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보면 영문으로 써있는 간판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국역 근처는 조금 다릅니다. 지난번 소개해드렸던 바와 같이, 종로구에서 인사동을 중심으로 한글특화거리를 조성하는 방침을 따라 시행했기 때문인데요, 간판은 한글로 표시해야 하고 외국 문자로 표시할 경우에는 한글과 병기해야 한다고 하네요. (아래 기사 참고)


▶ 종로구 vs 기업, 한글간판 병기 두고 ‘신경전’ (바로 가기)


그래서 종로구 안국역 근처를 둘러보면 특히나 한글로 된 간판들이 많습니다. 



안국역 2번 출구, 출처: 다음지도 로드뷰 2015년 8월 촬영



자 한번 볼까요? 안국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이런 거리가 펼쳐집니다. 2, 3층의 나지막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가게들이 길을 따라 양쪽으로 쭉 늘어서있는데, 낯익은 상점들이 보입니다. 사진 왼쪽 한 켠에 24시간 열려있는 편의점이 보입니다. 자, 좀더 가까이 가서 볼까요?



GS25 한글 간판



아닛! 한글로 ‘지에스25’라고 적혀있네요?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모습이 아닙니다! 원래 작년 이맘때에는 우리가 아는 그 영문 간판 그대로였었는데, 올해 새로 한글간판으로 바꾼 것 같습니다. 한글화된 간판에는 영어 발음 그대로 ‘지에스’라고 간단하게 써있고, 글자 형태는 제목용 고딕체(산세리프) 형태입니다. 원래 로고의 알파벳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산세리프 형태이기 때문에, 한글도 깔끔한 고딕체를 쓴 것으로 보입니다. 숫자는 기존 숫자를 그대로 썼습니다.



[좌] 기존 영문 간판 [우] 한글 간판의 모습



그런데 위 이미지에서 살펴볼 수 있다시피 한글 글자들의 사이공간이 알파벳에 비해 굉장히 좁습니다. 그리고 글자의 속공간도 굉장히 좁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글자 ‘에’가 다른 두 글자에 비해 획수도 많아서 더 좁아 보이기도 하네요.

 

이 간판은 돌출간판으로 글자의 외곽선을 따라 재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에’와 같은 경우에는 중성(모음)의 곁줄기 부분이 너무 가늘어서 외곽선 그대로 재단할 수 없어서 하얀 공간을 곁줄기 위아래로 더한 후 재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간판을 좀더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하얀 공간을 줌으로 인해서 멀리서 보았을 때 ‘에’가 아닌 ‘예’로 잘못 읽힐 가능성이 있었어요. (저는 실제로 ‘지예스’라고 써있는 줄로 알았답니다. >_<;; 가뜩이나 한글로 되어있는 것도 낯설었는데 글자도 ‘예’라고 읽히니…. 저는 무슨 ‘GS25’의 아류 상점, ‘지예스25’인 줄 알았다니까요.;;)



배스킨라빈스31 한글 간판



자, 이 지에스25를 지나치면 서른한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 가게, 배스킨라빈스31이 보입니다. 하얀 간판에 배스킨라빈스 고유의 색이 보입니다. 배스킨씨와 라빈스씨의 앞머리 글자를 따서 만든 ‘BR’ 로고에 31을 표현한 센스도 그대로 가져와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역시 영어가 아닌, 한글로 변신했네요!




[좌] 기존 영문 간판 [우] 한글 간판의 모습



기존의 배스킨라빈스 로고와 한글 로고를 살펴볼까요? 기존의 로고에 쓰인 영문(라틴 알파벳) 서체는 에미그레(émigré)가 만든 Variex(1996)라는 폰트와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http://www.myfonts.com에서 판매 중) Variex는 라이트(Light), 레귤러(Regular), 볼드(Bold) 이렇게 세 가지 굵기로 되어 있는데, 굵기 상으로 보아 레귤러가 로고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네요. 





Variex를 보게 되면 S가 마치 인테그랄 기호(∫)처럼 보이는데, 아마도 식별성을 좀더 높이기 위해서 배스킨라빈스 로고에서는 s의 형태를 기존 우리의 눈에 익숙한 곡선의 s로 변형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좀더 상큼, 발랄하게 톡톡 튀는 느낌을 주고자 전체적으로 글자들을 리듬감 있게 배치하였습니다. 글자들마다 각자 각도를 주어서 글자의 중심축이 좌우로 왔다갔다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그에 반해 한글 로고는 다소 정돈되어 보이는 조합형(특히 세벌체) 한글의 모습입니다. 글자 자소들이 상단 중심으로 배열되어 있어서 윗줄은 흔들리지 않는 시각선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자 구조의 특성 상, 조합형(특히 세벌체)이기에 받침이 없는 글자와 있는 글자의 하단선이 크게 차이가 나게 됩니다. 그래서 보시는 바와 같이 하단선에서 리듬감을 느낄 수가 있지요. 알파벳에서처럼 글자의 중심축을 변화시키지 않더라도 글자 구조 자체에서 리듬감이 느껴지기 때문에 ‘젊고 발랄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던킨도너츠 한글 간판



자, 배스킨라빈스 건너편, 즉 안국역 2번출구와 3번출구 사이에 또 하나의 한글간판이 보입니다. 바로 던킨도너츠입니다. 던킨도너츠의 영문 로고타입은 프랑크프루트(Frankfurter)라는 폰트가 사용됐습니다. (폰트 이름이 소시지 이름과 동일하네요 :-)) 획의 굵기가 도톰하며 글자 획의 끝부분이 동글동글합니다. 특히 대문자 O는 정원의 형태로 되어있어서 동그란 도너츠를 연상시킵니다. 던킨도너츠라는 브랜드와 정말 잘 어울리는 서체라 볼 수 있지요. 



[좌 기존 영문 간판 [우] 한글 간판의 모습



자, 한글로 만든 로고는 어떻게 보이나요? 라틴 알파벳과 한글은 구조적으로 너무 다른 글자이기 때문에(라틴 알파벳 – 음소글자, 한글 – 음절글자) 영문 로고에서 나오는 느낌을 그대로 살리기는 힘듭니다. 그래도 최대한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것 같이 보이는데요, 알파벳의 동글동글한 이미지를 담기 위해 한글에서도 마찬가지로 각 획의 마무리를 동그랗게 처리했고요. 알파벳의 모난 곳이 없는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한글에서도 자음 ㄷ과 ㅋ, ㄴ 등의 꺾임 부분에 곡선을 가미해주었습니다. 



[좌] 던킨 한글 로고 [우] 일반적 한글 고딕체



특이한 것은 ‘킨’의 초성 z인데요, 보통 ㅋ의 덧줄기는 직선의 형태로 표현되지만, 여기서는 덧줄기가 동그란 원으로 표현되어있습니다. 이 원을 보면 먼치킨(조그맣고 동그란 도너츠, 던킨도너츠의 메뉴)이 생각나시나요? 아니면 킨사이다(킨사이다의 ‘킨’에서도 저렇게 덧줄기가 동그랗죠)가 생각나시나요? :-D



[좌] 던킨 한글 로고 [우] 일반적 피오피 글씨체, 출처: 사단법인한국문화센터 (바로 가기)



그리고 다른 글자 ‘도’를 보면 이 글자도 조금 독특한 형태를 갖고 있지요. 여기서 사용된 기법은 주로 P.O. P(피오피, Point Of Purchase) 글씨체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글자에서는 초성 ㄷ과 중성 ㅗ를 합치거나 따로 떼거나 하는데요. 피오피 글씨체에서는 글자를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낱글자(초·중·종성)를 모두 표현합니다. 특히 중성(모음)은 일반적으로는 초성에 묻히는 경우가 많은데 피오피 글씨체에서는 주로 중성이 초성을 덮기도 하지요.


던킨 로고의 ‘도’에서도 초성보다는 중성을 더 표현하기 위해서 초성을 덮어버렸네요! 그리고 아예 겹치는 부분을 오려내어 경계선을 여백으로 표현해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글자 ‘너’에서는 초성과 중성을 합쳐서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던’과 ‘킨’의 속공간(하얀 여백)이 주는 느낌을 ‘도’에서도 주기 위해 일부러 한 것 같은데, ‘너’와 ‘츠’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으니 조금은 아쉽습니다. 


자, 마지막 보너스로 또 하나의 간판을 보여드릴게요. 이 곳은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나와서 앞으로 쭉 걸어가다 보면 길 모퉁이에 있는 건물 2층의 카페예요. 바로 탐앤탐스입니다. 정말 정직하게 ‘탐.앤.탐.스.커.피’라고 써있지요?





기존 영문 로고가 큰 특징이 없는 산세리프체로 되어있으면 한글 로고 또한 한글 고딕체로 바뀌어진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요, 이 탐앤탐스도 그런 경향의 간판입니다. 한글 고딕체는 눈에 띄는 특징 없이는 어느 폰트회사의 어떤 고딕체인지 알기가 쉽진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글을 위해 찾아본 결과! 윤디자인연구소의 윤고딕이라는 것을 알아냈네요. :-)





간판에 쓰인 서체와 실제 윤고딕330을 비교해본 결과 동일한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고딕체의 특징은 주로 초성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초성 ㅌ과 ㅋ, ㅍ에서 윤고딕의 특징을 발견해냈어요. (그림의 동그라미 표시 참고) 초성 ㅌ,ㅍ의 이음줄기를 보면 컷팅된 형태가 수직형태입니다. 그리고 초성 ㅋ의 덧줄기가 약간의 곡선이 가미된 사선으로 되어있지요. 


이렇게 글자의 세부 특징을 이야기해도 잘 모르겠다고요? 그래서 제 변변치 않은 포토샵 실력을 발휘하여 윤고딕330으로 간판의 형태처럼 한번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보니 어떤가요? 더 똑같아 보이나요? :=D





우리 주변에 보이는 여러 간판들, 영문 로고도 좋지만 이렇게 한글화된 간판도 색다른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한글 특화거리가 안국역 일대 뿐만 아니라 경기도 여주시 중앙로도 있다고 하네요. 전국 곳곳에 이런 한글 특화거리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 

*기사 참고: 여주 중앙로 '한글간판 명품거리' (바로 가기)



▶ 인사동에서 발견한 한글과 영문 간판의 차이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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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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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쿠니 2015.11.27 10: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탐앤탐스커피 한글간판이 윤고딕이었네요!! +_+

  2. BlogIcon 뫼듀 2015.11.27 15: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정말 멋지네요~!!! 해외 프랜차이즈의 이름이야 영어로 표기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국내 기업들은 영어 표기 대신 한글로 표기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는 했는데 모든 영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거리가 있었군요~ 이런 것들이 더욱 더 많이 사용되었으면 하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BlogIcon 윤톡톡 2015.11.27 16: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죠?ㅎㅎ점점 거리가 영어로 물들어 가는데 우리 한글로 표기된 간판과 거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네요ㅎ
      또 놀러오세요^^

  3. 새봄짱!! 2016.01.20 09: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국에서 영문간판일 경우 한글을 병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해요.
    예전에는 단순히 고딕체로만 바뀌어서 한글디자인은 엉성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새 만드는 한글디자인은 그 회사의 특징이 잘 나타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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