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와 영감

‘붓을 잡은 연기자’ 이상현의 캘리그라피 20주년 기념전, 그리고 윤디자인그룹의 아티스트폰트

Yoondesign M 2019. 11. 7. 14:08


캘리그래피 작가 이상현은 두 가지 호칭으로 불립니다. ‘캘리그래퍼’와 ‘붓을 잡은 연기자’인데요. 연기자···? 붓을 잡은 캘리그래퍼를 연기자로 받아들이려면 어떤 사유가 필요한 걸까요. 우선 국어사전을 펼쳐 ‘연기’를 찾아보겠습니다. ‘배우가 맡은 인물의 행동이나 성격을 창조하여 표현함’이라고 하네요. 영영사전의 ‘acting’은 이렇습니다. ‘the performance of a part or role in a drama’. 


두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연기의 요소는 ‘창조’와 ‘표현’과 ‘퍼포먼스(performance)’입니다. 캘리그래퍼의 예능[藝能, 재주와 기능(技能)을 아울러 이르는 말]과도 일치하죠. 그렇습니다. 이상현은 ‘연기자’가 맞습니다. 한국의 1세대 캘리그래퍼인 그가 ‘연기’를 해온 지 올해로 20년이라고 해요. 이 말은 즉, 우리나라에 캘리그래피가 문화 예술로서 정착한 지도 20년이라는 의미죠.


그래서, 지금 서울 마포구 요호아트스페이스에서는 <붓을 잡은 연기자 이상현의 캘리그라피 20주년 기념전 및 출판기념식>(2019.11.2~17, 이하 ‘캘리그라피 20주년 기념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상현의 캘리그래피 작품, 그의 신간 에세이 『붓을 잡은 연기자, 그에게서 읽는 열정의 힘』을 만날 수 있는 전시예요. 또한, 오는 11월 29일 출시 예정인 윤디자인그룹 『아티스트폰트』의 새 시리즈 「Yoon 이상현 위로붓」과 「Yoon 이상현 다짐펜」을 처음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글·사진 _ 기획콘텐츠팀 임재훈


 


포스터를 클릭하시면 요호아트스페이스의 <캘리그라피 20주년 기념전> 소개 페이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윤디자인그룹 × 이상현’ 20년


대학에서 서예학을, 대학원에서 동양미학을 전공한 이상현은 1999년 필우(筆友)들과 함께 캘리그래피 회사를 창립했습니다. ‘달필’, ‘장식적 서법’을 뜻하는 영단어 ‘calligraphy’는 당시 한국에선 생소한 단어였죠. 게다가 접미사 ‘-er’이 붙은 ‘calligrapher’, 즉 ‘캘리그래피를 하는 사람’이라는 직명 또한 낯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까, 1999년은 우리나라 1세대 캘리그래퍼들의 태동기였던 셈이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2019년, 한국에는 ‘순수예술로서의, 그리고 대중문화 언어로서의 캘리그래피’가 어엿이 정착해 있습니다. 이상현이 올해를 ‘한국 캘리그래피 20주년’이라 규졍하고,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을 여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캘리그라피 20주년 기념전>에서 볼 수 있는 이상현의 최근작

[왼쪽] 『가장 빛나는 별』(2019, 78×108cm, 아트지에 먹과 아크릴) / [오른쪽] 『소망』(2019, 54×78cm, 아트지에 아크릴과 색지)


 

전시장 풍경


윤디자인그룹과 이상현이 ‘글자’로 인연 맺은 지도 약 20년입니다. 2001년 그를 비롯한 일곱 작가의 붓글씨체 패키지 『필 서체』 이후, 윤디자인그룹과 이상현은 다양한 지방자치단체 전용서체 개발을 함께해왔는데요. 「추사사랑체」(예산군·2010), 「완도희망체」(완도군·2018), 「정선아리랑체」·「정선아리랑혼체」·「정선아리랑뿌리체」(정선군·2018) 등이 모두 이상현의 붓글씨 원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결과물들입니다.


그리고 올해, 윤디자인그룹과 이상현은 또 한 번 글자의 연을 맺었습니다. ‘한국 캘리그래피 20주년’을 기념하여 이상현의 손글씨 서체 『윤디자인 아티스트폰트』 제작을 협업한 것! 붓글씨체 1종, 펜글씨체 1종 등 총 2종인 서체 구성으로, 붓과 펜 각 도구 특성에 따른 필획·필압·필세가 섬세하게 표현되었죠.


<캘리그라피 20주년 기념전>에 마련된 ‘윤디자인그룹 × 이상현’ 섹션

[Curated & Designed by 백선희(윤디자인그룹 타입디자인센터), 김연희(윤디자인그룹 커뮤니케이션 사업부), 이예진]

 

<캘리그라피 20주년 기념전>을 통해 처음 선보이는

윤디자인그룹의 새 『아티스트폰트』 시리즈 「Yoon 이상현 위로붓」과 「Yoon 이상현 다짐펜」



<캘리그라피 20주년 기념전>에서 처음 만나는 「위로붓」·「다짐펜」


붓글씨체 「Yoon 이상현 위로붓」은 안정감 있는 평체 구조, 부드러운 붓의 질감, 애써 멋 부리지 않은 소탈한 자형, 소담스러운 굵기 변화를 보여주는데요. 있는 힘껏 눌러 쓴 일필휘지가 아닌, 한 획 한 획 천천히 어루만지듯 써내려간 글자체입니다. 이상현은 이 서체가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정서는 서체의 각 자소마다 스며들어 있어요. 모음과 자음의 획 굵기 차이, 자간 크기감 등의 변화는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는 듯한 운율감을 더해줍니다. 또한, 자음의 자유로운 형태 및 방향성, 원도의 갈필을 가지런히 정돈한 획 맺음부 덕에 차분한 인상까지 느껴지죠. 「Yoon 이상현 위로붓」 제작 과정에서 윤디자인그룹은 이상현의 글씨 습관, 획 순, 속도감을 재현하되, 서체로서의 가독성을 고려해 자소와 획의 유연성, 기울기 등을 면밀히 다듬었습니다.


 


<캘리그라피 20주년 기념전> 첫날(2019.11.2), ‘윤디자인그룹 × 이상현’ 섹션의 관람객들


붓글씨체 「Yoon 이상현 위로붓」과 짝을 이룬 펜글씨체 이름은 「Yoon 이상현 다짐펜」입니다. 그러니까, 『윤디자인 아티스트폰트』는 ‘위로’와 ‘다짐’이 서로 조응하는 서체인 것이죠. 일상생활에서도 이 두 단어는 종종 붙어 다닙니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위로와 다짐’을 검색하면 수많은 게시물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은근과 끈기, 사랑과 신뢰, 꿈과 희망, 자유와 평화 같은 익은이은말들처럼, 위로와 다짐은 우리 귀에 익습니다.


「Yoon 이상현 다짐펜」은 자폭 변화가 분방한 필기체예요. 기울여 쓴 획들이 얇고 날렵하죠. 「Yoon 이상현 위로붓」의 메시지가 ‘수고했어 오늘도’라면, 「Yoon 이상현 다짐펜」은 ‘내가 곁에 있잖아, 나 믿지?’라고 얘기합니다. 모든 글자들은 일정한 기울기를 지니고 있어, 서체로서의 완성도를 높일 뿐 아니라 필력의 ‘흐름’이 생생히 살아 있는 글꼴 형태를 구현합니다. 특히 자음의 자유분방한 자형은 ‘다짐’이라는 말에 걸맞은 밝고 시원한 인상을 더해주죠.




캘리그래퍼 오민준(맨 위)의 사회로 진행된 <캘리그라피 20주년 기념전> 오프닝

인사말하는 이상현(가운데)과 축사 중인 윤디자인그룹 편석훈 대표


‘위로’와 ‘다짐’이 한 짝을 이룬 캘리그래피 서체, 이 글씨가 2019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읽히고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 윤디자인그룹과 이상현이 이번 『아티스트폰트 2종을 선보이며 갖는 한마음입니다.

 

관련 콘텐츠 더 보기

· 디자인 & 타이포그래피 웹진 『Typography Seoul』에 소개된 캘리그래퍼 이상현 인터뷰

· 윤디자인그룹 온라인스토어 폰코(Font.co.kr)에서 『필 서체』 만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