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4.

[인터뷰 시리즈: 글자-마음 보기집] #12 ‘좋아하는 일을 하며 갓생살기’ 폰트 디자이너 김류희

윤디자인그룹 글자-마음 보기집

 

[꼴] 겉으로 보이는 사물의 모양

[결]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

 

글자(typeface)는 주로 ‘꼴’에 관하여 이야기됩니다. 글자가 품평의 대상이 될 때 그 근거는 대개 꼴의 완성도입니다. 인격이 피지컬과 멘탈의 총합으로 구성되듯, 어쩌면 글자도 그러한 겉과 안의 본연한 아름다움이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사람의 신체와 글자꼴(글자의 모양)이 조응한다면, 사람의 멘탈에 해당하는 글자의 요소는 무얼까, 또 상상하다가 이렇게 답을 내리기로 합니다. 글자를 그리는 디자이너의 태도.

 

그러고 보니, 그동안 『윤디자인 M』은 윤디자인그룹 디자이너들의 산출물에만 주목했던 것 같습니다. 글자의 꼴, 그래픽의 꼴, 타이포그래피의 꼴 등등. 문득 이러한 디자인 작업들의 좀더 깊은 측면을 바라본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글자-마음 보기집]이라는 이름은 ‘글자 보기집(type specimen)’에 ‘마음’을 살짝 얹은 제목입니다. 글자의 [꼴]에만 향해 있던 시선을 글자 디자이너의 [결]로 확장해본다는 의미입니다. 윤디자인그룹 디자이너들이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소개하고, 그와 함께 그들의 ‘마음’도 펼쳐보려 합니다.

 

시리즈명이 [글자-마음 보기집]이고 ‘디자이너 인터뷰’를 표방하지만, 디자인 직종 외의 직원들도 이 시리즈에 (자주는 아니겠지만) 등장할 예정입니다. 윤디자인그룹이 글자를 근간으로 하는 기업인 만큼, 디자이너가 아닌 많은 직원들도 결국은 글자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각자의 직무를 수행합니다. 즉, 그들의 ‘마음’과 ‘결’ 또한 [글자-마음 보기집]에 수록되어야겠지요.

 

윤디자인그룹 직원들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구나, 기계적으로 글자를 생산하는 인적자원이 아니라 저마다의 사고와 방향을 지닌 인격체들이구나, 하고 느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글자-마음 보기집] 열두 번째 인터뷰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갓생살기!’ 폰트 디자이너 김류희

 

 

#한글서예로_시작된_한글폰트라는_꿈

 

“저는 서예과 출신의 폰트 디자이너입니다”

대학에서 먹과 붓으로 화선지 위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어요. 디지털 기기로 작업하는 디자인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분야에서 공부하고 활동했죠. 대학 시절 한글로 작업을 많이 했는데, 우리 눈에 익숙한 한글의 다양한 형태를 분석하고 섬세한 표현을 감상하며 따라 써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졸업 전에 한글서예 관련된 것은 다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한글 고체, 궁체, 조화체, 민체, 판각체 등 한글서예에 관한 것은 대부분 학습했던 것 같아요. 이러한 한글서예 서체에 관한 공부가 현재 윤디자인에서 서체 디자이너로 활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4학년 때 진로특강으로 폰트 디자이너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폰트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알고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폰트는 디자인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저는 붓글씨 폰트를 보면 괜히 마음이 설는데, 폰트 디자이너가 되어 한글에 대한 지식과 미감을 녹여낸 멋진 폰트를 제작해보고 싶었어요.

디자인 전공자가 아닌 저는 폰트에 도전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데, 윤디자인에 입사하고 싶어서 용기를 냈습니다. 덕온공주 친필서체 복원 프로젝트에 꼭 참여하고 싶었거든요. 조선시대 공주의 서체를 디지털화하여 되살아나게 한다는 것은 한글서예를 공부했던 저에게 너무나 경험해보고 싶은 일이었어요. 감사하게도 회사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폰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하는_즐거움_보람찬_결과물

 

“직업 만족도 200%입니다”

폰트 디자이너로서 일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폰트를 만들고 싶어서 폰트 디자이너가 되었는데, 회사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폰트를 만드는 것이라니!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참 매력적인 부분 같아요. 개인적으로 아쉽다고 느끼는 부분은 서체는 제작기간이 상당히 소요되는 편이기에, 당장 눈앞에 성과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같아요. 그래서 더욱 끈기와 인내심이 필요하답니다.

 

“자유로운 디자인 시도로 즐거운 플립폰트 작업”

개인적으로 모바일 기기 전용 글꼴인 플립폰트 작업을 좋아해요. 다른 서체들보다 프로젝트 투입시간이 짧고 디자인에 대한 제약이 적은 편이어서 다양한 디자인을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거든요. 플립폰트는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어서 동기부여가 확실하게 돼요. 긍정적인 피드백은 그동안 서체를 제작하면서 쌓였던 피로를 해소해주고, 아쉬운 피드백에서는 다음 서체 제작에서 보완할 부분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죠. 장기적인 서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잠시 느슨해질 때 호흡이 짧은 플립폰트를 제작하면서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편이에요.

 

제가 만든 플립폰트 [YD갓생살기]는 네모 칸 안에 또박또박 쓴 손글씨 폰트예요. (갤럭시 스토어 폰트 순위 5위까지 올랐던..!) 제가 한창 갓생에 도전하면서 블로그 활동을 열심히 할 때 네이버 나눔손글씨 ‘바른히피체’를 즐겨 사용했는데, 그때 네모네모한 손글씨의 매력에 빠졌거든요. 2023년에도 갓생살자는 의지를 가득 담아 또박또박 일기를 쓰는 것 같은 귀엽고 가독성이 좋은 손글씨 폰트를 제작해보았어요.

 

 

윤디자인그룹 플립폰트 갓생살기윤디자인그룹 플립폰트 갓생살기
김류희가 제작한 플립폰트 [YD갓생살기]

 

 

[YDAwesomenote]는 입사하고 처음 작업했던 라틴 플립폰트인데요, 이 폰트는 영어권 필기체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획의 두께 차이와 글자 간의 연결을 신경 쓰면서 제작했죠. 입사 후 처음으로 만든 폰트고 난이도가 높아서 제작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신입이어서 호기롭게 만들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지금 다시 만들라고 한다면 도망갈 거예요.

 

 

윤디자인그룹 플립폰트 YD언어의정원윤디자인그룹 플립폰트 YDAwesomenote
김류희가 제작한 플립폰트 [YD언어의정원]과 [YDAwesomenote]

 

 

“서체부터 전시까지, 뜻깊었던 안성탕면 프로젝트”

작년 한 해 저에게 가장 뜻깊었던 프로젝트로 안성탕면 전용서체를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안성탕면 한문 로고를 모티브로 제작한 [안성탕면체]와 [안성탕면ESG에코체] 2종으로 출시되었어요. 일반적으로 서체 납품이 완료되면 프로젝트가 종료되는데, [안성탕면체]는 전용 마이크로사이트, 타이포그래피 공모전, 타이포브랜딩 전시까지 진행되었던 조금 특별한 프로젝트예요.

 

 

김류희가 참여한 [안성탕면 전용서체 프로젝트]의 서체 작업 영상

 

 

저는 [안성탕면체] 개발팀의 팀원으로 참여하여 서체 개발, 전시 준비까지 함께 호흡을 맞췄어요. 농심 안성탕면은 전국민적으로 사랑받고 있고, 저 또한 어린 시절부터 경험해왔던 브랜드와 제품이어서 시안 단계부터 편안하게 공감하고 즐겁게 작업했던 기억이 있어요.

 

 

윤디자인그룹 안성탕면 전용서체윤디자인그룹 안성탕면 전용서체
김류희가 참여한 [안성탕면 전용서체 프로젝트]의 <파스타랑 안성탕면 한글찬치> 전시

 

 

서체 출시 이후 <파스타랑 안성탕면 한글찬치> 전시준비팀에 참여하여 안성탕면체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며 서체전시존을 준비했어요. 서체 디자이너로서 서체 전시를 준비하는 경험을 해본 것은 굉장히 행운이었고, 안성탕면체를 통해 사용자들과 서체경험을 함께 공유하면서 서체가 사용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가닿을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붓글씨 서체를 만드는 중입니다”

요즘엔 종이에서 디스플레이 화면으로 옮기는, 날카롭고 시원한 인상의 붓글씨 서체를 작업하고 있어요. 올해 자사 신서체로 출시할 예정이죠. 자세하게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50년간 서예가 활동을 해오신 작가님의 서체를 디지털 폰트화하는 프로젝트에요. 먹과 종이의 질감을 살려서 진짜 화선지에 쓴 것 같은 느낌의 특별한 서체를 제작하고 있답니다. 훌륭한 서예 작품 원도와 서예과 출신 디자이너의 장점이 합쳐진 현대화된 붓글씨 서체가 출시될 예정이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윤디자인_우리회사자랑_(누가시킨거아님)

 

“비전공자도 OK! 체계적인 인턴 교육”

신입 폰트 디자이너가 어느 폰트 회사에 입사해야 할지 고민한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윤디자인을 추천해줄 거예요. 우리 회사는 체계적인 인턴 교육이 준비되어 있거든요. 폰트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는 비전공자도 인턴사원으로 입사하여 폰트의 기초부터 폰트 제작 툴 사용 방법, 실무 경험과 노하우까지 교육받을 수 있어요. 앞서 배운 교육을 바탕으로 자신의 폰트를 직접 제작하는 과제까지 수행해보면서 신입 폰트 디자이너로서의 준비를 마칠 수 있죠.

 

 

윤디자인그룹 인턴 과제
김류희의 인턴 과제: KBO의 기존 영문 서체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한글 [KBO체]

 

 

“실무경험이 폰트 디자이너를 만든다”

윤디자인그룹은 규모가 큰 폰트 회사에 속해요. 회사의 규모가 큰 덕분에 경험할 수 있는 프로젝트의 범위가 방대한 거 같아요. 크고 작은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1년 차부터 플립폰트를 제작하고, 각종 프로젝트에 팀원으로 참여하여 실무능력을 기를 수 있어요.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프로젝트의 PM으로서 서체 기획, 제안, 디자인, 개발, 클라이언트 대응 등 프로젝트의 모든 부분을 총괄하면서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키울 수 있어요.

 

“전 직원 무료, 아아 맛집”

또한 윤디자인은 아이스아메리카노 맛집! 저는 커피를 매우 좋아해요. 한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는 얼죽아이기도 하고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1층 카페테리아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려주시는 아아로 커피수혈 해주는 것이 저의 출근 루틴이에요. 정신이 확 드는 시원한 커피 덕분에 힘차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존중하는 문화 속에 피어나는 아이디어”

저희 TDC는 ‘~님’ 호칭을 사용하면서 수평적인 분위기를 지향하고 있어요. 연차에 상관없이 디자이너들의 의견을 존중해주어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고, 즉각적인 피드백과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에요. 저희의 오전 시간은 키보드 자판 소리와 마우스 클릭 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해요. 각자 부지런히 서체 파생 작업 중이거든요. 조용한 사무실이지만 아이디어 회의, 시안 회의 때는 여느 사무실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회의를 진행하는데, 다들 자유롭게 소리 낼 수 있는 수평적인 조직문화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걷다뛰고_뛰다쉬며_언제나_꿈꾸며_나아가는중

 

“좋아하는 일도 일이니까, 리프레시는 필수에요”

저는 스스로 한계에 부딪힐 때, 빡빡한 일정에 지칠 때 리프레시를 해주는 편이에요. 일을 하다 보면 제 한계를 느껴서 속상하고 답답하거나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 순간 독서를 하려고 해요. 일과 관련된 책일 때도 있고 전혀 관련 없는 책일 때도 있어요. 독서하면서 얻는 지식이 저에게는 위로처럼 다가오더라고요. 참고로 독서러버는 전혀 아니에요.

 

빡빡한 일정에 치여서 번아웃이 올 거 같을 때는 고향인 속초에 다녀와요. 저는 속초에서 나고 자랐는데 한 달에 한 번 이상 속초에 못 가면 급속도로 에너지가 빠지고 의욕 저하가 온답니다. 속초의 바다내음과 익숙한 풍경이 주는 편안함, 소중한 가족들을 보면서 에너지를 가득 충전하고 돌아와요. 고향 집에 다녀올 여건이 안 될 때는 절 위한 선물을 해주는 편이고요. 돈 썼으니까 다시 열심히 일해서 벌어야죠!

 

“폰트 디자이너의 버킷리스트”

폰트디자이너로서 저의 버킷리스트는 두 가지예요. 먼저 온전한 저의 서체를 출시하는 것. 저의 색상을 자유자재로 드러낼 수 있는 폰트 디자이너가 되어 저의 색채가 가득한 서체를 제작하고 싶어요.

 

그리고 존경하는 분의 서체를 한 벌 제작해드리는 것도 꿈인데, 제가 존경하는 분은 10년간 서예를 가르쳐주신 저의 선생님이에요. 10년 동안의 배움이 너무나도 크고 소중해서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방법으로 서체를 제작하여 선물해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11,172자는 좀 무리라면 2,350자로라도 꼭 제작해드리고 싶어요.

 

 

 

폰트 디자이너로서 일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폰트를 만들고 싶어서 폰트 디자이너가 되었는데,
회사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폰트를 만드는 것이라니!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참 매력적인 부분 같아요.

— 폰트 디자이너 김류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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