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27.

[연재] 브랜딩이 아니다, 타이포브랜딩이다 ⑦ 시각꼴 메이커 인터뷰: 최지윤 of ‘빅빅 넘버스’

연재를 시작하며―
타입 & 타이포그래피 매거진 《the T》 제14호 ‘엉뚱상상’ 특집호(2021년 7월 출간)의 콘텐츠를 재구성하여 「브랜딩이 아니다, 타이포브랜딩이다」라는 제목으로 10부작 온라인 연재를 시작합니다.

 

‘글자를 글자로만 바라보지 않기.’ 글자(서체)에 대한 윤디자인그룹의 관점입니다. 과거의 ‘30년 서체 디자인 회사’를 넘어 지금의 ‘브랜딩 기업’으로서, 윤디자인그룹은 또 하나의 지속 가능한 모멘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모멘텀을 우리는 ‘타이포브랜딩’이라 부릅니다. 말 그대로 글자가 중심이 된 브랜딩입니다. 윤디자인그룹의 타이포브랜딩 비전을 현실화는 크리에이터 집단, 바로 엉뚱상상입니다.

 

“엉뚱상상은 글자를 만드는 조직이다. 단, 이때 만들기의 전제는 ‘갖고 놀 수 있을 것’이다. 갖고 놀 수 있는 글자를 만드는 엉뚱상상. 글자를 갖고 논다는 건 어던 의미인가. 글자를 글자로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 글자를 이미지(그래픽)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글자 디자인이 가 닿을 수 있는 영역은 확장된다. (···) 글자를 놀이 도구, 그래픽 이미지, 브랜딩 요소로 바라보고 다룬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는 새로운 대중 문화(pop culture)가 형성되리라고 전망한다.”

― 윤디자인그룹 편석훈 대표 저서 『한글 디자인 품과 격』(2020) 중

 

‘타입 & 타이포그래피 매거진’을 표방하는 《the T》 제14호는, 윤디자인그룹의 엉뚱상상을 전면적으로 다뤘습니다. 엉뚱상상 구성원들의 목소리와 실제 작업을 통해 타이포브랜딩이라는 디자인 장르를 소개한 ‘특집호’인 셈이죠. 디자인을 공부하고 계신 분들, 디자이너로서 참신한 영감을 필요로 하시는 분들 모두에게 좋은 자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연재 순서

― ① 「글꼴 이후의 ‘시각꼴’ 만들기

― ② 「서체가 브랜딩의 주인공이 된다면?(ft. 곰표체)

― ③ 「바이럴 마케팅 폰트의 탄생(ft. 창원단감아삭체)

― ④ 「디자이너만 폰트를 쓴다는 착각

― ⑤ 「갖고 노는 글자 ‘WCG 플레이 폰트’

― ⑥ 「글자티콘의 시대가 온다

― ⑦ 「시각꼴 메이커 인터뷰: 최지윤 of ‘빅빅 넘버스’」

― ⑧ 「시각꼴 메이커 인터뷰: 이재상 of ‘위트 아이콘’

― ⑨ 「시각꼴 메이커 인터뷰: 김정진·이병헌 of ‘엉뚱상상체’

― ⑩ 「연재를 마치며: 엉뚱상상 최치영 디렉터가 말하는 시각꼴, 그리고 타이포브랜딩

 

 

 

*                    *                    *

 

 

 

‘빅빅 넘버스’(2019)

 

폰트는 과연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 윤디자인그룹의 대답은 물론 ‘YES’다. 윤디자인그룹이 정의하는 폰트의 대중문화란 간단하다.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도 폰트를 쉽게 사용하고 일상적으로 즐기는 것. 음악이나 영화가 음악인과 영화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듯, 폰트 또한 디자이너만의 소유는 아니다. 폰트도 충분히 ‘누구나 쉽게 즐길 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 라는 게 윤디자인그룹의 생각이다.

 

하지만 일반 사용자들에게 폰트는 아직 대중적 문화 요소로는 이야기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읽기와 쓰기(타이핑) 행위에 필요한 도구, 즉 문화적이기보다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주로 인지되고 다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윤디자인그룹은 반복하여 자문한다. “디자이너만 폰트를 쓸까?” 이 질문을 캐치프레이즈 삼아 ‘폰트의 대중문화’를 실현하고자 작업하는 크리에이터 집단이 있다. 바로 윤디자인그룹의 타이포브랜딩 전문 조직 엉뚱상상이다.

 

엉뚱상상의 대표 작업들을 다각도로 조명한 매거진 《the T》 제14호. 그리고 매거진의 에센스를 선별해 연재 중인 『윤디자인 M』. 이번 일곱 번째 연재부터는 엉뚱상상 디자이너들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이들의 별칭을 ‘시각꼴 메이커’라 할 텐데, ‘시각꼴’이라는 용어의 정의와 의미는 첫 번째 연재 「글꼴 이후의 ‘시각꼴’ 만들기」 편을 참고해주시기 바란다.

 

 

 “숫자를 크게 쓰기만 해도 ‘디자인’이 되도록” 

  편집 디자이너는 어떻게 빅빅 넘버스를 만들었나 

   interviewee 최지윤 엉뚱상상 편집 디자이너

 

Q.

숫자 폰트인 빅빅 넘버스를 진행하게 되면서 설정한 미션이나 목표는 무엇이었나요?

 

처음에 받은 미션은 축구, 농구 선수들 유니폼 백넘버에 사용할 수 있는 숫자를 만들자는 거였죠. NBA를 예로 들면 농구선수 유니폼에 선수 이름과 백넘버가 적히는데 나이키나 아디다스에서 각 팀의 유니폼을 디자인하면서 백넘버 디자인도 새롭게 하거든요. 그런 마킹 폰트 레퍼런스를 많이 보았고 특이한 유니폼들도 많이 찾아보았어요. 나이키 백넘버 혹은 마킹 폰트라고 치면 관련 디자인들이 아주 많이 나와요. 특히 일본 운동선수들이 특이한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경우들도 많고요. 크게 쓰는 숫자니까 획 가운뎃 줄이 들어가 있거나 팀 엠블럼을 넣어서 디자인을 하기도 해요. 그런 레퍼런스들에서 착안을 해서 크게 쓸 수 있는 숫자와 기호를 함께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죠. 그리고 디테일이 살아있는 숫자를 콘셉트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

볼륨(Volume), 스프링(Spring), 스트라이프(Stripe), 클라우드(Cloud), 스피드(Speed)

총 5종의 가족이 있는데 다섯 가지 콘셉트를 결정하게 된 배경과 특징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숫자를 크게 쓰기만 해도 디자인이 되는, 그런 정도의 디테일을 가진 폰트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서 그래픽 리서치를 했고 초기에는 더 많은 콘셉트와 시안들이 있었고요. 그 콘셉트들을 대표님과 의논하면서 다섯 개 정도로 축소해나가는 과정을 거쳤어요. 다섯 개라는 숫자 자체에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저희의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하면서도 그래픽적으로 잘 표현될 수 있는 콘셉트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어요.

 

5종은 각각의 이름에서 알 수 있는 형태를 닮았어요. 볼륨은 한눈에 봤을 때도 빵빵한 두께감이 느껴지는 폰트, 스프링은 3D로 된 용수철을 구부려서 형태를 만드는 콘셉트, 클라우드는 구름처럼 폭신한 느낌, 스트라이프는 숫자에 줄무늬 디테일이 들어가 있고, 스피드는 그 자체에서 속도가 느껴지는 콘셉트예요.

 

 

Q.

폰트들의 두께가 두껍고 디테일이 많은 편인데

디자인 당시 사용성을 고려해 신경을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특별히 사용성을 고려하지는 않았어요. 처음부터 크게 쓰는 용도로 디자인을 했거든요. 작게 쓰면 의미가 없어요. 작게 썼을 때 디테일이 보이지 않거나 형태가 드러나지 않기에 폰트에서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그래픽적인 효과를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죠. 본문에 쓰기보다는 그래픽적인 표현이 필요한 곳에 쓰는 게 적당해요. 애초에 의도가 크게 썼으면 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사용성을 고려한다면 작게 쓰면 안 된다 정도로 얘기할 수 있겠네요. 크게 쓸수록 디테일이 더욱 잘 드러나고 효과가 극대화되도록 제작되어 있어요.

 

Q.

그래서 빅빅 넘버스를 소개할 때 ‘크게 쓸수록 아름답다’고 설명하는 거군요.

초기에 착안했던 백넘버 외에 어떤 목적을 가진 사용자가 이 폰트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의 백넘버 얘기도 나왔었고 TV 광고에서 ‘이 방송은 15세 이상 관람 방송입니다’와 같이 표시되는 부분에도 사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방송과 영상에서 큰 숫자를 쓰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럴 때 그래픽적으로 작업이 되어 있는 숫자를 쓴다면 시각적으로 주목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요즘엔 자막에도 그래픽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가고요. 그리고 애플 워치에도 다양한 숫자와 그래픽적인 효과가 적용되기 때문에 시계 숫자에도 쓸 수 있을 거라는 얘기도 있었어요. 실제로 적용하지는 못했지만요.

 

그리고 약간 더 엉뚱한 상상도 해보았는데 큰 숫자로 이루어진 전화번호부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제작이 끝나고 나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사용처에 대한 부분들을 고민하기도 했는데 아기들의 숫자 놀이에도 접목시켜 보았어요. 숫자를 프린트한 다음 숫자 놀이, 교육 등에 사용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죠. 아이들이 큰 숫자에 색칠을 하기도 하고 벽에 붙여놓기도 하는 거죠. 엉뚱상상 최치영 대표님이 실제로 아이가 있는데 출력해서 색칠해보는 장면을 봤어요. 교구 쪽과 이야기해서 제품으로 출시하는 방향도 고려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Q.

숫자 폰트가 그래픽화되어 있는 셈인데 보편적인 폰트를 제작하는 것과 달리

제작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요?

 

서체 디자이너가 아니어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저는 편집 디자인을 주로 해오면서 어도비 프로그램에 익숙해져 있었고 폰트를 제작하는 툴은 처음 만져보는 거였죠. 폰트 제작 프로그램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었고 폰트 제작 툴이 어도비 프로그램처럼 세밀하지가 않다고 느껴져서 그래픽적인 요소를 그리는 데 답답함이 있었어요. 우선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에서 글자를 그린 후 폰트랩으로 폰트를 제작했어요.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에서 그린 글자를 폰트랩으로 옮기면 곡률이나 디테일들을 다시 잡아주어야 하는 경우들이 생기더라고요.

 

특히 빅빅 넘버스의 경우 큰 폰트를 디자인하는 것이라 크게 보았을 때 디테일들이 세밀하게 보일 수밖에 없죠. 일러스트레이터에서는 제가 그린 선이나 디테일들이 정확히 구현되지만 폰트랩에 옮겼을 때는 뭉개지거나 곡률이 달라지는 경우가 생겼어요. 제가 폰트랩에 익숙지 않아서 일 수도 있지만 곡률을 다시 다듬으면서도 세밀하게 조절이 안 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예를 들면 곡선을 만들기 위해서 앵커 포인트에서 곡률을 적용해야 하는데 그게 일러스트레이터처럼 자유도가 없어서 찌그러지거나 뾰족한 부분들이 생겨나더라고요. 그걸 세밀하게 다듬는 작업을 계속했지만 완벽해지지는 않았어요. 이 부분을 어떻게 하느냐 고민을 하게 됐고요. 서체 디자이너분들은 경험에 의해 원하는 형태를 조절해가며 만드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윤디자인 서체 디자이너분들께 문의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폰트랩 자체가 한글이나 라틴 알파벳 등 본문용 서체를 만드는 데 최적화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어도비 프로그램으로 하듯 그래픽적인 요소를 정확히 그려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Q.

빅빅 넘버스 보기집도 제작했어요. 제작한 이유는 무엇이었고

이 외에 서체 홍보나 활용도를 점쳐보기 위해 만들었던 제작물이 더 있는지 궁금해요.

 

보기집을 제작해서 온오프라인 서점에 판매했어요. 교보문고, 유어마인드, 땡스북스 등에 입점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외에도 포스터를 제작했는데 판매를 하진 않았고요. 아무래도 일반 한글, 영문 폰트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활용도를 점쳐보기 위해서 많은 대중에게 알리고 싶었던 거죠. 저희 팀 자체에서 폰트는 제작되기만 하고 브랜딩이 되거나 홍보가 되는 경우가 잘 없는 현실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터이기도 했고요. 폰트도 하나의 콘셉트로 설명이 되고 스토리를 담고 있으며 하나의 브랜드로 인지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엉뚱상상의 최종적인 목표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Q.

빅빅 넘버스가 윤디자인에서 제작되는 서체와는 결이 많이 달라요.

엉뚱상상에서 이와 같은 서체들이 제작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딩벳 폰트, 이모티콘 폰트, 숫자 폰트, 그림 폰트 등 지금까지 많은 디자이너가 색다른 폰트들을 만들어 왔어요. 엉뚱상상이 만들고 있는 폰트들이 세상에 전혀 없던 개념은 아닌 거죠. 없는 걸 창조했다기보다는 폰트를 브랜딩하고 홍보하는 목적을 이루고자 다양한 방식을 접목시켰다는 게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의 브랜드가 있다면 어떤 브랜드인지 정의하고 키비주얼을 제작해서 대중에게 브랜드를 인식시키는 과정이 있는데 이걸 폰트에 접목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폰트들을 체계적으로 브랜딩하고 폰트에 스토리텔링을 입히기 시작한 거죠.

예를 들어 ‘브랜딩’이라는 작업도 디자인을 하면서 포함되지 않았던 개념은 아닌데, ‘브랜딩 회사’가 생기면서 “브랜딩을 해야 된다”고 얘기하니 모두가 브랜딩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처럼요. 기존에도 사람들이 했던 것이긴 한데 명확하게 규정하거나 정의한 사람은 없었던 분야인 거죠. 저희도 지금까지 있었던 개념인데도 집중해서 조명한 적이 없던 것을 조명했어요. 일러스트레이션 폰트를 만들어서 홍보하려고 이름을 붙이고, 스토리를 만들면서 언제 쓰는 폰트라고 이야기를 했다는 것, 즉 두루뭉술한 것을 명확하게 정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엉뚱상상 자체가 스토리텔링에 집중되어 있는 회사인 것 같아요. 폰트에 이야기와 맥락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빅빅 넘버스는 글자와브랜딩 팀 당시에 만들었지만 그 이후 엉뚱상상에서 제작 중인 폰트들도 계속해서 스토리들을 가지고 제작되고 있잖아요. 쓰는 사람에 따라서 용도가 달라지긴 하지만 폰트들 각각의 콘셉트를 잡고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부분에서 글자와브랜딩 팀에서 시도했던 개념들이 그 시작이 된 것 같아요.  ·  ·  ·  end of interview

 

FONCO(FONt.CO.kr)에서 빅빅 넘버스 보기

매거진 《the T》 제14호에 소개된 빅빅 넘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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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디자인그룹 ‘엉뚱상상’의 또 다른 책

Letters.Branding Italic Art Book』  &  『BIGBIG NUMBERS Font Speci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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