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21.

제주도, 월정리 해변, 그리고 ‘고래가 될 카페’


이곳에서는 3초면 충분합니다. 눈을 빼앗긴 1초, 마음을 빼앗긴 2초, 신발을 빼앗긴 3초. 신발을 벗는다는 의미는 이미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겠죠. 1년 전만 해도 이곳은 아는 사람만 아는 카페에 지나지 않았어요. 근처에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죠. 단지 간판도 없는 카페 하나가 덩그러니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에요. 


모든 직장인의 로망, 힐링 휴가. 그 속에는 늘 제주도가 포함되어있어요. 여권을 들고 멀리 해외로 떠나지 않아도 타국으로 여행 온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고요. 다른 누군가가 ‘나’라는 사람이 이곳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낯선 공간이기도 해요. 푸른 바다와 시원한 바람, 마음의 휴식을 즐기기에는 더없이 충분한 곳이 아닐까 싶은데요. 제주도 월정리 해변에 자리잡고 있는 지구별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을 하나 소개해볼까 합니다. 얼마 전부터 ‘아일랜드 조르바’가 아닌 ‘고래가 될 카페’로 불려진 이곳, 제주 월정리 해변의 ‘고래가 될 카페’입니다. 



달이 머무는 마을 월정리, 그리고 고래가 될 카페 

 


월정(月亭), 달이 머무는 곳. 달마저 반하게 만들었다는 아름다운 바다 덕분에 이 마을의 이름은 월정리입니다. 크지 않은 백사장에 새하얗고 고운 모래, 하늘과 바다. 그리고 바람이 있는 월정리 해수욕장은 지도에는 나오지 않아요. 만조 때 일정 크기의 백사장이 나와야 해수욕장으로 인정되기 때문이죠. 400년 역사의 세계자연유산마을, 조용한 바닷가의 시골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고래가 될 카페’가 유일한 이유랍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월정리 땅값을 이 카페가 다 올려놨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이 카페는 ‘고래가 될 카페’로 불리우지 않았어요.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의 이름을 따서 ‘아일랜드 조르바’로 처음 이름을 정했죠. 이곳은 여자 셋이 만든 카페였어요. 제주도가 좋아 월정리에 카페를 연 세 여자. 하지만 지금은 그 중 키미 혼자 남았죠. 


어느 날 두 남자가 여행 중 이 카페에 들렀어요. 두 남자(자카와 호야)는 키미에게 여기서 일해도 되느냐고 물었죠. 그렇게 해서 키미는 친구가 생겼어요. 다시 셋이 되었죠. 곧 각자의 주방을 만들었어요. 키미는 커피, 호야는 파스타, 자카는 톳밥. 서로의 메뉴에는 관여하지 않는 게 룰이라면 룰이에요.


<이곳을 유명하게 만든 사진, 움직이는 바다가 그림처럼 벽에 걸려있어요.>


얼핏 보면 그냥 가정집처럼 보이는 고래가 될 카페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인터넷에 떠돌던 그림 같은 사진 한 장 때문이에요. 이 사진을 많은 궁금증을 낳았고, 사람들을 이곳으로 오게 만들었죠. 하지만 이곳을 다녀오고 나면 꼭 그 사진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사람들의 시선을 끈 것은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카페를 지키는 세 사람의 매력이에요. 자카와 호야는 지분에 의자를 놓고 우쿨렐레를 튕기며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자유로움을 들려줍니다. 이 두 사람은 가방에 잔뜩 짐을 챙겨서 떠나는 여행자가 아니라, 몸 하나만 가지고 떠나는 자유로운 지구별 여행자들이죠. 이들처럼 진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만큼 이곳의 사람들도 점차 늘어났어요. 


<유명해져서 미안해요. 그러길래 블로그에는 왜들 그렇게 올려가지고!>


제주도의 어떤 여행자는 고래가 될 카페를 이상한 카페라고도 해요. 커피를 주문하면 30분이 걸린다고, 그래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이상하다고. 그런 사람들에게 이곳은 이런 말을 남깁니다. “유명해져서 미안해요.”



우리랑 같이 놀다 가요!


고래가 될 카페에는 여러 명의 식구가 있어요. 이 사람들을 빼놓고 이곳을 설명할 수는 없죠. 자유로운 영혼들이 자리잡고 있는 이곳, 그 사람들을 잠깐 소개해줄게요. 

   


키미 : 목을 축일 수 있는 음료를 만들어요. “어머, 빨대를 거꾸로 꽂았네. 미안해요~ 구석구석 깨끗하게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웃음)” 주문한 음료를 다 만들고 나면 외쳐요. 어눌하면서도 늘어지는, 특유의 힘없는 톤으로 말이죠. 직접 듣지 않으면 그 특이함을 느끼지 못해요. 웃음이 절로 나오죠. 서울의 카페에서 친절함을 가장한 하이톤의 목소리만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곳 식구들이 음료가 나왔음을 알려주는 발성법을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거예요. “코리아노, 귤꽃 소복 사르르 라떼 두잔~”


자카와 호야 : 둘은 홍대에서 파스타를 만들어 팔았어요. 노래도 하고, 기타도 치고. 그러다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이죠. 제가 여행을 했던 6월에는 둘 다 가출 중이었어요. 한 명은 사랑을 찾아 떠났고, 또 다른 한 명은 차를 사러 갔다고 했죠. 키미는 사람들이 배고프다고 밥을 찾을 때마다 둘을 애타게 찾았어요. “배고파요? 흑~ 미안해요. 지금 주방장 둘이 가출했어요.. 머핀이라도 먹을래요?”


요 : 고래가 될 카페를 제게 알려준 요는 금속공예를 하는 대학생이에요. 요도 자카와 호야처럼 이곳에 들렀다가 일자리를 얻었죠. 요의 임무는 혼자 오는 사람 마음 헤아리기에요. 외롭지 않게, 그리고 편안하게 해주기.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죠. 



칸 : 홍대에서 칵테일을 만들어요. 종종 홍대에 출현하죠. 제가 이곳에 갔을 때는 한창 준비 중이었으니, 아마도 지금쯤은 고래가 될 카페에서도 홍대 칵테일을 맛 볼 수 있게 되었을 거예요. 


연수 : 팥빙수를 만들어요. 고래가 될 카페에 올 때 혼수로 제빙기를 가져온 것이죠. 이번 여름은 유난히 날이 더워 원 없이 팥빙수를 만들었을 것 같네요. 일이 없을 때는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바다를 거닐어요. 


지나 : 고래가 될 카페가 좋아 무작정 월정리로 온 사람. 아마 지금도 이곳에서 함께 지내고 있겠죠. 하루 종일 너무 바빠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못한다며, 문 앞에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요. “어서와요~”


지현 : 키미를 도와 음료를 만들어요. 후덕한 외모가 인상적이죠. 이곳 식구들에게는 엄마 같은 존재랍니다. 


일리 : 일리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외로운 고양이죠. 낮에는 사라졌다가 밤이 되면 기어 들어온대요. 외로운 일리는 30분째 그루밍 중이군요. 



고래가 될 카페는 나를 일하게 만든다



고래가 될 카페에 종일 있다 보면, 저도 모르게 이곳의 스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하루 만에 제주도 현지 사람처럼 까맣게 그을렸으니 그렇게 보일 만도 하죠. 나이 지긋한 부부가 이곳을 찾아왔네요. 두 분이 서로 사진을 찍어 주는데, 꼭 이곳에 대한 좋은 추억을 만들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르신, 두 분이 이쪽으로 서세요. 제가 사진 찍어드릴게요. 여기가 가장 유명한 포토존이에요.”

결국 자진해서 사진을 찍어드리고 커피 주문도 도와드렸어요. 이곳은 이런 곳이에요. 스텝이 따로 있지 않은 카페. 이곳의 식구들도 이렇게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고래가 될 카페는 한번에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다 보고 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며칠 뒤면 또 새로운 게 생겨나서 누군가의 블로그에, 또는 카페에 사진이 올라와있죠. 1년 전에는 팔지 않던 칵테일을 팔고, 없던 메뉴판이 생기고, 새로운 사람들이 이곳을 지키기도 해요. 또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생기는 것을 반대하는 모금함도 만들어놓았고, 지금은 수제 햄버거도 팔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다음이 더 기대되는 카페죠. 다음에 갔을 땐 또 어떤 게 생겨나 있을까? 하고요. 


<네가 뭘 좋아할 지 몰라서 커피 한 잔 값과 편지를 준비했단다.>


다음에 이곳을 찾을 사람을 위해 편지와 물건을 봉투에 담아 보관해 둘 수 있어요. 돈을 남기는 사람도 있고, 편지만 남기는 사람도 있어요. 내가 아는 다른 사람도 이곳에서 자유를 만끽했으면 하는 마음을 잘 헤아린 것 같아요. 저도 다음주에 제주도를 찾는 친구를 위해 커피 한 잔 값과 편지를 맡겨 보았어요.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일지 기대되는군요. 



이곳을 지켜줘. 고래가 될 때까지


고래가 될 카페가 자리한 월정리는 비싸진 땅값에도 한창 개발이 진행되고 있어요. 제가 여행을 갔을 때에도 이곳 바로 옆 건물이 공사 중이었고, 주변에도 카페들이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죠. 잘되는 아이템에 열광하는 한국사람들이라 그런지 몰라도 모두 비슷한 컨셉이에요. 지금도 그렇지만 몇 년 뒤에는 더 사람 많은 관광지가 될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그때에 여기 오는 사람들이 저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을까요?


<고래가 될 카페는 바로 여기. / 출처 : 구글 지도>


고래가 될 카페 

주소 :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4-1

   (올레길 20코스 중간, 월정리 해변가에 위치. 제주공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40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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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될 카페 페이스북 (바로 가기)



고래가 될 카페는 제주도의 하늘처럼 아쉬워요. 파아란 하늘을 기대하지만,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맑은 날은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죠. 제가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서울의 어느 카페들처럼 멋진 인테리어와 깔끔한 화장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대신에 열린 마음의 사람들과 자유로움, 그리고 바다가 있기 때문이에요. 3초 만에 신발을 뺏기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고래가 될 카페는 그냥 자유로운 보헤미안을 위한 카페가 아닌, 꿈이고 희망이에요.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장소일지도 모르죠. 도시가 지루해졌다면 지금 당장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끊어보세요. 한 시간 반이면 당신이 꿈꾸는 자유를 얻을 수 있어요. 바로 고래가 될 카페, 이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