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1.

[TYPE÷] 쭉쭉 늘어나는 유연한 고딕 「하이파이브」에 관해 나눈 타입 디자이너들의 스몰토크

타입나누기 하이파이브

 

연재 콘텐츠 [TYPE÷](타입나누기)는 윤디자인그룹 TDC(Type Design Center)가 제작하여 새로 출시한 서체, 즉 타입(type)에 관해 나눈 타입 디자이너들의 스몰토크입니다. 서체를 만든 담당 디자이너의 영감과 제작 의도,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동료 디자이너들의 관점은 또 어떨지. 하나의 서체를 주제로 그 서체와 어울리는 공간에서 타입 디자이너들이 대화를 나누고 이를 기록하여 들려드립니다.

 

열두 번째로 나눈 타입은 김지연 디자이너가 제작한 「하이파이브」(🔗폰코에서 자세히 보러 가기)입니다. 쭉쭉 늘어나는 유연한 고딕을 특징으로 한 「하이파이브」에 관해 다섯 명의 타입 디자이너가 신나게 뒷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글. 이정은

사진. 이정은, 박현준, 김미래, 송우빈

 

 

 

하이파이브÷(김지연+이정은+박현준+김미래+송우빈)

 

타입나누기 「하이파이브」 프로필1
「하이파이브」를 제작한 김지연 디자이너

 

타입나누기 「하이파이브」 프로필2
이정은, 박현준, 김미래, 송우빈 디자이너

 

 

 

 

@타인 나 자신 카페

하이파이브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손길이 있어야만 완성되는 동작이다. 이처럼 ‘하이파이브’체를 완성하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과 함께 카페 ‘타인 나 자신’에서 하이파이브를 나누듯 즐겁게 제작후일담을 나누었다.

 

 

 

정은: 하이파이브가 출시된 지 한 달이 넘었어. 윤디자인에 입사해 처음 세상에 내놓은 자식 같은 폰트인데 기분이 어때?

 

지연: 첫 시안을 작업한 날짜를 보니 작년 9월 18일이더라. 회사원의 특성상 중간중간 다른 일이 많이 들어와 생각보다 작업 기간이 길어졌는데, 그래서인지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아.

 

정은: 지연이 작년에 인턴으로 입사하고 인턴 과제로 했던 작업을 발전시킨 거였잖아. 그래서 초창기 시안에서 최종 결과물까지의 여정과 무엇이 많이 달라졌는지 궁금해.

 

지연: 처음에 세 가지 시안을 작업했고, 그중 하나를 선택해 발전시켰어. 처음에는 글자 크기 EM, unit* 이런 단위도 몰라서 사이즈도 이상하더라고.

*EM은 활자의 기본 너비를 말하고, unit은 활자 공간을 일정한 간격으로 나눈 단위로, 디지털 폰트는 정방형을 기준으로 보통 1,000이나 1,024unit 정도이다.

 

정은: 처음에 EM을 얼마로 잡았다고?

 

지연: 1048.

 

정은: 현준, 지연이 인턴이었던 당시에 현준이 멘토였는데, EM 사이즈 알고 어땠어?

 

현준: 음, 뭐랄까. 잘못 들은 줄 알았어. 1048? 도대체 어디서 나온 숫자지?

 

지연: 나도 왜 1048로 작업했는지 모르겠어. 처음엔 기본 설정값으로 시작했다가, 꽉 찬 글꼴이라 자꾸 키우고 키우다 보니…

 

정은: 이건 정말 인턴 시절에만 나올 수 있는 특별한 에피소드다! 7년 차인 현준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면 “정신 안 차려?” 했겠지?

 

지연: 이게 가장 처음 시안과 최종안인데 처음에는 직선적이고 딱딱한 인상이었어. 콘셉트를 정교화하면서 흘림의 형태와 어울리도록 자음의 형태를 변경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처음보다 많이 둥글어졌지. 전반적으로 그게 가장 크게 바뀐 것 같아. 자음 형태도 변화 과정을 보면 ㄷ, ㅍ, ㄹ의 변화가 많더라고.

 

 

타입나누기 하이파이브
타입나누기 하이파이브
「하이파이브」 시안 발전 과정

 

우빈: 처음에 시안 잡을 때 어떤 글자로 했어?

 

지연: ‘산은 오를수록 높다’라는 문장에서 시작했고 ‘산’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작업했어.

 

정은: 인턴 때 현준이 멘토였잖아. 이 시안을 발전해 나가는데 현준이 자주 코멘트를 해줬었는데, 당시에 멘토 현준이 어땠는지 이젠 솔직히 얘기해 봐.

 

현준: 그럼 전 잠시 나가보겠습니다!

 

지연: 너무 귀찮게 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피드백 요청을 굉장히 많이 한 편이야. 그런데 그때마다 늘 가져가서 한 번 볼게요 하면서 꼼꼼하게 봐주고, 빨간펜으로 어느 부분이 어색한지 표시해 자세히 설명도 해줘서 정말 감사했어. 미숙한 시안이었는데 현준 멘토 덕분에 완성도 높은 폰트로 발전할 수 있었어.

 

정은: 그렇다면 현준에게 지연은 어떤 멘티였을까.

 

현준: 나는 오히려 좋았어. 가르쳐 주는 입장에서는 계속 귀찮게 하는 게 나은 것 같아. 나 역시도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그렇게 하는 편이고. 지연이 한 번도 귀찮다 생각한 적 없고, 오히려 피드백 줄 때마다 반영을 잘 해줘서 같이 만들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 그러니 피드백 주는 게 재밌어지더라고.

 

미래: 이 시안을 처음 봤을 때 멘토로서 어떤 느낌이었어?

 

현준: 굉장히 좋은 느낌이 들었어. 이거 인기 많겠다! 그런데 이게 디벨롭 과정이 많았다고 했잖아. 처음에 우리가 가장 신경 썼던 게 획의 통일성인데, 예를 들면 ㄱ, ㅅ, ㅈ 이나 ㄷ, ㅌ 처럼 같은 DNA를 갖고 있는 자소들. 처음 시안에선 그런 부분들이 같은 DNA로 보이지 않을 만큼 개성적이었는데 통일성을 맞춰가는 작업들을 했고, 그다음엔 글자가 워낙 굵다 보니 흰 공간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고민했던 게 기억에 남아.

 

 

타입나누기 하이파이브

 

미래: 혹시 제작자만이 알고 있는 하이파이브만의 섬세한 디테일이나 매력 포인트가 있을까?

 

지연: 획이 두텁게 겹치는 부분에 엄청 미세하게 잉크 트랩*이 들어가 있어. ‘피망’ 글자를 보면 획이 겹치는 부분이 원래는 날카롭게 잘리는 형태인데, 분명하고 부드럽게 보이기 위해 미세하게 파줬어. 이게 400pt로 뽑은 건데, 이 정도로 큰 사이즈로 봐야만 알 수 있는 디테일이야.

*잉크 트랩(ink trap): 작은 크기로 인쇄하도록 설계된 특정 글꼴의 기능이다. 글자 줄기가 예각으로 꺾이는 부분에 잉크가 번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꺾이는 부분의 안쪽을 미세하게 파낸다.

 

 

타입나누기 하이파이브

 

미래: 나는 개인적으로 하이파이브의 ㅍ과 ㅅ꼴이 가장 개성이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작업자로서 가장 애정이 가는 글자가 뭔지도 궁금해.

 

지연: 이 폰트가 ‘산’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시옷에 가장 많이 신경을 썼어. 그리고 피읖도 초반 시안에서는 딱딱했는데, 다른 자소와 같이 좀 더 유연하고 재밌는 형태로 바꿨어. 과거 작업들 보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도 “내가 이렇게 했었다고?” 하며 깜짝 놀라. 과하게 예뻐 보이려고 한 부분들도 많고 말도 안 되게 어색한 부분들도 많은데 최종에는 많이 정제되었지.

 

미래: ㅅ꼴로 시작을 했고, 그것에 가장 큰 애정이 있었다면 그 ㅅ에서 폰트의 콘셉트가 시작됐던 거야, 아니면 다른 콘셉트가 있었는데 거기에 맞게 이 자소가 나왔던 거야?

 

지연: 다들 알다시피 인턴 과제로 시작한 건데, 그때 주제가 ‘나를 담은 글꼴’이었어. 내가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글꼴 역시 유연한 형태로 디자인 해볼까 싶었고. 삐침과 내림획이 있는 시옷이나 중성과 종성이 이어지는 부분에서 유연성이 느껴지는 형태를 고민하기 시작했지. 처음 기획의 키워드는 단순히 ‘유연함’이었는데, 작업하면서 경쾌한 인상으로 발전되었던 것 같아.

 

 

 

정은: 지연 인턴과제 프리젠테이션 했던 날 생각난다! 지연이 평소에 굉장히 신중하고 조용조용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발표할 때는 좀 다른 인상이었어. 어조가 분명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여 놀랐지. 그날 발표 아주 잘했던 기억이 나.

 

지연: 사실 그렇게까지 활달한 편은 아니야. 당시에 최종 발표 앞두고 몇몇 분들에게 미리 발표 연습을 하면서 피드백을 받았는데, 정은 차장님이 폰트와 결을 같이 하기 위해 에너지 있게 발표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정은: 아, 맞아. 내가 그랬다!

 

지연: 과제 프리젠테이션 했을 때만 해도 폰트명이 ‘하나둘셋!’ 이었고, 활기찬 느낌이라 발표날에는 눈 딱 감고 미친척하고 제대로 에너지 있게 발표하자! 다짐했어.

 

정은: 발표를 너무 잘해서 인상적이었어. 그날 인턴 세 명 모두 잘했는데 지연의 경우 평소 이미지랑 많이 다른 느낌이라 쟤가 저렇게 통통 튀는 면이 있네 라고 생각했지.

 

현준: 지연은 노력형이네.

 

지연: 항상 노력하고 있어. 폰트 디자이너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엉덩이의 힘이라고 생각해. 끈기 있게 노력하는 힘!

 

정은: 하이파이브 폰트명 정할 때 후보군이 많았잖아. 그 후보군 중에서도 최종적으로 하이파이브로 결정한 이유는 뭐야? 그리고 하이파이브는 누가 추천해 준 이름이야?

 

지연: 미래님이 추천해 줬어. 아까 말한 것처럼 인턴과제 시절엔 ‘하나둘셋!’이었는데 그때도 미래님이 추천해 준 거였거든. 그런데 공교롭게 최종안도 미래님이 추천해 준 ‘하이파이브’가 됐어.

 

현준: 미래가 조력자였네!

 

미래: 숨은 조력자!

 

우빈: 제2의 사수!

 

 

 

지연: 너무 고마웠어. ‘하이파이브’라는 어감이 폰트와 잘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에 미래님이 네이밍을 추천해 주면서 피읖꼴이 뭔가 손바닥끼리 만나 손뼉을 짝- 치는 느낌이라고 했거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듣고 보니 그렇게 보이더라고!

 

정은: 맞아. 예뻐. 하이파이브는 라틴도 너무 예뻐. 특문도 너무 예뻐. 특문에 대해서는 특히나 TQC (윤디자인 내부 품질관리 센터) 부장님께서 일본어 영역을 엄청나게 칭찬해 주셨어.

 

현준: 그런 경우 진짜 흔치 않은데.

 

지연: TQC 검수 부탁드리고 며칠 후에 메신저로 일본어 영역 어떻게 그린 건지 물어보시는 거야. 어떤 폰트를 참고했는지, 뼈대를 두고 한 건지를 여쭤보시더라고. 일본어 작업을 처음 해보는 거니까 잘못해서 혼내시려는 건가 싶어서 좀 쫄았어. 그리고 솔직하게 말씀드렸어. 뼈대를 두고 한 게 아니고, 무드가 비슷한 여러 개의 레퍼런스 폰트를 모아서 어떤 표현을 참고하면 좋을지, 그리고 어울리는 구조가 무엇일지 고민했다고 구구절절 설명하다가 “저 그냥 백지에서 시작했습니다” 했는데 “백지에서 했다구요?” 놀라시더라고.

 

정은: TQC 부장님이 내게도 개인적으로 이 폰트 일본어 영역 칭찬을 많이 하셨어.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다고.

 

일동: 오~~~~~

 

현준: 일본 갈 자격이 있어. (지연은 인터뷰 다음 주 일본 여행 예정이었다)

 

지연: 가타가나는 직선적이라 표현이 덜한데, 히라가나는 곡선적이고 획의 움직임이 많이 보여서 하이파이브의 특징과 잘 맞아 떨어지게 작업이 되었던 것 같아.

 

현준: 난 아직도 일본어가 어렵던데. 쓰는 방식이 우리나라와는 다르잖아. 그걸 100% 이해하지 못한 채로 다른 언어를 그리는 게 정말 어려운 일 같아. 그러다 보니 레퍼런스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도 하고.

 

정은: 다른 언어권 글자를 디자인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지. 맞다, 하이파이브는 합자도 예뻐!

 

미래: 맞아. 단위기호 같은 것들도 공들인 티가 나. 합자의 경우엔 표준 합자에 임의 합자도 많이 작업했던 것 같은데.

 

 

「하이파이브」의 일본어와 합자 예시
「하이파이브」 일본어와 합자 예시

 

지연: 합자도 인턴 과제 했을 때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이거든. 왜냐면 하이파이브 한글은 획의 움직임이 느껴지게 작업이 되어 있는데, 라틴은 이탤릭이 아니다 보니 쓰는 형태를 어디에 어떻게 표현해 보면 좋을까 고민했어. 그러던 중에 우빈님이 “합자를 해보면 어때요?”라는 거야. 너무 괜찮은 아이디어라 여러 시도를 해본 거야. 그러고 보니 하이파이브는 정말 나 혼자 한 게 아니네!

 

정은: 만약에 개인디자이너로서 이 폰트를 출시했다면 결과물이 많이 달랐겠는 걸.

 

현준: (가장 첫 시안을 보며) 여기서 조금 나아진 정도였겠지.

 

우빈: EM은 1048이고…

 

지연: 맞아. 정말 여러분들의 여러 도움을 받았어.

 

정은: 지연의 학창 시절이 궁금해. 일 년간 지연을 지켜보니 폰트만 잘 하는 게 아니라 그래픽적으로도 편집, 영상에 사진까지 두루 잘 하는 것 같아. 어학에도 관심이 많고. 중국어도 배우지 않았어?

 

지연: 맞아. 다음주에 일본 여행 가서 일본어도 조금 공부하고 있어.

 

정은: 봐봐. 다재다능하다니까! 아까 말했던 것처럼 모든 분야에 노력은 다 필요한 건데, 그 많은 관심 분야 중에서도 폰트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생각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어?

 

지연: 처음 타이포그래피 세계에 입문한 계기는 학교 다닐 때 ‘한울’(디자인대학 한글 타이포그래피 연구동아리연합)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면서야. 레터링을 해봤는데 재밌더라고. 그러면서 레터링을 넘어 폰트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폰트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기 보다는 관심이 가고 재밌는 것을 추구하다 보니 어느새 폰트 디자이너가 되어 있네.

 

정은: 학교 다닐 때 학점 좋았지? 다 잘했을 스타일이야. 뭘 했어도 잘 했을 거야.

 

우빈: 지연님 편집디자인도 잘 하고

 

미래: 영상도 잘 하고

 

정은: 폰트로 와줘서 고마워!

 

 

 

지연: 그 분야들이 폰트와 아예 다른 것 같지 않아. 특히 편집 디자인을 하면서 폰트랑 비슷하다고 생각했거든. 예를 들면 레터링은 글자를 그래픽디자인 관점으로 자유롭게 의도를 풀어낸다고 하면, 폰트는 규칙과 통일성이 중요하잖아. 편집디자인 역시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데 있어서 자유분방한 레이아웃을 가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보통은 통일성 있게 하나의 디자인을 쭉 가져가니까. 그런 면이 폰트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

 

정은: 그렇네.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지연이 벌써 윤디자인에서 생활한지 일 년이 넘었어. 지연의 첫 회사인데, 직업노동자로서 1년을 살아낸 소감이 어때?

 

지연: 솔직히 말해도 돼? (웃음) 일의 속도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구나, 아까 엉덩이의 힘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진짜 진짜 더 많이 중요한 거였구나라는 걸 조금씩 깨닫는 중이야. 집이 조금 멀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작업은 참 재밌어!

 

정은: 항상 8시 반에 출근해서 5시 반에 퇴근하잖아. (윤디자인은 유연근무제라 오전 8-10시 사이 자유롭게 출근할 수 있다) 퇴근 이후에 뭐해?

 

지연: 퇴근 이후에는

 

정은: 공부한다고 하지 마!

 

지연: 공부하지는 않아. 아침에 일찍 오는 건 수영하고 오면 그 시간이고, 퇴근하고는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쉬기도 하고, 사진 찍는 거 좋아하니까 밖으로 돌아다니며 풍경 사진을 찍기도 해. 언어 공부하는 것도 그냥 취미고. 요즘은 프랑스 자수에도 관심이 있어서.

 

미래: 그럼 그중에서도 요즘 지연이 가장 꽂혀있는 건 뭐야?

 

지연: 최근에 할머니가 안 쓰시는 필름 카메라를 하나 주셨어. 신도리코 카메라인데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그래서 필름을 사서 사진을 찍고 현상을 해봤는데 너무 재밌는 거야!

 

우빈: 만약 일상속에서 하이파이브를 마주하면 사진 찍을 거야?

 

지연: 당연하지! 한 100장 찍어야지. 100장이 뭐야, 갤러리가 터질 때까지 찍어야지!

 

 

 

정은: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잘 안 보이겠지만, 서점 신간 코너에 가면 곧 보이기 시작할 거야. 이 폰트가 어디에 사용되면 좋을까?

 

우빈: 네이밍 자체도 되게 힘차고 긍정적인 느낌이라 자기계발서 같이 힘을 북돋아주는 책에 사용되면 좋을 것 같아.

 

지연: 나도 서점 가서 책 구경하는 것을 좋아해서 표지에 사용된 폰트를 보며 어떤 게 쓰였나 유심히 보긴 하거든. 서점은 내가 자주 가는 공간이기도 해서 표지에 임팩트 있게 사용된다면 신기하고 기쁠 것 같아.

 

정은: 이런 주목도 높고 굵은 폰트 스타일이 디스플레이 폰트의 트렌드이긴 하잖아. 비슷한 무드의 폰트들 속에서 하이파이브만의 개성 포인트는 뭘까.

 

지연: 어쨌든 ‘유연함’인 것 같아. 처음 기획했던 대로 휘어지는 형태가 눈에 띄는 요소니까. 한글씨 폰트 중 ‘시선들’의 누워지는 듯한 글줄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하이파이브도 그만의 독특한 글줄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게 다른 비슷한 인상의 폰트들과는 차별화되는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해.

 

 

타입나누기 하이파이브

 

미래: 만약 하이파이브 패밀리를 확장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고 싶어. 이 폰트는 가늘어져도 예쁠 것 같거든.

 

지연: 예전에 부장님이 이 폰트는 배리어블로 해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 여건이 되면. 시장 반응이 괜찮다면 해보고 싶어.

 

정은: 그렇네! 메인 콘셉트가 ‘유연함’이니까. 플렉서블한 느낌이 배리어블이랑 딱 맞아 떨어진다. 더 쭉쭉 늘어나도 재밌을 것 같아.

 

현준: 하이파이브가 지연이 윤디자인에 들어와서 출시한 첫 폰트이긴 하지만, 시장에 내놓은 첫 폰트는 아니잖아. 이전 폰트 작업할 때와 뭐가 어떻게 달랐어? (하이파이브 이전에 올해 초 타 플랫폼에 제야체를 출시했다)

 

지연: 작업하는 스타일이 완전히 달랐지. 기간도 다르고. 이전 폰트는 거의 2년을 혼자서 만들었거든. 21년에 시작해서 23년에 마무리 했으니까. 그런데 하이파이브는 그것보다 훨씬 짧게 작업했지. 게다가 이전 건 본문용이었고, 이번엔 제목용이니까 둘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기도 했고. 해보지 않은 스타일이라 더 재밌게 한 것 같아.

 

정은: 좀 더 마음이 가는 게 있어?

 

지연: 앗. 이건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묻는 것 같은데! 아주 조금은 있지만…

 

정은: 보호해주겠습니다.

 

현준: 그러면 이전 폰트는 혼자 하다 보니 작업 기간이 굉장히 길었다고 했잖아. 그에 비해 하이파이브는 꽤 짧았던 거고. 작업 기간이 길고 짧은 것에 대한 각각의 장단점은 뭐가 있을까? 뭐가 더 나은 것 같아?

 

지연: 앞서 말했듯이, 두 작업의 성격이 달라서 정확하게 비교하기는 어려워. 하이파이브는 획의 표현이 없는 고딕 계열이라 기간이 짧았던 것도 있지. 그래도 역시 그 중간 정도의 기간이 딱 적당한 것 같아. 개발 기간이 길어지면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처음 작업한 글자와 나중에 작업한 글자의 생김새가 많이 달라지더라고. 폰트라는 게 글자 하나만 수정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비슷한 형태의 글자들까지 전부 수정해야 하니까. 기간이 무조건 긴 게 좋은 건 아니지. 반대로 기간이 짧으면 수정할 시간이 부족하니까 그만큼 아쉬움이 남아. 하이파이브도 지금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아. 완성본도 이런데 처음 시안은 아예 보지도 못 하겠어.

 

정은: 스스로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네.

 

지연: 또 반대로 다 완성해놓고 찬찬히 보면 이런 부분은 그래도 괜찮게 했네? 생각하기도 해.

 

정은: 지연은 삐약이 폰트 디자이너잖아. 삐약이 디자이너로서 느껴지는 폰트 디자인의 트렌드 같은 게 있을까? 업계에 오랜 시간 있던 사람들보다 오히려 이제 막 발을 들이기 시작한 사람 눈에 더 잘 보일 수 있거든.

 

지연: 나는 내 폰트가 유행했으면 좋겠어! 다른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하기 보다 내가 트렌드를 이끌어 가는 게 더 멋지지 않을까? 너무 큰 포부인가!

 

현준: 멋져. 다음 작업 엄청 기대해야지. 다음에 하고 싶은 글자 스타일이 있어?

 

지연: 어떤 폰트를 만들고 싶은지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워. 지금까지 해본 것보다 안 해본 게 훨씬 많으니까.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 현재로선 그래픽적으로 보일 수 있는 제목용 폰트를 많이 만들어 보고 싶어.

 

우빈: 하이파이브의 인상을 어떤 장르로 표현해볼 수 있을까? 고딕, 명조 이런 구분 말고 영화나 노래의 장면이 연상된다든지.

 

지연: 장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처음에 인턴 과제하면서 시안 문구 뽑을 때 페퍼톤스 노래 가사를 선택했었어. 페퍼톤스 노래 특유의 통통 튀고 경쾌한 무드를 떠올렸던 것 같아.

 

 

 

우빈: 리드미컬한. 씩씩하게.

 

정은: 우당탕탕 학원물.

 

미래: 획이 굵고 휘어지는 데에서 오는 강한 힘이 있다 보니 역동성이 있어. 젊은 느낌.

 

현준: 지연의 10년 후는 어떤 모습일 것 같아? 그때도 폰트 디자인을 하고 있을 것 같아?

 

지연: 10년 후가 상상이 잘 안 되는데… 여전히 직업이 폰트 디자이너일지는 모르겠지만 폰트는 그때도 꾸준히 하고 있을 거야. 폰트 자체는 잘 맞고 재밌는 작업이거든.

 

정은: 취미부자님, 또 배우고 싶은 게 있어?

 

지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문제이긴 해. 요즘은 악기를 배우고 싶어. 드럼.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딱 한 달 배워봤는데 요즘 다시 생각나더라고.

 

정은: 다음에 비트 있는 폰트가 나오는 건가? 하이파이브를 보니 지연의 다음 폰트도 너무 기대돼!
그럼 우리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해볼까? 혹시 회사 생활 하면서 선배들에게 바라는 점 있다면?

 

지연: 처음 해보는 회사 생활인데, 주변에서 정말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어. 하이파이브 폰트 디자이너란에 ‘김지연’이라는 이름이 올라가 있지만 내 이름 뒤에 괄호 치고 박현준, 김미래, 송우빈 등 많은 분들의 이름을 적어야 할 만큼 모두의 도움이 컸다고 생각해.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도와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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