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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추위로 부들부들 떨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입춘에 들어섰네요. 어서 따뜻한 봄이 왔으면 하는 요즘. 이번 포스팅은 마음을 울리는 예술 영화 한 편으로 정서적 감흥을 느껴보도록 해요. 우선 아래 두 편의 자동차 광고를 보고 시작할게요.  


CF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쿠페 '인생은 짧다' , 15s, 2008



CF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쿠페 '드리프트' , 15s, 2008


예전 2008년에 나온 자동차의 TV 광고예요. 한때 많이 등장했던 광고라 다들 한 번씩은 보셨을 텐데요, 광고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소프라노 조수미 못지않은 마성의 목소리인데요. 이 TV 광고의 배경음악은 1995년에 개봉해 수많은 관객에게 음악적 감동을 선사했던 영화 <파리넬리>의 OST에 실린 <행복의 그늘가에서(Ombra fedele anchio)>란 곡이랍니다.



카스트라토의 삶을 그리다, 영화 <파리넬리>


영화 <파리넬리>(1995),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파리넬리>는 <가면 속의 아리아(1989)>, <왕의 춤(2000)>등 주로 중세시대 음악영화를 만들어온 제라르 꼬르비오 감독의 작품이에요. 16~18세기 무렵 여성이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던 당시 성가대나 오페라에서 여성 소프라노의 역할을 대신한 카스트라토는 큰 인기를 누렸는데요. 영화는 18세기 무렵, 3옥타브 반을 넘나드는 마성의 소리를 가진 전설의 카스트라토 파리넬리(본명: 카를로 브로스키, Carlo Broschi, 1705~1782년)의 삶을 그려내며 바로크 시대를 완벽해 재현해 냈습니다. 

 

영화가 제작될 당시 카스트라토의 음역을 노래할 수 있는 소프라니스트가 없던 터라 카운터테너 데렉 리 레이긴(Derek Lee Ragin)과 메조소프라노 에바 마라스 고드레프스카(Ewa Mallas Godlewska)의 목소리를 각각 합성해 존재할 수 없는 영역의 소리를 만들어 극찬을 받았죠. 


그 당시 ‘여자여, 잠잠하라’라는 성경 구절이 있었는데요. 당시 성직자들은 그것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여자에게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했답니다. 그래서 성가대의 여성 파트를 변성기 이전의 소년들로 구성된 합창단에게 맡겼는데요. 변성기 이전의 소년들은 높은 소리를 낼 수는 있지만 목소리에 힘이 부족했고 얼마 안 가 변성기가 와서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갔답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카스트라토였죠. 변성기 이전에 거세하면 성대의 순이 자라지 않아 소년의 목소리는 유지되지만 허파는 성장해 남성 특유의 힘을 지녀 맑고 힘 있는 목소리를 가질 수 있었답니다. 카스트라토는 여성의 높은 음역에 남성 특유의 강력함을 결합한 이상적인 소프라노였답니다. 이렇게 성악가로서의 조건을 갖춘 카스트라토는 18세기에 전성기를 이뤘고, 성공하면 인기와 부가 따랐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만 해마다 6천여 명의 소년들이 거세를 당했지요. 하지만 거세한 아이들 수천 명 중 단 몇 명만이 카스트라토의 삶을 유지했고 대부분은 실패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답니다.


 영화 <파리넬리> 중에서, 캡쳐 화면


헨델과의 운명적 만남


본명이 카를로 브로스키인 파리넬리. 예명인 파리넬리는 후원자인 나폴리의 파리나 형제의 성에서 따왔습니다. 카를로 브로스키는 1705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났으며 카스트라토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17살이던 1722년이었어요. 영화는 나폴리의 한 광장에서 파리넬리가 트럼펫 연주자와의 음악 대결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요. 파리넬리는 트럼펫을 압도하는 화려하고 정교한 소리로 연주자의 기를 완벽히 꺾어 놓습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일제히 ‘파리넬리’를 연호하며 그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냅니다. 



영화 <파리넬리> 중에서, 트럼펫과의 대결


이때 대결을 지켜본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는데요. 바로 음악의 어머니 헨델이랍니다. 이 광경을 본 헨델은 파리넬리에게 만나자는 편지를 보내는데요. 런던에 있는 자신의 극장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는 제안을 하지만 파리넬리는 작곡가인 형을 도와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합니다. 이후 파리넬리는 형과 함께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전역으로 순회공연을 다녔어요. 당시 그의 인기는 대단했는데요. 그의 형 리카르도가 작곡한 오페라 곡 중 음악적 기교로 가득한 <이다스페(Idaspe)>에 나오는 아리아 <행복의 그늘가에서(Ombra fedele anchio)>를 부르는 장면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인에 불과한 음악가 파리넬리의 목소리에 객석에 앉아 있던 백작부인이 독서를 멈추고 눈물을 흘릴 정도였으니까요. 이 곡은 앞서 보여드렸던 자동차 광고에 삽입된 곡이기도 합니다.



영화 <파리넬리> 중에서 행복의 그늘가에서(Ombra fedele anchio)’


1734년, 파리넬리는 그의 스승인 포르포라의 극장이 어려워져 헨델극장에 밀린다는 소식을 듣고 스승을 돕기 위해 런던으로 건너갑니다. 포르포라의 귀족 극단은 파리넬리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수많은 관중으로 붐볐는데요. 여기서 관객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무대에 등장한 파리넬리는 <나는 파도를 가르는 배(Son qual nave ch'agitata)>를 부릅니다. 파리넬리의 런던 무대는 크게 성공을 거뒀고 헨델극장은 결국 파리넬리가 소속된 포르포라의 극단에 밀려 참패를 당합니다. 



형과의 결별을 선언하다



영화 <파리넬리> 중에서 ‘나는 파도를 가르는 배(Son qual nave ch'agitata)’


런던 무대에서 큰 승리를 얻은 파리넬리는 이후 기교만 가득한 형의 음악을 쓰레기에 비유하며 형과의 결별을 선언합니다. 이어 헨델의 음악에서 진정한 예술을 발견한 파리넬리는 몰래 헨델의 극장에서 음악을 엿듣기도 합니다. 이를 눈치챈 파리넬리의 연인 알렉산드라는 헨델의 악보를 몰래 훔쳐 그에게 가져다줍니다. 파리넬리는 악보를 들고 헨델을 찾아가 헨델의 음악성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화가 나 있던 헨델은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는 자연을 거스른 속임수에 불과하다며 그를 비난합니다. 그럼에도 파리넬리는 귀족극단 무대에서 헨델의 아리아를 부릅니다. 이런 파리넬리의 행동에 관객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냅니다. 하지만 파리넬리를 비난하던 관객들은 서서히 그의 음악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때 파리넬리가 부른 노래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 <사랑하는 나의 신부여(Cara sposa)>라는 아리아입니다. 이 곡은 헨델의 아리아 중에서도 멜로디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바로크 오페라로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명을 준 곡이랍니다. 



영화 <파리넬리> 중에서 ‘사랑하는 나의 신부여(Cara sposa)’


이 노래가 끝난 후 헨델은 파리넬리를 찾아옵니다. 헨델은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로는 자신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고 비웃으며 그의 형에게 들은 거세의 비밀을 폭로하지요. 하지만 파리넬리는 비난에 동요하지 않고 이어 헨델의 오페라 아리아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울게 하소서 (lascia ch'io pianga)>를 부릅니다. 그의 목소리가 극장을 가득 채우자 관객들뿐 아니라 그를 비난하던 헨델마저도 감동합니다. 그리고 파리넬리의 생애에서 가장 위대한 공연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비운의 카스트라토, 마침내 안식을 찾다



영화 <파리넬리> 중에서 ‘울게 하소서 (lascia ch'io pianga)’


파리넬리는 1737년 스페인의 펠리페 5세의 부인 엘리자베타에 의해 초청을 받습니다. 엘리자베타는 펠리페 5세의 우울증 치료를 부탁했고 파리넬리는 펠리페 5세를 위해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펠리페 5세는 그의 노래를 듣고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파리넬리의 노래는 신비한 능력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영화 <파리넬리> 중에서 ‘높으신 조베여(Alto Giove)’


스페인 궁정에서 오로지 국왕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만 노래하는 파리넬리. 이때 형 리카르도가 인생을 걸고 작곡한 오페라를 파리넬리에게 바치며 용서를 구하기 위해 찾아옵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형을 파리넬리는 아내인 알렉산드라에게 데리고 갑니다. 두 형제는 마지막으로 한 여자를 함께 사랑하고, 파리넬리는 형을 통해 자신의 아내를 임신시킵니다. 자신의 죄를 속죄한 리카르도는 이후 전쟁터로 떠나고 자신의 아들을 갖게 된 파리넬리는 마침내 괴로운 삶에서 안식을 얻게 됩니다.


18세기 아름다운 소리를 요구하는 인간들의 욕망이 낳은 중성적 존재 카스트라토. 기교를 넘어 진정 신이 내린 천상의 목소리를 들려준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 (lascia ch'io pianga)>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저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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