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18.

자동차 조형 디자인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들


자동차는 우리에게 일상적이고 친근한 것입니다. 어쩌면 너무나 익숙해서 호기심 같은 건 딱히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자동차를 바라보는 시선에 흥미진진함을 더해보고자, ‘자동차 조형 디자인’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들을 해보려 합니다. 



보기 좋고 타기도 좋은 차를 만드는 일


자동차 조형 디자인은 미적 가치를 높이고, 사람(운전자 및 탑승자)을 보호하며 동시에 편안함을 추구하는 일종의 종합적 설계연구인데요. 자동차 조형 디자인 콘셉트를 잡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초기 조형 디자인입니다. 자동차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며 어떤 환경에 적합하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결정하는 단계이지요. 가령, 스포츠 쿠페를 디자인할 때는 주로 젊은 연령대를 타깃으로 삼아 운전자의 스포츠 드라이빙 감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콘셉트를 잡고 고성능의 파워를 뿜어내는 조형체처럼 디자인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미 출시된 타 브랜드의 스포츠 쿠페들과는 차이점을 보여야 하겠지요. 독창적이며 심미적 가치가 높고, 또한 사고발생 시 운전자 및 동승자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디자인이어야 합니다. 


아래 그림은 자동차 조형 디자인의 기초가 되는 사이드 패키지 도면을 이해하기 쉬운 박스로 나타내어 차량 조형의 유형을 구분해놓은 것입니다. 



내용 출처: <자동차 디자인 교과서>(구상 저, 안그라픽스)



위 그림은 안전성 또는 공간 효율성과 같이 어떤 특성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차량의 조형이 변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최근 출시되는 전기자동차 디자인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콤팩트해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차량의 구성 요소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엔진이 전기모터로 바뀌면서 자동차의 엔진 룸이 없어지므로, 엔진룸을 중심으로 디자인된 기존의 조형 디자인도 변화할 수밖에 없겠죠? 따라서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특이한 형태의 자동차가 출시되고, 우리가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전기자동차가 시장을 선점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기초 조형 디자인을 마치면 좀 더 세밀하고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위한 단계로 돌입합니다. ‘모티베이션 디자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모티베이션 디자인이란 말 그대로 디자인에 ‘동기’,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인데요. 소비자의 일반적인 디자인 니즈와 콘셉트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조형 디자인의 목적을찾고, 우리주변의 사물이나 자연물에서 조형 요소로 활용할 수 있는 모티브를 찾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수백 장에 달하는스케치를 거쳐 최적의 형태를 분석하여 새로운 자동차 디자인에 투영하는 방법이지요. 아래 그림의 트레일러 차량은 독수리의 눈매와 글라이더의 날개 형상에서 조형 요소를 차용했군요. 



출처: behance(https://goo.gl/bsZ2I8)



원본 대상의 라인을 단순히 그대로 묘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차용한 라인을 기준으로 독수리 눈매의 인상을 최대한 재현해내는 것이 본 스케치 작업의 목적입니다. 트레일러 헤드 부분에 영감을 준 독수리의 눈매를 자세히 관찰해볼까요? 눈꺼풀에 그림자가 지면서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 있습니다. 눈을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눈동자의 홍채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인상을 주지요. 이는 독수리의 맹렬한 인상을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조형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트레일러의 그릴과 헤드램프가 만나는 곳에 접목시킨다면? 독수리의 눈이 말려 올라간 듯한 면과 선으로 처리하여 날카롭고 매서운 인상을 강조할 수 있게 되지요. 극히 일부분이지만, 이런 방식으로 스케치를 되풀이하면서 최초 의도대로 조형 디자인의 방향을 잘 이끌어간다면 성공적인 조형 디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콘셉트카(쇼카)와 양산차는 왜 다를까?


콘셉트카와 터무니없이 판이한 모습으로 출시되는 양산차를 보며 아쉬워 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개발 과정의 속사정을 알고 나면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출시된 모델의 ‘풀 모델 체인지’, 즉 다음 세대의 자동차 모델이 이전 모델과는 전혀 다른 디자인으로 출시될 때 소요 비용은 약 1,000억 원 이상이라고 합니다. 상하반기 모두 합쳐 5대 이상 새 모델을 출시하는 브랜드들의 경우, 생산 및 개발 부분에서 엄청난 변화를 감행하고 있는 셈이지요. 차량 외형만 보아도 자동차의 외부 판넬을 찍어내는 금형(프레스)이 완전히 다른 형태로 탈바꿈하는 것인데, 이렇게 바뀔 때는 새로운 자동차 한 대를 설계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들어갑니다. 또한 타 브랜드와 경쟁하기 위해서라도 어마어마한 인력을 동원하여 출시 준비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모터쇼를 통해 소개되는 콘셉트카들은 일회성 차량입니다. 클레이 모델(흙으로 깎아서 형태를 만드는 작업) 위에 곧바로 거푸집 작업을 하여 금형을 만들어내는데요. 초기 스케치가 클레이 모델러의 손으로 다듬어지기 때문에 한층 더 신선하고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이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아래 이미지는 ‘2014 인피니티 Q80 인스피레이션’의 콘셉트카입니다. 차량의 사이드 뷰에 나타나는 굴곡과 조형 디자인은 정말 아름다울 정도로 유려합니다. 



출처: 네이버 자동차(http://goo.gl/iHbY1A)



하지만 이런 디자인을 양산차에 접목한다면 우리가 편하게 사용하고 있는 창문 자동 개폐 적용이 어려워집니다. 일반 차량 도어의 단면을 보시면, 창문이 내려갈 수 있도록 도어 내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편평한 호를 그리며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창문이 이렇게 호를 그리는 이유는 주행 시 바람의 영향을 덜 받고, 우천 시 비가 잘 흘러내리도록 하여 시야 확보에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최적의 호-계측 값으로 완성된 조형인데요. 여기에 자동으로 창문을 올리고 내릴 경우, 적어도 호가 지닌 능동 반경의 폭이 유지되어야 자연스럽게 작동됩니다.


2014 인피니티 Q80 인스피레이션 콘셉트카는 면과 면 사이의 깊이 및 폭의 편차가 상당히 심합니다. 도어 단면에 창문의 능동적 움직임을 방해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지요. 안으로 공간을 확보하면 해결될 것 같은데, 그게 또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안에서 확보되어야 하는 실내 공간은 물론이며, 도어 트림의 팔걸이, 도어 핸들 장치, 자동 시스템 장착, 심지어는 안전 가이드 바가 모두 하나의 문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이지요.


이처럼 여러 기술적 문제들과 탑승자의 안전 및 편의를 고려한다면, 화려한 콘셉트카의 볼륨과 디자인을 양산차에 오롯이 적용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콘셉트카와 양산차의 디자인 차이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콘셉트카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습니다. 제조사에서 지향하는 조형 디자인의 철학과 신기술을 접목시켜 향후 생산될 양산차의 목표 지향점을 보여주니까요. 또한, 브랜드 비전을 제시하는 상징적인 모델로서 주목을 받습니다. 양산차의 조형 디자인에 큰 밑거름이 된다는 점엔 변함이 없지요.(제 사견으로는, 근사하고 휘황한 콘셉트카를 모터쇼 행사장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만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 도어의 단면 / 출처: 구글 특허 검색(https://goo.gl/58uUCK)



자동차 조형 디자인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풀어보았는데요. 이 글을 계기로 앞으로 자동차를 바라보는 여러분의 시선에 다소나마 호기심이 어리기를 기대하며, 다음 글은 더욱 알차게 준비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