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기슭의 멋지고 소박한 동네, 부암동.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이 동네를 여러분은 알고 계시나요? 전 8년 전에 부암동의 존재를 처음 알고 부암동 마니아가 되어 버린 사람 중 하나랍니다! 지금이야 ‘1박2일’이나 ‘VJ특공대’ 같은 유명한 프로그램에서 부암동의 명소나 맛집을 다뤄 많이 알려진 곳이 되었지만 그 때만 해도 서울에 그런 동네가 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었거든요. 15년 전 삼청동에 처음 가봤다가 '금사빠'가 되어 주구장창 갔었는데, 이젠 너무 유명해지고 상업적으로 변질되어 쳐다보기도 싫은 동네가 되어버린 것과는 다르게 부암동은 아직도 애정이 듬뿍~ 가는 곳이랍니다.
부암동이 대체 어디 있는 동네냐고요?
네~ 아직도 모르시는 많은 분을 위해 알려드릴게요!
경복궁과 청와대를 기준으로 동쪽에는 그 유명한 삼청동이, 서쪽으로는 요새 핫한 동네인 서촌(효자동, 통의동, 옥인동, 체부동 등)이 있습니다. 그 서촌에서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부암동이 나와요. 지하철로 바로 접근하긴 힘들고 경복궁역이나 광화문역에서 버스를 타고 10~15분쯤 가면 만날 수 있답니다.
* 부암동 가는 방법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7022, 7018, 1020, 0212번 초록 버스 타고 부암동사무소 하차
5호선 광화문역: 교보빌딩 앞에서 7018, 1020, 0212번 초록 버스 타고 부암동사무소 하차
부암동은 낙원이라는 뜻의 ‘무계동’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만큼 아름답기로 소문난 동네입니다. 청와대와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개발이 제한되어 더디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 덕분에 옛 골목과 성곽길, 오래된 주택들이 인왕산의 녹지를 병풍으로 두고 그림처럼 남아있는 곳이라 불편한 교통에도 불구하고 찾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이제 부암동이 궁금해지기 시작하셨나요? 아니면 이미 부암동을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시나요? ^__^ 부암동엔 백사실 계곡이나 윤동주 언덕을 비롯한 유명한 관광명소나 계열사(치킨집), 자하 손만두, 클럽 에스프레소, 산모퉁이 카페 같은 더 언급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유명해져 버린 맛집과 카페가 많습니다. 하지만 부암동에는 그런 곳 말고도 멋진 미술관이 세 곳이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그냥 모르고 지나쳐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이 미술관들을 제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 그 전에 이거 하나 먼저 짚고 넘어갈게요.
많은 분이 묻습니다. 미술관과 갤러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미술관은 크게 사립 미술관과 국공립 미술관으로 나뉘며 비영리 목적으로 학술 연구와 교육적 기능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미술관은 개인이나 재단, 기관 등을 통해 전시 예산을 충당하고 소정의 관람료를 받는 곳이 많습니다.
반면 갤러리는 작가 발굴과 함께 작품 판매를 목적으로 합니다. 그래서 전시 기간이 미술관에 비해 짧고 유동적이며 무료인 곳이 많지요.
결론! 미술관과 갤러리의 차이점은 ‘작품 판매의 유무!’
그럼 이제 부암동의 미술관 소개에 들어가겠습니다~!
환기미술관
우리나라 근대미술의 양대산맥이라고 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십중팔구 이중섭과 김수근을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수화 김환기(1914~1974)’라고 들어보셨나요? 이중섭과 김수근이 한국적인 소재와 색감으로 국내에 압도적으로 많이 알려진 근대미술 화가라면 김환기는 한국 추상미술의 1세대라 불리며 한국적 서정주의를 바탕으로 한국 고유의 예술 세계를 정립하신 분입니다. 부암동의 대표적인 미술관이라 할 수 있는 ‘환기미술관’은 그의 부인이었던 故 김향안 여사가 남편을 기리고자 1992년 설립한 미술관입니다. 김환기의 작품 상설전시관을 비롯해 시기별로 다양한 기획전을 열고 있는데, 올해는 마침 ‘김환기 탄생 100주년 <김환기, 영원을 노래하다>’ 展을 12월 31일까지 하니 환기미술관을 방문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대별 유화 대표작을 중심으로 과슈, 드로잉 등 120여 점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답니다. 전시 설명 시간에 맞춰 가면 작품과 수화 김환기의 삶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가 될 거에요.
환기미술관은 작품뿐만 아니라 건축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곳입니다. 설계는 김환기와 생전에 가깝게 지내던 건축가 우규승이 맡았는데요, 그는 건축물에 김환기의 작품을 오마주 했습니다. 김환기가 추상으로 표현한 선과 점을 우규승이 미술관을 통해 산과 달로 구상화하며 그곳이 자연과 어울리고 한국의 정취가 있으며 현대적인 세련됨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고 합니다. 전시실 내 작품과 미술관 건물은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해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한 김환기의 세계를 잘 담아내고 있답니다.
환기미술관 내부(내부 사진 촬영 금지. 이미지출처> 환기미술관 홈페이지)
환기미술관의 구석구석
서울미술관
부암동사무소에서 세검정 사거리(상명대 방향)로 몇 분만 내려가면 길가에 위용 있고 세련된 건물 하나가 눈에 띄는데요, 바로 2012년 8월 29일에 개관한 ‘서울미술관’입니다. 국내 사립미술관으로는 리움 다음으로 큰 규모라고 하네요. '황소', '자화상'(1955), '환희'(1955) 등 이중섭의 작품 19점을 대표 컬렉션으로 이 외에도 박수근, 천경자, 김기창, 오치균 등 한국 근•현대 작가의 작품을 100여 점 소장하고 있습니다. 미술애호가로 알려진 유니온약품그룹 안병광 회장이 설립한 미술관으로 이름과는 다르게 ‘서울’과 무관한 개인 미술관이랍니다. ^__^
현재 운보 김기창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고자 ‘예수와 귀먹은 양’ 특별전을 내년 1월 19일까지 하고 있습니다. 운보는 일곱 살 때 열병으로 청력을 읽고 이후 그림에 매진하며 ‘바보산수’, ‘바보화조’로 대표되는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완성했으며, 한국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의 교두보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진 운보의 작품 중엔 6•25전쟁 때 피란처인 군산에서 그린 조선 시대 풍속화 양식의 성화 ‘예수의 생애’ 연작시리즈가 있는데 이것은 한국 회화사와 세계 기독교 미술사를 통틀어 매우 독창적이며 중요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운보의 이 연작시리즈를 비롯해 매우 다양하고 폭넓은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서울미술관이 특별한 이유는 미술관 자체가 풍기는 아우라도 있지만, 석파정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미술관 3층으로 올라가면 흥선대원군이 사랑한 별장, 석파정으로 통할 수 있는데요, 이 동선은 도시와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으로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서울 미술관 입장료에 석파정 입장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된 석파정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장으로 사용되던 곳이에요. 본래 일곱 채의 집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별채 등 세 채가 남았습니다. 수백 년 된 반송(서울시 지정보호수 제60호)이나 19세기 청나라 양식을 그대로 옮겨 놓은 중국풍의 정자 아래 뒤뜰의 계곡 전경도 뛰어난데, 특히 단풍이 아주 일품입니다. 조선 말기를 지나서는 대원군의 후손이 살았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천주교 계통의 코롬바 고아원으로 운영이 되다가 한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이후 서울미술관의 설립자인 안병광 회장이 경매에 낙찰받아 미술관을 짓고 복원작업을 거쳐 일반에게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석파(石坡)정이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수많은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여 있는 그야말로 돌, 물, 나무 같은 자연과 어우러진 도심 속 청정지역입니다. 저는 마침 단풍이 절정일 때 다녀왔는데, 오색찬란한 숲길을 걷고 있노라니 황홀경에 빠진 기분이었답니다!
서울미술관의 MI(Museum Identity)와 일맥상통하는 sign system. (MI design_ d-note)
서울미술관 역시 내부 촬영 금지. 몰래 몇 컷 찍었어요. >__<
흥선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석파정. 가을 냄새가 물씬 납니다~
서울미술관(http://seoulmuseum.org/)
위치: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201번지
관람료: \9,000(전시에 따라 다름)
서울미술관(특별전/상설전) + 석파정 모두 관람 가능
월요일 휴관
자하미술관
마지막으로 오늘 소개하는 3개의 미술관 중에서 가장 아껴주고 싶은 미술관을 소개합니다!
앞서 소개한 환기미술관이나 서울미술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자하미술관은 모르는 분이 훨씬 많을 거에요. 저 역시 8년간 부암동 마니아를 자처해왔지만, 이곳은 얼마 전 친한 후배를 통해 알았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통에 비교적 근래에 생긴 미술관인가 짐작했어요. 하지만 자하미술관은 2008년 6월에 개관하여 벌써 5년이나 지났더라고요. ‘내가 왜 이 미술관을 전혀 몰랐을까?’ 란 의문과 함께 찾아가보기로 합니다.
부암동사무소부터 걸어서 10분 거리라고 하는데, 엄청난 오르막길을 각오하셔야 합니다. 게다가 중간중간 갈림길에 이정표도 없어서 꼭 홈페이지를 통해 가는 방법을 숙지하셔야 합니다. 정말 이런 산꼭대기에 미술관이 있을까 의심을 품고 끝까지 올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자하 미술관에 도착해있을 거에요. (자신 없는 분은 택시를 타고 가세요. 경복궁역에서 3,900원 나옵니다!) 자하미술관은 총 4층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에 있으면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왔을까 생각이 들겠지만, 2층으로 올라가서 미술관의 외관을 제대로 감상하고 뒤돌아서는 순간! 와우-! 감탄사가 절로 나실 겁니다.
인왕산 기슭에 자리 잡은 고요한 이 미술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미술관입니다. 설립자인 강종권 씨에 의하면 인왕산을 등반하다 주변 산세와 미술관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순수한 생각에 이곳에 미술관을 만들었다고 해요. 2층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가히 시선을 압도합니다. 왼쪽으로는 북한산, 오른쪽으로는 북악산의 능선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멋지게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산등성이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집들의 풍경이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자아냅니다. 마음이 절로 맑아지고 차분해지는 이 기분. 너무 흔해져서 입에 올리기도 싫은 ‘힐링’이란 단어가 절로 생각날 거에요.
노출 콘크리트 건물인 미술관에는 창이 많이 나 있습니다. 내부에 자연 채광이 따스하게 스며들어오고 모든 창문은 바깥의 싱그러운 초록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해요. 사재를 털어 세운 이 자하미술관은 비영리 성격의 미술관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보다는 재능 있는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데 그 역할을 다 하고 있습니다. 같은 미술관이지만 앞서 소개한 두 미술관과는 큰 차이지요. 게다가 이곳은 관람료가 없답니다. 그 흔한 미술관 카페도 없고요. 이 모든 것을 공짜로 구경할 수 있다니 오히려 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껏 풍성해진 기분으로 내려오며 올라올 때 지쳐서 보지 못했던 반계 윤웅렬 별장이나 ‘운수 좋은 날’의 현진건 집터까지 느릿느릿하게 구경하면서 오면 더없이 좋은 부암동 미술관 나들이가 될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품은 자하미술관
이상으로 부암동의 세 미술관 소개를 마칩니다!
빨리 관람해보고 싶다고요? 그래도 한꺼번에 보려는 욕심은 버리고 하루에 하나씩만 정ㅋ복ㅋ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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