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12.

[TYPE÷] 〈개항로 프로젝트〉 권순만 대표와 「개항로」에 관해 나눈 타입 디자이너들의 스몰토크

 

2023년 연재 콘텐츠 [TYPE÷](타입나누기)는 윤디자인그룹 TDC(Type Design Center)가 제작하여 새로 출시한 서체, 즉 타입(type)에 관해 나눈 타입 디자이너들의 스몰토크입니다. 서체를 만든 담당 디자이너의 영감과 제작 의도,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동료 디자이너들의 관점은 또 어떨지. 하나의 서체를 주제로 그 서체와 어울리는 공간에서 타입 디자이너들이 대화를 나누고 이를 기록하여 들려드립니다.

 

인천 개항로에서 「개항로」에 관해 나눈 타입 디자이너들의 스몰토크에 이어, 〈개항로 프로젝트〉를 이끌며 그래픽 작업 전반을 담당하는 권순만 대표와 나눈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글. 정이현

사진. 문하나

 

 

 

개항로÷(윤디자인그룹+개항로 프로젝트)

 

〈개항로 프로젝트〉 권순만 대표

 

이정은 디자이너 이창길 대표님과 함께 〈개항로 프로젝트〉를 이끌며 그래픽 작업 전반을 맡고 계시는 권순만 대표님이십니다.

 

권순만 대표 안녕하세요.

 

이정은 디자이너 인천은 역사가 있다 보니까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얘기가 너무 많아요. 제가 부천에 사는 게 재미없어질 정도로. 특히 개항로는 원래도 좀 좋아했는데, 근대 건축물도 많고 볼 게 너무 많잖아요. 여기뿐 아니라 차이나타운이나 그 주변에도 오랜 역사와 시간이 품고 있는 콘텐츠들이 무궁무진해서 너무 매력적인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개항로체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진짜 만들었네요.

 

권순만 대표 처음 연락 주셨을 때부터 진짜 한 1년 걸린 것 같아요. 〈개항로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 디자인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여러 가지 엮여 있는 게 너무 많고, 또 저희의 새로운 관점과 원주민분들께서 옛날부터 가져왔던 관점 사이에 대립도 좀 있고요. 저희가 보기에 아무리 좋아 보여도 되게 신중해야 하고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런 새로운 것들을 할 때 몸을 많이 사렸던 것 같아요. 어쨌든 개항로체는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출시해서 드디어 써보니까 역시나 너무 좋더라고요.

 

문하나 디자이너 제일 먼저 어디 쓰실 거예요?

 

권순만 대표 일단 오늘 저희 인스타그램(@gaehangro)에서 소개했어요. 그리고 이 폰트를 어떻게 활용할지 멤버들끼리 논의를 하고 있는데요, 개항로 가게들 창문에 주소 같은 것들을 개항로 폰트로 좀 크게 쓰면 좋을 것 같아요. 글자 자체에 힘이 있어서 그런 식으로 활용을 시작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문하나 디자이너 글자만 있어도 예쁘겠네요.

 

권순만 대표 그러니까요. 폰트의 완성도가 되게 좋더라고요.

 

이정은 디자이너 나중에 타입나누기 콘텐츠 올라온 거 보시면, 초반 작업 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나올 거예요. 원도가 너무 많이 부족해서 상상력을 발휘하느라 엄청 힘들었거든요.

 

권순만 대표 사실 변수가 너무 많은 프로젝트다 보니까, 일반적인 폰트 프로젝트에 비해 요구해야 하는 걸 요구하기가 어려우셨을 거예요.

 

이정은 디자이너 저희 제안서 처음에 딱 보셨을 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권순만 대표 저는 일단 디자이너니까 너무 좋았죠.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을 먼저 이렇게 하시겠다고 연락을 주시니까. 너무 좋은데 이걸 또 어떻게 다 설득하지, 바로 다음 고민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실제로 저는 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이창길 대표는 소통을 주로 하시던 분이기 때문에 조금 망설였던 것 같아요. 개항로체를 만드는 게 과연 도움이 될까? 이분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켜드리는 게 오히려 낫지 않나? 너무 확 퍼뜨려서 상업적으로 변하는 걸 우려하셨는데, 저는 계속 설득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만 안주하는 게 아니라 퍼져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협의했고, 결국 합의가 됐죠. 전종원 대표님은 생각보다는 흔쾌하게 한번 해보자, 재밌겠다고 하셨고요.

 

이정은 디자이너 원도도 아주 열심히 써주셨어요. 틀린 부분에 종이 붙여서 다시 써주시고. 개항로체는 목간판 글씨니까 사실 나무를 파서 해주시는 게 맞지만, 연세도 많으시고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잖아요. 그래서 종이에 써달라고 요청을 드렸는데, 너무 성실하게 써주셨어요.

 

권순만 대표 요즘 젊은 사람들이 글씨를 정말 못 쓰잖아요, 저도 그런데. 이렇게 나온 개항로체 보니까 진짜 멋있어요. 아마 인천시에서도 이 폰트를 곧 인지할 텐데, 어떻게 나오실지가 저는 궁금해요.

 

이정은 디자이너 큰 꿈 가져도 되나요?

 

권순만 대표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저희 개항로 맥주에 상도 주셨었거든요. 그래서 뭔가 또 해주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좀 듭니다.

 

이정은 디자이너 저는 어쨌든 로컬 타이포 브랜딩이라는 용어 자체를 개항로 서체에서 처음 쓴 거거든요. 그러니 우선 개항로에서 서체를 많이, 잘 사용해주시면 좋겠어요. 개항로에 오면 어디 가서도 보이는 글씨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굉장히 커요. 여기서 너무 예쁘게 잘 쓰고 있으면 사람들이 이 서체가 뭔지 궁금해할 테고, 또 이름 자체가 개항로니까 널리 퍼지면 지역을 알릴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해요.

 

권순만 대표 저는 컨설팅 일을 하다 보니까 이런 붓글씨나 한글 폰트를 쓸 일이 많거든요. 최근에 많이 쓴 게 정선아리랑체.

 

이정은 디자이너 오! 저희 회사에서 했어요. 저희가 도시 서체를 많이 하거든요.

 

권순만 대표 그 서체가 너무 예뻐서 많이 썼어요. 사실 이건 무료로 배포는 하지만, 시에서 발주를 내서 만든 어떻게 보면 상업적인 폰트잖아요. 그것과 달리 개항로체는 되게 특이한 케이스라서 어떻게 활용될지 저도 기대돼요. 그럼, 포천체도 하신 거예요?

 

이정은 디자이너 네, 포천도 저희가 했어요. 완도, 창원 다 저희가 했어요.

 

권순만 대표 개항로체는 저희와 만든 폰트지만, 인천시에서 이걸 구매해서 지역을 위해 배포해주신다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시에서는 그렇게 큰 부담은 아닐 텐데. 스토리를 이미 다 발굴해준 거잖아요.

 

이정은 디자이너 그러면 정말 좋겠네요. 개항로 세로쓰기는 11월 말로 예정되어 있어요. 공간을 비롯해서 다 재조정해야 하는데 그건 여기 류희 디자이너와 제가 같이 작업할 거에요. 서예 전공자인데 막판에 정말 많은 도움을 줬죠. 그리고 찬솔 디자이너는 가구 디자이너 출신이라 이 목간판은 무슨 나무에 썼다, 보고 알아요. 조합이 너무 훌륭하지 않나요? 환상적이지 않아요?

 

권순만 대표 나중에 텍스처가 좀 있는 폰트도 만드셔야겠는데요?

 

이정은 디자이너 그래서 저희 생각에는 개항로 맥주에서 보이는 크랙 버전도 만들고 싶어요. 회사에서도 신서체를 계속 출시하고 있어서, 일단 세로쓰기까지는 확실히 계획되어 있고요. 이제 크랙이나 다른 글씨에 대한 것은 또 한 번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권순만 대표 고생 많으셨고 또 잘 부탁드려요.

 

이정은 디자이너 피티 했었을 때가 기억나요. 딱 피티가 끝나고 “저보다 개항로를 더 잘 아시네요” 라고 저에게 얘기해주셨어요. 그리고 정말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해주셔서 엄청 든든했어요, 응원받고 있는 느낌이라.

 

권순만 대표 저뿐만 아니라 그 정도 제안을 주시면 다들 너무 감사하죠. 저도 제안을 하고 피티를 하는 입장이라, 그 정도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아니까요. 또 개항로체가 수익이 바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 이런 걸 승인해주셨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이정은 디자이너 저도 그 부분이 회사에 감사해요.

 

권순만 대표 너무 감사한 일이죠.

 

이정은 디자이너 계속 강조하는데, 우선은 진짜 개항로에서 많이, 잘 사용해주셔야 해요.

 

이찬솔 디자이너 기본적으로 물성을 띈 제품들이 있으니까요, 맥주 같은 것. 그러면 좀 더 많이 퍼져나가기에 좋지 않을까 싶어요.

 

권순만 대표 우리나라에 개항로처럼 훌륭한 지역들이 많거든요. 군산도 있고, 목포, 부산, 포항도 있고. 정말 좋은 데가 많아요. 그런 곳에서 계속 이렇게 로컬 타이포 브랜딩을 해주신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에 이런 유형의 콘텐츠가 많이 없는 게 좀 아쉬운데, 윤디자인 같은 회사에서 만들어주시면 디자이너로서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사무실에서 벗어나 필드로 나와보면 사실 좋은 콘텐츠가 있거든요. 다른 폰트 회사에서도 이렇게 해주면 좋겠어요. 제가 윤디자인 폰트를 계속 써왔기 때문에 처음에 제안 주셨을 때는 우리한테 연락 올 회사가 아니야 이랬거든요.

 

이정은 디자이너 저는 개항로 답사하던 날 브라운핸즈 카페에서 이창길 대표님을 우연히 처음 뵀을 때, 윤디자인그룹을 알고 계셔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디자인 필드에 계신 분이 아닌데도 알고 있는 회사라고 하셔서 폰트 개발 얘기를 꺼내기가 수월했던 것 같아요. 
오늘 인터뷰 자리에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구요, 아직 개항로체 개발이 끝난 게 아니어서 세로쓰기까지 나오면 또 찾아 뵐게요. 이창길 대표님까지 모두 함께 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권순만 대표 멀리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정은 디자이너 저희도 함께 얘기 나눠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