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18.

[TDC LiVE] 막강한 막내들! 4인 4색 인턴 과제 스토리


윤디자인그룹의 중심은 바로 타입(Type), 즉 글꼴을 디자인하는 TDC(Type Design Center)입니다. 윤디자인그룹을 대표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꼴을 만들기 위해 몰두하고 있는 TDC의 글꼴 디자이너들이 글꼴 디자인과 직장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소개하는 [TDC LiVE] 시리즈의 세 번째 주인공은 2020년 인턴사원들입니다. 지난 ‘[TDC LiVE] 쏭디의 TDC 인턴 교육기’(https://www.yoondesign-m.com/841)를 통해 이번 인턴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소개해드렸는데요. 이번엔 4명의 인턴사원들이 직접 그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2020년 윤디자인그룹 TDC 인턴 과제 스토리


올해 인턴 교육의 과제는 기존에 만들어진 라틴 알파벳 폰트를 고른 뒤 이에 맞는 한글 글꼴을 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미션의 의도는 단순히 기존 라틴 알파벳 폰트를 따라 한글을 예쁘게 그리는 것이 아닌, 직접 글꼴을 만들면서 글꼴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관해 탐구하는 것이었습니다. 4명의 인턴 모두 취지에 맞게 깊은 고민과 번뜩이는 센스를 발휘하여 재미있는 4가지 작업물을 완성했습니다.


글·사진 _ TDC 인턴사원 4인



인턴즈 no1. 글짜곰



안녕하세요! 윤디자인그룹 TDC 인턴 글짜곰입니다. 글자를 짜다 보니 벌써 수개월이 지나버렸네요. 저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경제적인 글자, 페뇨(Peignot)를 모티브로 한글 서체를 새로 짜보았는데요. 그 이름은 바로 ‘평행체’입니다.



페뇨는 ‘대소문자 결합’을 통해 경제성을 극대화한 서체입니다. 저는 이런 시도 자체를 한글에 적용하고자 탈네모꼴 세벌식 조합자와 첫 닿자 중심의 글줄을 짰습니다. 고정된 글자 위치와 적절한 자간 조절을 통해 108자의 글자로 11,172자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또, 첫 닿자가 엑스 하이트, 중성이 어센더, 종성이 디센더 역할을 해서 페뇨와 비슷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글자의 구조뿐만 아니라 자소의 형태도 한글에 녹여냈습니다. ‘o’과 ‘ㅎ’은 라틴 ‘O’를 그대로 살려 이 서체의 특징으로 잡았으며, 나머지 라틴도 가독성에 알맞게 다듬어 한글에 적용했습니다.



글자뿐만 아니라 시안이 될 글도 짜보았는데요. 페뇨체를 모티브(기본)로 그려진 평행체(도전)가 페뇨체에게 전하는 짧은 편지와 같은 글입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저 글짜곰이 기본이 되어준 윤디자인에 전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아직 글자 새내기라 이 평행체를 완성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지 모르지만 꼭 완성하고 싶습니다. 첫 서체라 그런지 더 애착이 가네요. 그래서 더 열심히 선배님들을 쫓아서 배워갈 생각이에요. 더 많은 글자, 글씨, 글을 짜내는 곰이 되어보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인턴즈 no2. 끼끼꼬깔



안녕하세요. 윤디자인그룹 TDC 인턴 꼬깔입니다. 평소에 산세리프보다는 세리프를 선호해서 명조를 그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모르고, 시작하기 전에 ‘무조건 명조체를 선택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중 어떻게 보면 날카로우면서도 우아한 곡선미를 가진, 그리고 제가 좋아하고 자주 사용하던 휴머니스트를 대표하는 서체, 센토(Centaur)를 선택했습니다.


‘센토를 보면 르네상스 시대를 경험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센토는 르네상스 당시에 인문주의자들이 필요로 하였던 휴머니스트를 대표하는 서체입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서체의 다소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서체를 만드는 데에 아직 능숙하지 못한 제가 센토의 모든 것을 담아내기에는 벅찼기에, 인턴 기간 동안 제가 매 순간 새롭게 발견하고 진정으로 깨달았던 것들을 글자 하나하나에 최대한 적용해보고, 담아내는 것을 목표로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마치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새로운 영역으로의 담대한 탐구와 열정적인 몰두로 새로운 발견을 찾아낸 것처럼요.



그러면서 센토의 모든 부분을 적용하기보다, 몇 가지 특징들을 발견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센토에서 보이는 몇몇 각진 형태들을 더욱 강조하거나, 세리프를 더욱 뚜렷하게 만드는 시도들이었죠.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서체를 디자인하는 기본적인 원리에서부터 아주 작은 차이에서 벌어지는 뚜렷한 변화까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옆에서 친절하게 조언해주시고 격려해주신 선배님들 덕분에 저의 서체 디자인 역사에 첫발자국을 찍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턴즈 no3. 빅복스



제가 선택한 영문 폰트는 ‘치즈윅산스(Chiswick Sans)’라는 폰트입니다. 디자이너로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모던하면서도 우아한(?)’ 폰트가 절실했고, 치즈윅산스가 바로 그 폰트였습니다. 한글이 없는 영문 폰트라 항상 아쉬움이 남았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어울리는 한글을 만들고 싶었고, 애착이 가는 폰트인 만큼 더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심플하면서도 화려함이 묻어나는 감각적인 영문 폰트의 한글화’를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꾸밈없이 심플한 산세리프에 세리프의 전통적 아름다움이 동시에 담겨있는 치즈윅산스의 큰 획 대비, ‘K’의 leg, ‘y’의 tail 등의 요소를 한글 자소에 적용했고, 한글 사용성에 맞게 수정·보완하여 디자인했습니다.



윤디자인그룹에서 글꼴 디자인을 처음 접해본 저에게는 자소 하나하나 만드는 것, 전체적인 구조를 잡는 것, 용어를 익히는 과정 모두가 낯설었고, 특히 곡선의 자소를 그리는 것, 글자마다 적용되는 여러 규칙에 대해서 아직 숙련도가 부족해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더 열심히 글자를 그렸고,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방법들을 동원해서라도 저 자신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과 앞으로 배워나갈 것들의 융화를 목표로 삼은 앞으로의 제 가능성을 ‘마, 이게 내다!’라는 당돌한 콘셉트로 프로젝트를 끝마쳤습니다.



‘처음’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기대감과 설렘이 더 크기에, 디자인의 영역을 확장할 앞으로의 값지고 뿌듯할 시간이 기대되고, 3개월 남짓 동안 서체의 매력에 ‘퐁! 당!’ 빠지도록 도와준 인턴 교육 프로그램과, 회사와 글꼴 디자인에 융화될 수 있도록 힘써주신 선배님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인턴즈 no4. 머쓱한 샹크스



인턴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 한글 디자인을 배우며 가장 처음 가졌던 의문은 ‘어떻게 써야 이런 모양으로 그려질까’였습니다. 널리 쓰이고 있는 인서체는 글자를 인위적으로 다듬어 활자로 만든 모습이기 때문에 인서체의 부리나 맺음, 빗침 등이 어떻게 그런 모양으로 정리되었을까 항상 궁금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던 도중 당대에 바르게 쓰였다고 생각되는 글씨를 다듬어 활자로 만들어낸 필서체를 알게 되었고 자연스러운 쓰기 법이 반영된 형태의 서체인 필서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라틴 알파벳 폰트를 골라 한글로 재해석하는 인턴 과제를 받았을 때 영문의 필서체인 이탤릭체를 한글 흘림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코타원(Kotta One)은 2017년, 디자이너 Ania Kruk이 디자인한 본문용 이탤릭 서체입니다. Ania는 코타원을 이탤릭체의 특징과 로만체의 가독성이 만난, 기계적 기울임이 아닌 쓰기법에 기반한 구조를 가진 진짜 이탤릭 서체라고 소개합니다. 코타원의 단단한 기둥과 보는 긴 흐름의 문장, 문단에서 잘 읽히는 리듬을 형성합니다. 어센더가 길어서 장하고 서정적인 인상을 주며, 형태적으로는 필기의 흔적이 잘 정리되어 판독성이 높고, 날렵하게 맺고 끊음이 확실함에도 작은 크기로 보았을 때 부드러운 인상을 줍니다.



저는 코타원의 특징을 담아 ‘마음체’를 디자인했습니다. 전반적인 글줄 흐름을 중앙에 두어 차분하고 서정적인 인상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또, 흘림의 조형적 특징을 가져와 일반적인 정체와 차별을 두어, 섞어서 조판했을 때에는 다양한 본문 표현력을 갖출 수 있고, 동시에 가독성이 높아 마음체만으로도 충분히 본문 조판을 할 수 있도록 작업하고자 했습니다. 초성의 닿자는 정체의 형태를 유지하여 판독성을 높이되, 종성의 닿자는 흘려진 꼴로, ‘ㅎ’의 꼭지, 홑자 'ㅛ'의 기둥, ‘ㅂ’의 걸침, ‘ㅍ’의 빗침 등에는 허획을 반영하여 흘림의 특징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작업을 하며 한 가지 주안점을 두었던 부분은 세로쓰기 문화 속에서 꽃피었던 한글의 흘림에서 가로쓰기 문화인 현재에 라틴 활자와 섞어 쓰기 위해 가로 흘림의 특징이 될 지점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작업 시간이 짧았던 지라 이렇다 할 개운한 답을 찾지는 못하였으나 전반적으로 우측이 들려 기울기가 있는 세로쓰기 서체와 구분을 두고 정갈한 글줄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보의 기울기를 최소화하고 낱자의 무게 중심이 중앙에 오도록 했습니다.


마음체는 문단으로는 서정적인 글, 감정을 담은 글에, 강조의 요소로는 일반 정자체 활자와 섞어 쓰면 좋을 본문용 활자입니다. 아름다운 한글 흘림의 조형미를 반영하며 기본형 정체 활자체를 보완하여 본문 내에서의 다채로운 표현 가능성과 새로운 조판 방식 제안에 활용될 수 있는 글자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디자인했습니다.


글씨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깁니다. 우리는 만나본 적도 없는 이의 글씨를 보며 그의 성격을 추측하기도 하고 그가 처했던 상황이나 마음을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저는 무엇을 남겨야 하며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다 내가 남겨야 하는 것은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과 함께 말과 글이 달라 읽고 쓰지 못하는 백성들을 어엿비너긴 마음을 남겼듯이 저도 누군가를 어여삐 여기는, 혹은 시대의 부름에 응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글자를 남기고 싶습니다. 인턴 과제를 하면서 마음체에는 어떤 마음을 담아야 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제가 이 글자에 남기고 싶은 마음을 몇 날 며칠 생각하다 겨우 펜을 들고 적어 내려간 문장이 이 문장이었습니다. ‘말로는 쑥스럽잖아요. 고마워요.’ 항상 곁에서 도움 주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남기고 싶습니다. 항상 처음의 마음으로 글자를 대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2020년 윤디자인그룹 TDC 인턴즈 4인 4색 작은 전시




이렇게 만들어진 TDC 인턴사원들의 첫 작품은 코로나19로 인해 아쉽게도 관람을 공개하진 못하지만, 윤디자인그룹 본사 1층에서 우리만의 작은 전시를 열었습니다. 포스터와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등 자신의 작업물을 멋지게 선보인 TDC 인턴즈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