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엉뚱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볼프강 바인가르트(Wolfgang Weingart)는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일반 회사원들에게도 귀감이 될 법합니다. 스위스 출신임에도 포스트 모더니스트로 통하는 점이나, 그래픽 디자인계에서 ‘뉴웨이브 타이포그래피의 아버지’로 불리는 명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는 ‘익숙한 것’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거쳐 그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풀어 말하자면, 모더니즘을 철저히 배운 뒤에야 비로소 포스트 모더니즘을 시도한 것 같다는 뜻이지요. 바인가르트의 시작은 식자공(植字工, typesetter)이었습니다. ‘식자’라는 건 말 그대로 글자를 심는 일입니다. 활자 조판 시대에서부터 바인가르트는 직접 글자를 만지고 배열하는(심는) 작업을 하며 수습공 시기를 보낸 셈입니다. 이때 체득한 기본기는 이후 바젤 디자인학교(Basel School of Design)에서 착실히 다져집니다. 학생 시절 그는 스위스 모더니즘을 충실히 전승하고 있던 에밀 루더(Emil Ruder)와 아민 호프만(Armin Hofmann)으로부터 디자인을 학습했지요. 



학교에 들어간 때가 1963년인데, 5년 뒤인 1968년 이 학교에 그래픽 디자인 대학원이 생기면서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파격’이 태동한 것이 이 즈음입니다. 글자의 가독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분방한 타이포그래피, 망점(halftone) 효과와 콜라주(collage) 기법을 활용한 극단적 이미지 변형 등의 실험이 개시된 것이지요. 바인가르트는 이 실험을 일시적 테스트쯤으로가 아니라 그야말로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확장시켜나갔습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주목받지 않고 영향력도 없다면 가독성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What is the use of being legible, when nothing inspires you to take notice of it)”. 규칙과 명확성이 중요시되는 스위스 모더니즘에 대척하는 행보. 모더니스트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지요. 특히 바인가르트를 가르친 에밀 루더의 실망감은 퍽 컸을 터. 바인가르트와 루더의 당시 일화는 <타이포그래피의 숲>(홍디자인, 2013)이라는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 책은 스물한 명의 디자이너들의 저마다의 디자인 철학과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일종의 에세이 묶음집입니다. 필자들 가운데 바젤 디자인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전공한 최문경의 글에, 바인가르트와 루더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인가르트가 아직 학생이던 1965년 2월 10일, 선생이었던 루더는 제자에게 마치 최후 통첩 같은 노트를 남겼다고 해요. ‘이런 태도를 바꾸지 못하겠다면 4월 부활절 전까지 학교를 나가달라’라고. 루더가 바인가르트의 포스트 모더니즘적 작품 경향을 언짢아 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루더는 유니버스(Univers) 예찬론자였습니다. 헬베티카(Helvetica)와 비견되곤 하는 이 모던한 서체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디자이너였지요. 그런 그의 눈에, 바인가르트 같은 새파란 학생이 유니버스나 헬베티카가 아닌 베르톨트 악치덴츠 그로테스크(Berthold Akzidenz Grotesk)를 애용하는 것이 곱게 보였을 리 없겠지요? 바인가르트 쪽은 어떤가 하면, 그 역시 스승만큼 고집 센 인물입니다. 최문경의 글에 따르면, 바인가르트는 루더를 자신의 선생이라 부르지 않으며, 프로필에 늘 ‘혼자 배운 디자이너(self taught designer)’라고 써놓는다고 하네요. 하기야, 1960년대에 바젤 디자인학교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을 가르쳤을 가능성은 희박했을 터이니 바인가르트의 주장도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긴 합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수업 시간에 버젓이 ‘딴짓’을 하고 있던 골칫거리 학생에 대한 루더 선생의 심정도 이해가 가고요. 그런데 프로타고니스트•안타고니스트 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루더의 은퇴 시기에 비범함을 발현합니다. 루더가 바인가르트를 후계자로 정한 것이지요. 1970년 루더의 영면 후, 바인가르트는 스승(물론, 본인은 인정하지 않지만)의 수업을 이어받습니다. 여기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과연 고수들끼리는 서로를 알아본다는 강호(?)의 야화처럼 다가오네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기까지의 포스터 작업물 / 출처: AIGA



1941년생인 바인가르트는 일흔 살이 넘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그는 세계적 영향가가 되었고, 특히 에이프릴 그레이먼(April Greiman) 같은 미국 출신 후배 디자이너들을 가르치며 이른바 ‘아메리칸 뉴 웨이브’ 형성에 일조했습니다. 2013년 AIGA(American Institute of Graphic Arts)는 바인가르트에게 메달(AIGA Medal)을 수여하며 그의 “타이포그래피에의 탐험(typographic explorations)”에 대한 공로를 치켜세웠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단순히 모더니즘에 대한 안티 성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바인가르트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단지 ‘뭔가가 마음에 안 든다’라는 지엽적 사고는 그저 트렌드로 그치고 말지요. 바인가르트의 경우, 모더니즘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통해 그것을 극복해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그래서 ‘안티’ 모더니즘이 아니라 ‘포스트’ 모더니즘인 것입니다.) 



AIGA 메달리스트 볼프강 바인가르트 헌정 영상 / 출처: AIGA



바인가르트를 통해 우리가 익숙하다고 여기는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정말로 우리에게 그것들은 익.숙.한.가.’ 실은 우리 가운데 대부분은 전깃불이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이라든지, 모니터 화면이 활성화되는 원리 같은 것들은 자세히 모릅니다.(딱히 알 필요가 있다는 건 아니고요.) 따져보면 익숙한 것들의 대부분은 ‘잘 모르는’ 것들입니다.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혁신이란, 그 익숙한 것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렇게 ‘포스트(post)’ 시대는 열리는 것이지요. 바인가르트의 사례가 입증하듯 말입니다.


※ 본문 최상단 타이틀 이미지 출처: Swiss Design Awards





 

Posted by 윤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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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절 2015.02.12 1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터가멋지네요~글 잘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