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년 전, 온 국민이 의료 혜택을 누리기를 바란 황제의 뜻으로 세워진 대한의원. 1945년 광복 이후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이 되었고, 신관이 개원한 뒤로는 병원연구소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 의료의 역사가 살아있는 이곳에서는 1908년 10월 24일 대한의원 개원일에 순종이 내린 『대한의원개원칙서』(국가등록문화재 제449호)를 볼 수 있습니다.
글. 정이현 | 그래픽 디자인. 하지현, 이은지
국한문 혼용으로 작성된 이 칙서는 당시 활동했던 이름을 알 수 없는 사자관이 필사한 것입니다. 올곧고 의로운 기개가 느껴지는 이 붓글씨 서체에 매료된 어느 정년퇴직한 의사가 이를 디지털 폰트로 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주권재민의 원칙을 마음속에 새기며 온 국민은 물론 세계인을 위해 저작권을 기증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다국어 지원 폰트 「한글재민체4.0」
한글재민체는 『대한의원개원칙서』에 담긴 붓글씨 서체에 기반을 두고 박재갑 전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와 김민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원장이 함께 개발하였습니다. 박재갑 교수는 정년퇴직 후 서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대한의원개원칙서』의 아름다운 한글 서체에 매료되어 붓으로 따라 쓰는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중 인사차 방문한 김민 교수가 이를 보고, 칙서에 기반한 서체를 함께 개발하고 싶다며 의기투합한 것입니다. 또한 김민 교수가 지도하는 박사 과정생들도 서체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만인 2020년 한글날, 한글재민체1.0을 개발하여 발표하였고, 2021년에는 KS표준한자를 추가한 한글재민체2.0, 2022년에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고유한자 203자와 대법원인명용한자 8,279자 등을 추가하여 업그레이드한 한글재민체3.0을 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2023년, 중국인의 일상에서 활용되는 표준 간체자와 번체자, 일본 한자와 히라가나 및 가타카나 문자 등을 추가하고, 윤디자인그룹의 기술 지원으로 수정 및 검수를 거쳐 완성도를 더욱 높인 「한글재민체4.0」을 개발하여 배포합니다.
국내에서 개발하는 폰트에서 한자를 탑재하는 경우, 대부분 한국에서 쓰이는 한자만을 개발합니다. 하지만 이는 정체자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현대 중국에서 사용하는 간체자와 차이가 크며, 일본 한자 역시 고려하여 개발하는 경우는 드물죠. 또한 일본어에서는 같은 문자를 반복할 때 ‘오도리지’라는 반복 부호를 많이 쓰는데, 이를 포함하는 국내 폰트는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글재민체4.0에는 총 9자의 오도리지를 포함하였습니다.
한글재민체4.0은 우리의 아름다운 한글로부터 시작하여 로만 알파벳, 중국의 간체자와 번체자, 일본 문자까지 총 16,253자를 같은 디자인으로 구성한 디지털 폰트입니다. 다국어를 지원하는 만큼 서로 다른 언어권의 문자를 혼용하거나 병용하여 써도 조화로운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올해 한글날에는 현재 개발 중인 한글 11,172자를 탑재한 본문용 ‘한글재민체5.0’과 세계 모든 언어의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풀어쓰기 전용 ‘한글재민체6.0’을 동시에 출시할 예정인데요, 여기에 윤디자인그룹은 풀어쓰기 타이핑을 위한 입력 시스템 개발을 지원합니다. 그리고 한글재민체연구회가 주최하는 <2023 한글재민체서예대전>을 후원하고, 우수상 격인 ‘윤디자인상’을 수상하는 작품으로 ‘한글재민체7.0’을 개발하여 배포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한글재민체는 주권재민의 정신으로 저작권을 기증해왔습니다. 이번 한글재민체4.0 역시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오픈 폰트 라이선스로, 현재 윤디자인그룹 폰코(font.co.kr)를 통해 무료로 배포 중입니다. 여러 문자를 지원하는 만큼 한글재민체4.0이 온 국민을 물론 세계인의 서체로 널리 쓰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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