자연의 시간이 지니고 있는 속성에 대한 강조의 의미가 있는데요, 시간에 의해 할퀴고 뜯겨 점차 본연의 형상과 기능은 물론 존재와 존엄성까지 해체되어가는 것들에 대해 쓸쓸하고 애달픈 감상을 표현한 것이랍니다.
답답하면서도 동시에 해방된 느낌, 그것이 바로 자연의 종말에 대해 작가가 받았던 인상이었다고 해요. 그녀는 거대한 고철 덩어리들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 용광로로 보내지지 않고, 그렇게 조용히 녹슬어 갈 수 있다는 것이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했답니다.
<시간의 이빨, 130x320cm, 한지꼴라쥬에 먹, 채색, 2011>
‘시간의 이빨’ 시리즈는 모두 ‘태엽’이라는 공통분모로 표현된 작품들인데요. 채워짐과 비워짐, 그리고 자연과 문명의 순환을 ‘태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현했답니다. ‘태엽(胎葉)’을 한자로 풀어 보면 아이 밸 ‘태(胎)’와 잎 ‘엽(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시계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만든 나뭇잎처럼 생명을 잉태시키는 틀을 의미하고 있어요. 또한, 시계는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하기에 작가는 심장 대신 태엽을 넣어 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 그 은유의 표현이겠지요. ^^
작품 속 형상들은 모두 무너진 벽이나 건물의 잔해들이 비와 눈 등 자연 현상에 의해 얼룩지고 낡아 시간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는데요. 제가 보기에는 그 얼룩이 마치 자개장의 한 부분을 뜯어낸 듯 예쁘게 보였답니다. 얼룩이 뒤엉켜 새로운 색을 내고,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 더욱 화려하게 표현된 것 같이 말이죠. 시간의 흐름이 주는 슬픔이나 잔인함 대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무언가가 멋지고 예쁜 것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어요.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여러분은 작품을 보시고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해지네요~)
<(좌) 시간의 이빨 06, 한지에 먹, 채색, 2011 / (우) 시간의 이빨 07, 오른쪽, 한지에 먹, 채색, 2011>
▶ 구본아 개인전 ‘침묵의 봄(the Silent Spring)’
전시 기간 : 2013년 4월 22일(월)~30일(화)
전시 장소 : 윤디자인연구소 갤러리뚱 (찾아오는 방법)
전시 시간 : 평일 10:00~18:00 / 주말 11:00~17:00
작가는 이번 작품들에 대해 ‘사물과 나눈 대화’라는 표현을 썼답니다. 그녀의 작업에 들어간 돌과 벽에 귀를 기울여 내면에서 생성되는 감정을 시각화했다는 의미에서요.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른 것처럼, 작가가 어떤 사물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감성과 지각이 투영되어 모두 다르게 표현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작가도 그렇지만, 그림을 보는 관객도 마찬가지이지요. 아무리 슬픈 그림을 보아도 그곳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고, 또 아무리 재미있는 그림을 보아도 그 속의 애환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에요. 여러분은 이 ‘시간의 이빨’ 시리즈를 어떻게 느낄지 궁금해지는데요. 구본아 개인전 ‘침묵의 봄’을 통해 동양화가 주는 깊은 사색의 시간을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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