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트에 관심은 많지만, 정작 폰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누가 알려주는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갖고 있는 분들 있으시죠? 직접 폰트를 만들어보지는 못하더라도, 한 벌의 폰트가 어떻게 제작되고 있는지 자세히 알고 싶었던 분들을 위해 윤톡톡이 준비한 특집 포스트! 한 벌의 폰트가 만들어지는 프로세스를 아주 자세히, 낱낱이 밝혀드릴게요. 아마 이 포스트를 다 읽을 때쯤이면, ‘아하!’하고 무릎을 탁 치며 그동안 묵혀둔 고민이 해결된 속 시원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
사용자 환경과 폰트 제작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폰트를 만들어내는 프로세스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발전해왔는데요. 작업 초반의 과정은 완성형(‘한’, ‘글’처럼 완성된 글자 하나하나를 제작하는 것)이나 조합형(초성, 중성, 종성을 따로 디자인해 하나의 글자를 표현하는 것으로 1Byte 폰트라고도 부름) 모두 비슷하지만, 어느 정도 진행되면 다른 과정을 밟게 됩니다. 오늘은 완성형을 기준으로 한 벌의 멋진 폰트가 제작되는 과정에 대해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한 벌의 폰트가 만들어지는 프로세스
1. 정확한 컨셉을 잡아야 한다.
본격적으로 폰트를 만들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정확한 컨셉 잡기에요. 사용자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방송자막이나 인터넷 등의 디지털 매체, 잡지 광고나 소설책 표지와 같은 출판인쇄물, 간판이나 도로 표지판과 같은 옥외물 등 폰트가 쓰이고 있는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 추세인데요. 그중에서도 방송자막이나 게임용으로 활용되는 서체라면, 출판인쇄용과는 다른 매체의 질감이나 환경을 고려해 디자인해야 하고, 본문용이나 제목용 중 더 많이 쓰이는 폰트의 크기에 맞춰 디자인도 달라져야겠죠. 최근에는 같은 웹폰트라도 네비게이션으로 쓰이는 것과 블로그나 미니홈피에서 쓰이는 것, 또는 사용자의 연령층에 따라 컨셉부터 다르게 접근해 개발하는 사례를 흔히 접할 수 있어요.
2. 자료조사를 꼼꼼히 한다
정확한 컨셉이 있다고 해서 폰트가 뚝딱 만들어지는 건 아니에요. 정해진 컨셉에 따라 그 글자의 분위기에 맞는 기존의 폰트나 로고타입(회사나 제품의 이름이 독특하게 드러나도록 만들어, 상표처럼 사용되는 글자체), 혹은 외국 자료(영문 폰트)들을 종합적으로 수집하는 자료조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초보 디자이너들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암담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죠.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지 않나요? (ㅎㅎ) 자료조사는 기존 서체와 새로 만들 서체를 어떻게 차별화해 독특한 폰트로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전제조건이기도 합니다.
3. 최소한의 단어로 폰트의 표정을 만든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폰트를 만들어볼까요? 5자~10자 정도의 특정한 글자를 로고타입처럼 레터링하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려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봅니다. 이때 중복되는 글자가 없이 대표적인 자음과 모음이 골고루 들어가고, 표현하기 어려운 곡선이 적절히 섞이면 더욱 좋아요. 특히 ‘ㅇ’꼴의 경우 사용 빈도수가 높아 전체 문장에서의 느낌을 좌우하므로 꼭 포함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글자의 표정 또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데, 우선 구조적으로 네모틀로 할 것인지, 탈네모틀로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요. 그리고 탈네모틀이라면 기준선을 어디에 둘 것인지, 무게중심은 어디에 둘 것인지, 세리프를 넣을 것인지, 텍스츄어를 가미할 것인지 등등의 다양한 표현방법으로 서체의 성격을 만들게 되는 것이죠.
폰트의 표정은 디자이너의 얼굴과 같은데요. 디자인 의도나 디자이너의 개성이 드러나는 부분으로 ‘자기다움’을 글꼴로 잘 표현하는 것이 좋은 디자인이 아닐까 싶어요. ^^
4. 20~30자의 문장을 구성한다.
같은 자음이나 모음은 카피해 활용하면서,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변형과 응용을 통해 변화를 시도하고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이때 그 서체의 첫 느낌과 장점을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글자를 이루는 요소와 여백, 공간들 간의 강약이나 분배를 얼마나 짜임새 있게 하느냐에 따라 매력적인 서체가 될 수도 있고, 무미건조한 서체가 될 수도 있어요. 글자의 구로도 정확하게 판단해서 진행해야 합니다. 문장을 만들어보면, 그 서체의 성공여부가 어느 정도 판가름 난다고 볼 수 있답니다.
5. 대표되는 글자를 중심으로 파생작업을 한다.
문장 작업이 완료되면, 거기에 없는 글자들을 좀 더 만들어봅니다. 이왕이면 요소가 많고 구조가 복잡한 글자들을 미리 만들어보는 것이 좋아요. ‘뺄’, ’를’, ‘꽐’, ‘홀’ 등과 같은 복잡한 글자나 종성이 ‘ㅎ’으로 끝나는 ‘믛’ 등을 작업하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난관에 부딪힐 수도 있고, 처음에 작업했던 자모음을 수정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곡선 중에서도 ‘ㅅ’꼴의 경우, 초성에 쓰일 때와 종성에 쓰일 때 각각 어떻게 처리할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완성형 낱자들을 한자한자 작업할 때, 자음이나 모음의 모양을 약간씩 변형하지 않으면 시각적으로 불안정하게 보이는 글자도 생긴답니다. 특히 다양한 모양의 자음꼴에서 이러한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데요. 일정한 자폭을 유지하면서 굵기와 크기를 조화롭게 하는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한 감각이 요구되는 일이랍니다.
6. 전체 글자를 만들어 간다.
이렇게 파생작업을 꼼꼼히 하고 나면, 전체 KS5601 코드에 맞추어 2,350자를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가’부터 ‘힝’까지의 사이에 비어있는 글자를 통일감 있게 만들어가는데, 숙련된 디자이너라 하더라도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에요. 때문에 일정을 계획적으로 잡아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폰트 디자이너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꼽히는 끈기와 인내심이 가장 발휘되어야 할 순간이랍니다.
7. 다양한 문장을 테스트한다.
전체 글자들이 만들어지면 TTF(트루타입 폰트)를 만들어 어플리케이션(쿽 또는 워드 등)에서 다양한 문장으로 출력해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어색한 글자 배열이나 글자 크기와 굵기의 일정성을 확인해 볼 수 있죠. 혹은 세리프, 맺음, 꺾임 등의 형태 표현의 규칙들이 시각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면서 낱글자들과 단어끼리 서로 잘 어울리는지, 각 글자들의 속 공간과 바깥 공간의 배분은 적절한지, 글자 사이, 낱말 사이, 글줄 사이 등은 고른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글줄의 흐름은 매끄럽게 유지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고 수정, 보완 작업을 하게 됩니다. 이런 디테일한 수정을 얼마나 꼼꼼하게 했는지에 따라 서체의 퀄리티가 좌우된답니다.
8. 한글과 어울리는 영자, 숫자 등을 디자인한다.
쓰이는 영자와 숫자의 디자인도 소홀히 할 수 없겠죠? 비슷한 영문 폰트를 찾아 참고할 수도 있지만, 한글 디자인에 맞춰 순수하게 창작하는 경우도 많아요. 윤디자인연구소의 ‘사춘기’, ‘러브레터’, ‘쿨재즈’ 같은 폰트들이 그러한 경우에요. 영문 작업과 함께 부호나 특수 문자도 작업합니다.
9. 한 벌의 폰트를 조판 테스트 한다.
한 벌의 폰트를 놓고 자간이나 행간 등을 세심하게 검수하고 수정합니다. 본문용 작업의 경우에는 작은 사이즈에서도 폰트끼리의 뭉침 없이 일정한 굵기를 유지해야 하고, 미세한 세리프들이 구현되어야 하므로 필름으로 출력해서 테스트 하기도 합니다.
윤디자인연구소 인기 폰트 ‘봄날’로 본 폰트 제작과정
이렇게 폰트를 만드는 과정만 쭉 설명해놓으니, 뭐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분들 있으시죠? (손 한번 들어보세요.. ㅎㅎ) 친절한 윤톡톡이 이것을 놓칠 소냐! 출시부터 지금까지 많은 분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봄날’ 서체를 통해 폰트가 어떻게 제작되는지 다시 한번 찬찬히 둘러볼게요.
봄의 활력과 싱그러움을 느끼게 하는 윤디자인연구소의 ‘봄날’ 서체는 기존 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감각과 형식으로 디자인된 서체랍니다. 캘리그래피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발맞추기 위한 신선한 손 글씨 서체 개발이 시급했던 윤디자인연구소와 때마침 자신의 캘리그래피를 폰트화하고 싶었던 강병인 선생의 만남으로 그 위대한 탄생이 이루어지게 되었죠. 그 배경에는 ‘손 글씨를 폰트화함으로써 디지털 느낌을 최대한 감추고,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필력이 살아있는 서체를 개발한다’는 것과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전문 캘리그래퍼의 손 글씨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등의 두 가지 의도가 있었답니다.
1. ‘봄날’ 서체 컨셉의 설정
강병인 선생이 제시한 컨셉은 ‘광고의 카피로 쓰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손 글씨’, ‘자소의 느낌을 다양하게 하여 디지털이 가진 느낌을 최대한 없앤 폰트’, ‘인위적이지 않은 가는 펜 글씨 느낌의 서체’ 등이었어요. 여기에 몇 가지 강병인 선생 특유의 서법, 가령 ‘어미를 길게 늘여 쓰는 특징과 세로모임꼴 글자의 자폭이 가로모임꼴에 비해 많이 좁은 편인 특징, 같은 글자라도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달리 표현하는 서법’ 등이 고려되어야 했어요.
2. 시안의 마련과 낱자소의 전개
<‘봄날’ 서체 시안 예시>
다양한 굵기와 스타일의 여러 시안에 대한 회의를 거치는 과정을 통해 강병인 선생의 고유 필력을 살리면서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a-3안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a-3안에 근거한 자필 샘플을 바탕으로 낱자소들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다양하게 변화하는 형태들을 나누고, 모임꼴의 형태에 따른 크기, 높이 등을 잡아서 2,350자를 구성하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작업에 있어서는 최대한 원도에 가깝게 그리면서 자소들의 다양한 형태를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답니다.
그런데 1차 작업을 완료해보니 어딘지 모르게 시원스럽지 못한 느낌이 있었어요. 내부적인 회의를 통해 가로획을 더 가늘게 조정해 속도감을 주는 방향으로 수정하기로 했답니다. 그 결과 필력과 속도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어요.
3. 조형성과 사용자의 편의성 도모
좀 더 세부적으로는 글자들의 꼴별로 높이 차를 두어 시각의 흐름에 변화를 주었고, 획의 굵기에 차이를 주어 속도감과 긴장감을 이끌어냈어요. 또한 글자의 무게중심을 약간 상단에 정렬시킴으로써 균형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답니다.
그리고 강병인 선생 글씨의 특징을 잘 살리기 위해서는 글자가 단어의 처음에 오는지, 중간에 오는지, 마지막에 오는지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했는데요. 폰트는 어떠한 글자가 어떻게 조합되어 쓰일지 알 수 없기에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감안해야 했어요. 때문에 단어의 어미형 글자들을 어떻게 구현해낼지에 대한 회의가 기술개발부와 함께 이루어졌답니다.
처음에는 공감입력기를 통해 입력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하려고 했어요. 크기별, 굵기별로 따로 서체를 제작해 공감입력기를 활용하면 두께와 크기가 다른 서체를 한 문장에서 조합해 문장의 특성에 맞게 강약을 표현할 수 있죠. 하지만 입력기를 통해서 작업해야 한다는 점이 사용자 편의성이 떨어지고, 여러 가지 굵기와 크기의 서체를 한꺼번에 구매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등의 문제점이 지적되었었답니다.
4. 가변폭의 적용과 피처(Feature) 기능의 활용
<국내 최초로 적용된 피처 기능으로 좀 더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봄날’ 서체>
오랜 회의를 거듭한 끝에 피처(Feature) 기능을 이용해 다양한 어미의 형태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절충해 ‘봄날’ 서체를 작업하게 되었어요. 피처 기능은 어미로 올 때 변화될 수 있는 140여 자를 다양한 형태로 제작해 사용자로 하여금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랍니다.
<’봄날’ 서체 원도의 일부>
원도의 경우 세로모임꼴의 자폭이 가로모임꼴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좁아서 고정폭으로 작업될 경우 원도의 느낌을 살리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모임꼴별로 자폭을 달리하는 가변폭 한글로 제작하기로 결정했죠. 그러나 가변폭으로만 제작될 경우, 고정폭만 지원하는 어플리케이션에서의 활용이 문제가 될 일이었는데요. 결국 하는 수 없이 세로모임꼴의 너비가 고정된 고정폭과 가변폭의 두 가지 스타일로 제작해야 했습니다.
5. 다양한 형태의 어미 글자를 가진 ‘봄날’ 서체의 탄생
<’아프니까 청춘이다’ 북 커버 디자인에 활용된 ‘봄날’ 서체>
이렇게 해서 필력이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펜 글씨를 광고 카피용 폰트로 디지털화 시키는 작업이 마무리 되었어요. 그 이전에 손 글씨체 폰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획과 자소의 변화가 다양한 ‘봄날’ 서체는 특히 가로모임꼴 글자와 세로모임꼴 글자의 자폭이 확연히 다르고, 어미 글자를 선택적으로 다양한 형태를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자연스럽고 짜임새 있는 손 글씨체의 표현을 가능하게 했어요. 디지털화된 폰트임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싱그럽고 생동감 넘치는 봄날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서체로 태어나게 된 것이죠.
조금은 복잡했던 폰트 제작과정을 ‘봄날’ 서체 제작과정으로 살펴보니 좀 더 쉽게 이해가 되는 것 같죠?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고, 흔히 쓰고 있는 다양한 디자인의 폰트가 탄생하는 과정이 이렇게나 복잡하고, 많은 손이 가는 작업이라는 점! 처음 알게 된 분들이 많을 것 같네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의 결정체인 폰트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폰트 불법 다운로드는 아니 될 일이옵니다! 앞으로도 폰트와 관련된 다양하고 재미난 이야기들 많이 들려드릴게요. 기대 많이 해주세요~ ^^
* 본 포스트는 윤디자인연구소의 디자인&타이포그래피 전문 웹진
Typography Seoul(바로 가기) 기사를 재구성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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