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5.

『호빗』 『반지의 제왕』 작가 J. R. R. 톨킨의 놀라운 문자 & 캘리그래피 이야기

 

2021년 2월 23일, 환상문학(판타지문학) 걸작 『호빗』과 『반지의 제왕』 3부작 ‘개정본’이 출간됐습니다. 원작자 J. R. R. 톨킨(1892~1973)의 사후 저작권을 관장하는 톨킨 재단(The Tolkien Society)’과 국내 출판사가 정식 계약을 맺고 발매한 것입니다.

 

※ 이번 국내판은 만듦새 문제 탓에 출판사 측에서 전량 리콜을 결정했습니다. 4월 1일부터 기존 구매자들을 대상으로 복구 버전 배송을 시작한다고 하네요. 책을 소장하실 분들은 구매 시점을 4월로 정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 출판사 공지 보기

 

2004년 미국의 ‘HMH Books’ 출판사가 『반지의 제왕』 50주년 기념 에디션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그간 여러 출판사들을 통해 판·쇄를 거치며 발생한 300~400가지 오류를 바로잡은 버전이었죠. 이 출판사는 10년 뒤 60주년 기념 에디션을 내놓았는데, 50주년판의 교정본이었습니다. 이번 국내판은 바로 2014년 60주년판 원고를 번역 텍스트로 삼았다고 해요. 그래서 ‘개정본’이라는 이름과 함께 출간된 것입니다.

 

J. R. R. 톨킨은 소설가이면서 영문학자, 언어학자, 신화학자였습니다. 문학·언어·신화에 대한 방대한 연구 지식을 바탕으로 마흔다섯 살이던 1937년 『호빗』을 발표했죠.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다준 『반지의 제왕』 3부작은 1954년 1부 「반지 원정대」와 2부 「두 개의 탑」, 1955년 3부 「왕의 귀환」, 이렇게 2년에 걸쳐 출간됐습니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 세기의 걸작을 남긴 셈이죠.

 

톨킨은 또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캘리그래퍼이기도 했습니다. 『호빗』과 『반지의 제왕』 3부작에는 그가 직접 그린 삽화, 직접 쓴 손글씨가 본문 곳곳에 스며 있어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반지의 제왕』 속 ‘절대반지’에 새겨진 글귀(소설 배경인 ‘중간계’의 고대 문자)입니다. 피터 잭슨 감독의 실사판 영화에도 등장한 바 있죠.

 

톨킨이 『호빗』과 『반지의 제왕』 3부작을 위해 직접 그린 삽화들

© The Unlearner

 

『호빗』, 『반지의 제왕』 3부작 영화에 등장한 ‘절대반지’

[좌] © Amazon

[우] © Crews Project

 

톨킨은 환상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문학가로도 평가받습니다. 그가 전 세계 독자들에게 소개한 가상의 종족(호빗, 엘프, 드워프, 마법사, 오크, 고블린, 트롤 등등)과 그들의 특징, 소설 전체를 감싸는 거대하고 구체적인 세계관은 후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톨킨 이후의 환상문학은 모두, 톨킨이 창조한 광대한 문학적 지도 위에 세워진 또 다른 세계들이라 말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거예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롤링 역시 J. R. R. 톨킨에게 빚진 바가 크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호빗』, 『반지의 제왕』 3부작 개정본, 

『반지의 제왕』 3부작 확장판 4K UHD 블루레이, ‘중간계’ 지도
ⓒ 내돈내산

 

이 글을 쓰고 있는 윤디자인그룹의 일개 직원인 저 또한 톨키니스트(Tolkienist, 톨킨 작품 애독자들을 칭하는 말)입니다. 그렇다 보니 서론이 본론인 양 길어졌네요. 톨킨의 캘리그래피를 소개하기 전 톨킨이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데 분량을 크게 쓰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진짜 본론, 톨킨의 놀라운 캘리그래피로 넘어갈게요.

 

톨킨이 남긴 캘리그래피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책 제목을 쓴 글씨, 다른 하나는 소설 속 고대 언어를 쓴 글씨. 특히 후자의 경우, 톨킨이 소설 창작 과정에서 만들어낸 가상의 언어(fictional language)그 근간으로 합니다. 세계 여러 언어와 신화를 평생 공부한 학자인 만큼, 그가 창조한 환상세계(‘중간계’)의 언어-문자는 마치 ‘실제로 존재할 법한’ 현실성과 구체성을 보여주죠.

 

『호빗』, 『반지의 제왕』 3부작을 관통하는 주된 언어-문자는 꿰냐(Quenya)라는 엘프 종족의 언어(Elvish language)예요. 예언과 마법 주문 같은 신성한 말과 글은 대부분 소설 안에서 엘비쉬로 기록되어 있죠. 톨킨은 라틴어와 핀란드어를 참고해 이 꿰냐 언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 그는 이 언어의 문자 체계도 제작했는데요. 이를 텡과르(Tenguar)라 합니다.

 

 

텡과르 시스템, 그리고 ‘절대반지’에 새겨져 있던 문자
© Wikipedia

 

톨킨의 캘리그래피를 보고 있으면, 문자의 시각 에너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글자의 이미지만으로도 ‘중간계’ 고유의 신비로움이 감각되니까요. 꿰냐로 말하고 쓰는 엘프 종족의 정서가 느껴지기도 하고요. 캘리그래피 자체가 마법의 기운을 지닌 것 같다, 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위] © Simply Tolkien

[아래] © Behance: Legendarium - a J.R.R. Tolkien Script Font

 

J. R. R. 톨킨을 다룬 다큐멘터리: 톨킨의 ‘꿰냐 캘리그래피’를 보실 수 있습니다

톨킨 재단 루마니아 지부 유튜브

 

톨킨의 1957년 서한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손글씨

© Antiques Roadshow PBS 유튜브

 

지금까지 톨킨의 캘리그래피 이야기글 (서론은 길고 본론은 짧게..) 해봤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호빗』과 『반지의 제왕』 3부작을 완독하는 것이네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어 나가고 싶습니다. 한국 독자들도 이제 톨킨의 대표작들을 제대로 읽을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출판사, 번역진, 편집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현재 『반지의 제왕』 TV시리즈 버전이 제작 중입니다. 뉴질랜드의 대자연 로케이션으로 촬영되며, 글로벌 e커머스 기업 아마존이 운영하는 OTT 서비스 ‘프라임 비디오’에서 독점 론칭한다는군요. 물론 이 시리즈 역시 톨킨재단의 승인을 받은 콘텐츠입니다. 시즌 1을 보게 될 때까지, 저는 열심히 그리고 천천히 톨킨의 글을 탐독하고 있겠습니다.

 

『반지의 제왕』 TV시리즈 티저 이미지

Ⓒ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