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체 디자인/글/사진. 이찬솔
디지털 환경이 보편화되면서 직접적인 소통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해갈하기 위해 시작된 <손글쓰기문화확산캠페인>이 벌써 9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해 많은 분께서 책에서 읽은 감명 깊은 구절을 자신만의 손글씨로 표현해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야외활동이 늘어나면서 참여가 저조할 것이라 예상된 <제8회 교보손글씨대회>에는 무려 9,340명이 응모하며 역대 최고 인원을 기록했습니다. 역대급 규모와 역대급 퀄리티의 손글씨들이 많이 출품되어 심사가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위원회가 보기에도 탈락하기 아까운 손글씨가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제8회 교보손글씨대회>는 으뜸상 10명을 포함해 330명과 단체 5곳에 수상의 영광이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디지털 폰트로 제작할 최종 서체는 일반부문 으뜸상을 수상하신 김혜남 선생님의 손글씨가 선정되었습니다. 김혜남 선생님의 손글씨는 획의 연결과 꺾임이 돋보이는 펜글씨 스타일로 율동감이 느껴지는데요,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독특한 인상이 돋보입니다.
손글씨가 폰트가 되기까지
손글씨가 디지털 폰트로 재탄생하게 될 땐 글쓴이의 습관부터 글자의 형태, 획의 흐름 등 다양한 요소를 면밀히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대회에 응모한 원도 외에 더 많은 원도 자료가 있으면 큰 도움이 되죠. 김혜남 선생님께선 올해 82세로, 퇴직 후 20여 년간 매일 세 시간 이상 성경을 공책에 한 자 한 자 옮겨 쓰셨다고 합니다. 덕분에 평소에 쓰셨던 수많은 성경 필사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0여 년간 쓰신 필사본을 다 받아올 수 없어 특징적인 페이지만 추려왔는데도 35장이 넘었고, 보다 세심하게 글씨를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김혜남 선생님의 손글씨는 흐름과 꺾임이 특징적인 펜글씨(시그노 유니볼 0.5)로 획의 율동감이 살아있습니다. 날카롭게 꺾여 올라간 중성의 세로획(‘아’ 글자 참조)과 글씨의 진행 방향을 알 수 있는 유려한 곡선(‘초’, ’확’ 글자 참조)이 대조적이면서 개성 있습니다. 특히, ‘ㄹ’처럼 독특한 형태의 자소가 상당히 돋보입니다. 다양한 개성과 리듬이 녹아있는 글씨임에도 정갈하고 정돈된 멋이 드러나는 것을 보며 김혜남 선생님의 오랜 글씨 내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갈하고 정돈된 인상을 주는 이유는 글씨의 시각 흐름이 상단으로 일정하게 지나기 때문입니다. 또, 글자들이 꼴별로 폭이 일정한 편이고, 세로로 긴 장체의 구조로 되어 있어서기도 합니다.
손글씨 폰트 제작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사용성을 고려해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원도의 개성과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글자 간의 고른 균형을 위해 공간감, 크기감, 조형성 등을 조정합니다. 나아가 오독의 여지가 있는 글자들은 판독성이 분명하도록 수정을 진행합니다. 「교보 손글씨 2022 김혜남」 서체는 펜으로 썼을 때의 잉크 뭉침과 과하게 표현된 요소를 완화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진행했습니다.
개성 있고 단정한 펜글씨 「교보 손글씨 2022 김혜남」
「교보 손글씨 2022 김혜남」 서체는 상단에 가지런하게 정리된 글줄을 갖고 있어 단정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줍니다. 글자폭은 모임꼴별로 다르게 설정해(가변폭 서체) 개성과 운율감이 도드라지도록 제작했습니다. 나아가 폰트로써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가독성과 판독성을 개선했습니다.
획의 시작과 끝, 연결점 등에서 나타나는 잉크 뭉침(ㅇ꼴), 글씨의 진행 방향을 알 수 있는 흐름 표현(ㄹ꼴), 곡선과 직선이 공존하는 자소 표현(ㅍ, ㄷ꼴) 등 특유의 개성이 넘칩니다. 가로, 세로 획의 굵기차가 적고 세로로 긴 장체폭의 서체로 서정적인 글의 본문용에 활용도가 높습니다.
영문은 김혜남 선생님께서 써주신 여러 글자꼴 중에서 한글과 가장 어울리는 꼴들의 글자를 채택해 서체화를 진행했습니다. 펜의 필압이 느껴지는 스크립트(Script) 스타일로 획의 꺾임과 흐름이 느껴집니다. 한글 획의 시작과 끝에서 보이는 잉크 뭉침의 표현을 영문에도 적용하여 한글과 조화로운 인상을 전합니다.
김혜남 선생님께선 “글은 내 감정에 가장 솔직해지는 수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체를 제작하는 저도 선생님의 말씀에 참 공감이 되었습니다. 서체도 만드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게 나타나거든요. 그렇기에 서체 앞에서 디자이너는 늘 솔직해야 하고, 또 진심을 담아낼 수 있도록 마음을 잘 돌봐야 합니다. 이번 「교보 손글씨 2022 김혜남」 서체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담아 제작했습니다. 김혜남 선생님의 이름과 마음에 누가 되지 않도록, 또 많은 분께서 서체를 통해 선생님의 진심을 느낄 수 있도록요.
「교보 손글씨 2022 김혜남」 서체는 현재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배포 중입니다. 개성 넘치면서도 단정한 손글씨 폰트를 다운로드 받아 사용하면서 선생님의 마음을 느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교보손글씨대회>는 올해도 어김없이 열립니다. 2023년 5월 2일부터 7월 3일까지 예선 응모를 받으니, 평소 감명 깊게 읽은 책의 문장이 있다면 손글씨로 적어 참여해보세요. 다음 손글씨 폰트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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