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30.

‘근대 한글 활자사, 이렇게 재미있었다니?!’ 류현국 교수 세미나 이모저모

 

오랜 시간 한글 납활자를 연구해온 류현국 교수(일본 츠쿠바기술대학, 筑波技術大学)가 윤디자인그룹에서 두 번째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지난해 가을 ‘한글 서체의 원형과 계보(1830~1956)’라는 주제에 이어, 이번에는 ‘한글 서체 원형 질문 보편 진격’이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특히, 류 교수가 십수 년에 걸쳐 수집했다는 한글 관련 희귀 자료와 거기에 얽힌 비화들은 이날의 재미를 더해주었습니다. 지난 3월 24일 윤디자인그룹 사옥에서 열린 류현국 교수의 세미나 내용을 간략히 복기해봤습니다. 

 

 

류현국 교수는 저서 <한글 활자의 탄생(1820~1945)>을 통해 근대 한글 활자사를 정리한 바 있는데요. 이번 세미나에서는 책 내용을 비롯하여 그간 국제타이포그라피협회(ATypI)와 각종 해외 강연에서 발표했던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갔습니다. 국내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풍부한 사료(史料)들과 함께 일반인들은 미처 몰랐던 근대 한글 활자의 발전사를 풀어주었죠. 

 

류 교수는 1970년 제작된 모노타입체의 한글 원도를 소개하며 흥미로운 일화를 보탰습니다. 그는 이 원도를 확인하기 위해 모노타입사를 방문했었는데요. 창고 청소를 겸하는 조건으로 일주일간 머물렀다고 합니다. 직원들이 아예 창고 열쇠를 류 교수에게 맡기기도 했다는군요. 그렇게 고생한 결과, 마침내 딱 여덟 점 남아 있던 한글 원도를 발견했습니다. 그때의 희열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고 그는 술회했습니다. 

 

모노타입체 한글 원도

 

이어 류 교수는 방대한 한글 모형활자 중 1883년 11월 만들어진 ‘4호 활자’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제작자의 이름을 따서 ‘이수정체’라고도 불리는 이 활자는 1886년 발간된 『한성주보』에 쓰이면서 일명 ‘한성체’로 지금껏 알려져왔는데요. 자형 완성도가 높아 국내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활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근대 활자사에 관한 명확한 이해를 위해 ‘한성체’보다는 ‘이수정체’로 표기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류현국 교수는 이수정체가 적용된 대표적인 인쇄물 중 하나로 1886년 간행된 <한글 마니피캇(Magnificat in Lingua Coreana)>을 들었습니다. 이 책은 가톨릭 교서인 <성모 마리아의 기도(Immaculata Virgo Maria)>를 천주교 조선교구 제7대 교구장이었던 블랑(Marie-Jean-Gustave Blanc) 주교가 우리말로 풀이한 번역본입니다. 대한성서공회(Bible Society, 聖書公會)에도 아직 목록화되지 않은 자료로서, 당시 교황의 즉위 3년을 기념하여 150개국 언어로 500부 한정 제작된 것이라고 해요. 그중 하나가 한글로 만들어진 것이죠. 4호 활자인 이수정체가 최초로 사용된 인쇄물이며, 미려한 금장식이 입혀 있다고 합니다. 

 

 

한글 타자기를 발명한 공병우 박사에 대한 이야기 역시 흥미로웠는데요. 류 교수는 공병우 박사가 타자기를 발명하는 동안 반복적으로 자판을 변형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는 다양한 실험의 일환으로서 당시 정부로부터 일관성이 없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한글 발명가로서의 위대함은 군사정부 시절에도 계속 인정받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모노타입사에서도 공병우 선생의 업적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는 사실도 덧붙였죠. 

 

류현국 교수는 가로쓰기와 세로쓰기, 풀어쓰기와 모아쓰기 등 한글과 관련한 여러 논점에 대한 생각도 남겼는데요. 그는 “한글은 본래 음소문자, 음절문자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 가로쓰기와 세로쓰기, 풀어쓰기와 모아쓰기는 찬반의 개념이 아니라 영원히 공존한다는 생각으로 함께 연구해나가야 한다. 세종대왕께서 이 숙제를 우리에게 내주신 것 같다.”라고 밝혔습니다. 

 

 

두 시간 일정으로 기획되었던 이번 세미나는 당일 4시간 가까이 이어졌는데요.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켜주신 참석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세미나와 즈음하여 국내 언론에 류현국 교수의 인터뷰가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래 링크에서 해당 기사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 류현국 교수 인터뷰(경향신문 3월 23일자)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