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폰트. 윤디자인연구소 하면 떠오르는 한 가지이지요. 윤명조와 윤고딕 시리즈를 시작으로 KT 올레체, 서울남산체 등 기업•지자체 전용서체를 비롯하여 디자이너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쿨재즈, 블랙핏, 연꽃, 봄날, 소망 등등. 윤디자인연구소가 개발한 서체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생활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퍼져 있답니다. 이렇듯 ‘한글’은 윤디자인연구소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작년에 이어 올해 2회째를 맞는 <한글잔치>는 어쩌면 이들에게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한글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들. 그들이 미술 작품으로 재탄생 시킨 한글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야말로 ‘씹(고).뜯(고).맛(보고).즐(기고)’이 가능한 작품들 앞에서 눈길, 발길, 손길이 멈춘답니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모빌 설치 작품. 타이포프레임 ‘한잔하자’ 팀의 <한 걸음 뒤>라는 작품입니다. 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이 네모난 판넬에 조각조각 써 있는데요, 얼핏 보면 그냥 한글 자모를 모아 모빌을 만들었나 싶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자니 단어 혹은 문장이 보이기 시작해요. 그런데 더 희한한 건 앞, 뒤, 좌, 우 보는 시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흰 바탕에 검은색 글씨가 아닌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써 반전을 줬는데, 이는 한글 디자인에서 흰 공간과 검은 공간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리란 의미가 있답니다. 그로 인해 낯섦과 새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작품이지요.
다음 작품은 아이디어프레임 ‘한그리’ 팀의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배설체)>. 전시장 한 켠에 오픈 된 화장실이라니! 벽에 붙은 타일이며, 변기, 화장지, 비누, 수건 등 화장실을 그대로 재현했어요. 그리곤 타일에 “아름다운 사람들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고 쓰여있지요. 그런데 예사롭지 않은 글씨체. 화장실에서 흔히 보는 물건의 모습에서 한글 자모를 찾아 ‘배설체’라는 글씨를 만든 것입니다. 수도관에서 ‘ㄱ’을, 문고리에서 ‘ㄴ’을, 변기 커버에서 ‘ㄷ’을, 샤워기로 ‘ㄹ’을 찾은 식이지요. 화장실에서 오직 배설 행위만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에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평화로운 시간. 소소한 생각부터 책을 읽거나, 메모를 하거나 음악을 듣고 최근엔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뉴스를 보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죠. 생리적 배설 행위를 넘어 개인의 욕망을 배설하는 곳으로의 공간으로의 화장실. 그 안에서 발견한 배설체는 위트,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다음 작품은 타이포디자인센터 ‘성룡과 영의정’ 팀의 두 작품 <윤서체와 함께 하는 얼굴 만들기>와 <윤명조700 홀로그램>입니다. 우선 <윤서체와 함께 하는 얼굴 만들기> 작품 앞에는 사람들이 항상 바글바글해요. 다양한 모습의 얼굴 모양이 프린팅된 엽서에 한글 자소 도장을 찍어 눈, 코, 입을 완성하는 작품인데요, 얼굴 각 부위에 어떤 자소가 들어가는지에 따라 표정도 제각각. 완성한 엽서는 가져가도 되고 전시장 한 켠에 붙여 놓아 그대로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 한글 자소 도장을 팀원들이 일일이 손으로 팠다고 하니 그 정성이 대단하지요. 다음은 <윤명조700 홀로그램>. 이 작품으로 3년이라는 제작기간을 거쳐 올해 말 출시 예정인 ‘윤명조700’을 미리 만나볼 수 있어요. ‘삶’이라는 글자를 ‘윤명조700’의 9가지 굵기 단계를 통해 얇은 타입부터 두꺼운 타입까지 나열하여 시각적으로 풀어나간 작품인데요, ‘윤명조700’의 기획의도와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삶’이었을까요. 폰트 디자이너에게 아마도 그 3년의 시간은 ‘삶’. 아마도 이상의 것이었기에….
다음은 와이커뮤니케이션즈 ‘히읗’의 <Fairy Tale Rabbit>, <Fairy Tale Dog>. 동화 속에 등장하는 토끼와 개를, 직접 제작한 한글 자형 유닛으로 구성하여 표현한 타이포그램 작품입니다. 전시장에는 그래픽 이미지뿐만 아니라 우산, 쿠션 등 생활 소품으로도 만날 수 있어요. ‘히읗’의 유진웅은 윤디자인연구소의 디자이너이자 개인 활동을 하는 타이포그래픽 아티스트랍니다. 그동안 한글이 들어간 디자인 작품에 실망한 적이 있다면, ‘히읗’의 작품으로 만족할 수 있을 거예요. 위트 있고 심플한 느낌의 디자인으로 첫 번째 눈길을 사로잡고, 그 멋진 디자인이 한글이었다는 것을 본 순간 마음까지 빼앗길 테니까요.
마지막 작품은 엉뚱상상 ‘김구이이황’ 팀의 <모두의 한글>. 앞서 소개한 <윤서체와 함께 하는 얼굴 만들기>와 함께 관람객 참여가 가능한 작품입니다. 가로세로 10cm 타일 68개에 각각 글자의 레이아웃이 잡혀 있는데, 그 글자를 관람객이 가져다가 하나하나 꾸미는 방식으로 진행돼요. 아이부터 어른, 외국인까지 각종 재료가 올려져 있는 책상 위엔 작가로 변신한 이들의 예술혼이 시종일관 불타고 있지요. 그 결과물은 또 어떤지. 전문 작가 뺨치는 작품들이 반짝반짝 빛난답니다. 그 하나하나의 작품이 모이면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의 1연이 완성 되는 거지요. 작품 옆으로는 작품 만들기 가이드 영상이 음악과 함께 계속해서 돌아가는데요,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히스토리를 담아 재미를 더했답니다.
바르고 곱게만 쓰라고 배웠던 한글. 기본은 지키되 다양한 방법으로 재미있고 친근하게 접하도록 하는 것도 한글 교육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한글날이 공휴일이 되어 온 가족이 함께할 바탕은 마련했으니, 이들이 즐길만한 잔치가 전국 곳곳에서 많이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글날 놓친 <제2회 한글잔치>, 10월 20일까지 계속되니 한번쯤 꼭 들러 보기를 바라요.^^
'윤디자인연구소 디자이너들이 벌이는'
제2회 한글잔치 - 씹(고).뜯(고). 맛(보고). 즐(기고)!
- 일시: 2013년 10월 9일(수) ~ 10월 20일(일)
(평일 10:00~1800 주말•공휴일 11:00~17:00)
- 장소: 윤디자인연구소 갤러리뚱 ‘찾아오시는 길’
- 오프닝: 2013년 10월 8일(화) 오후 6시 윤디자인연구소 1층 카페테리아
- 관람료: 무료
- 주최: 타이포그래피 서울
- 후원: 윤디자인연구소
- 협찬: 한솔PNS, 삼원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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