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arttattler 갤러리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디자이너의 역할은 예술가의 개념을 절대적으로 배제한, 흔히 말하는 문제 해결(Solving Problem)의 조형적 활동을 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는데요, 예술적 요소를 기술적으로 가공하여 디자인한 제품에서 디자이너의 감정이나 사상을 전달받을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었죠.

하지만 최근 들어 순수 예술과 디자인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되면서 디자인 분야에서도 작가성을 논하게 되었어요. 과거 아티스트에게서만 요구되던 작가성이 그 범위의 한계를 넘어서 디자이너에게도 나타내는 시대가 오게 된 거죠.^^ 그렇다고 해서 디자이너가 완전히 아티스트로 전향한 것은 아니에요. 오로지 클라이언트의 요구대로 모든 것을 만드는 것을 넘어 디자이너의 작가성을 담아 디자인을 하게 된 것에 의의가 있습니다. 의뢰를 받아야만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는 의미 없는 시대가 온거죠. 조나단 반브룩은 아티스트로서 디자이너의 역할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디자이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조나단 반브룩(Jonathan Barnbrook)에 대해 함께 알아볼까요?^^


아티스트로서 디자이너 역할하는 ‘조나단 반브룩’ 


조나단 반브룩은 1966년 영국 루톤에서 태어났어요. 루톤은 런던에서 단 몇 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문화 수준이나 생활환경 면에서 수천 마일의 간격이 느껴지는 곳이었어요. 조나단 반브룩은 그 지역의 공영주택에 살면서 매일 공장으로 일하러 나가는 이웃들 속에서 성장했어요.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로는 도저히 생각하기 힘든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여 영국의 디자인 명문 센트럴세인트마틴과 영국 왕립예술대학원에서 학업을 마쳤습니다. 반브룩이 자신을 ‘가족과 성장 배경의 생산물’이라고 지칭하는 데에서 그가 왜 소규모의 독립적인 디자인 작업을 지향하는지 그리고 다국적 기업들의 광고 전략에 반대하는 반스타일리스트(Anti-stylist)로 알려졌는지 알 수 있어요.

전통적인 디자인을 생각해보면 ‘디자인=상업’이라는 생각을 버리기 쉽지 않아요. 대부분 디자이너는 기업에 종속되어있거나 디자인 회사에서 기업의 일을 해주고 있죠. 하지만 조나단 반브룩의 행보는 전혀 달랐어요. 그는 디자인 작업을 통해 사회기반 시설의 사유화, 미국의 신제국주의, 제3세계 국가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강대국들의 현지 공장, 북한과 팔레스타인의 문제 등 당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건드리며 여론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습니다.


조나단 반브룩의 작품 세계



[좌]rosama mcladen(2003)인류의 건강에 'attack'을 가하는 맥도날드와 9.11 ‘attack'으로 세계 평화에 위협을 가한 라덴의 조합이다. [우]corporate fascist(2001), 바코드를 통해 부시를 당대의 히틀러로 변모시킴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의 희생 아래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정치적 과업을 묘사하고 있다.  출처: barnbrook 공식 홈페이지





[상] ART GRANDEUR NATURE 2004  [하] north korea 2.0 (2004), 북한이 가진 비현실적인 면을 풍자한 작품이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북한이 만든 환상은 디즈니랜드가 날조한 판타지와 유사하다.  출처: barnbrook 공식 홈페이지

 



glovanalization(2003), 티베트 불교인 만다라에서 영감을 받았다. 영적인 해탈과 극락왕생을 떠올리게 하는 이 아름다운 이미지들은 사실 물질계의 탐욕과 시기의 상징인 다국적 기업들의 로고들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 barnbrook 공식 홈페이지


또한, 반브룩의 문화 운동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타입 디자인’입니다. 타입 디자인은 시각 디자인의 여러 장르 중에서 가정 정적이며 전통적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인데요, 반브룩은 이러한 타입 디자인에 자신의 정치·사회적인 관점을 확장했어요. 미국 희대의 살인마 ‘맨슨(Manson)’의 이름을 딴 서체(후에 메이슨(Mason)으로 바꿈), 엑소셋(Exocet: 프랑스 미사일 엑조세의 이름을 차용), 배스터드(Bastard: 영국인의 욕설) 등과 같은 서체 명은 모두 언어와 그 언어를 표현하는 서체와의 관계성을 부여한 대표적 사례이죠.




exocet_medium, 출처: VirusFonts 홈페이지


 

조나단 반브룩이 묻는다.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이란?”

그의 디자인을 보고 있자면 '멋진 디자인인지 아닌지'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디자인이라는 것이 전적으로 산업 사회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를 일깨우는 디자이너임이 확실해요. 그래서 그의 디자인을 보고 있으면 '조나단 반브룩 답다'라는 특징이 있어요. 어떤 매체와 메시지를 다루던지 그 디자이너의 냄새가 묻어나는 것, 다른 누군가의 사상이나 감정이 아닌 디자인을 한 디자이너의 사상과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디자이너의 작가성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디자인이 존재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여 디자이너가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할 방법을 제시했다고도 평가합니다.  국내에는 매년 3만 명이 넘는 디자이너가 배출되고 있지만, 그중에 디자이너의 사회적인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고민하는 디자이너가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단지 ‘멋있어 보이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디자인하고 있는지, 그것이 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 없이 지나가는 디자이너가 대부분일 거예요.

 그러나 반브룩은 디자인으로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요. 약한 자의 편에 서고 강자의 독점을 풍자하며 상업주의와 정치 사회에 일침을 놓고 있어요. 한편에서는 디자이너의 이러한 시도들이 잠시 그 영향력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결국에는 간접 영향만을 미칠 뿐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디자인으로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보다는 디자인으로 돈을 벌어 그 돈을 기부하는 편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하기도 하죠.

디자인의 사회적인 역할이 간접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해요. 디자인이 없다고 굶어 죽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디자인은 동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이자 사회적 행위라고 할 수 있으며 디자인을 통해 사회적 역할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책임을 수반한다면 디자인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실천하도록 만들 수는 있을 거예요.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디자이너의 작업을 통해 동요한다면 그것이 간접적인 영향에 그친다 해도 무시할 수는 없겠죠? 조나단 반브룩이 남긴 명언을 소개하며 마무리 합니다. 


"우리는 인류를 사랑한다. 디자인은 문화의 생생하고 역동적인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며 감동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은 인간의 고통과 희망, 사랑을 인류에게 전달함으로써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다." - 조나단 반브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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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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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겨울하늘 2013.12.17 0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나단 반브룩,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디자이너인데,,
    윤톡톡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