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DC LiVE] 정성을 붓다, 「정성붓체」 작업기


윤디자인그룹의 중심은 바로 타입(Type), 즉 글꼴을 디자인하는 TDC(Type Design Center)입니다. 윤디자인그룹을 대표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꼴을 만들기 위해 몰두하고 있는 TDC의 글꼴 디자이너들이 글꼴 디자인과 직장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소개하는 [TDC LiVE] 시리즈의 네 번째 주인공은 방성재 매니저입니다. 인턴사원들의 과제 작업에 다시금 글꼴 디자인에 대한 열정이 불타올라 정성을 쏟아부었다는 그의 글꼴 작업기를 전합니다.



정성을 붓다, 「정성붓체」 작업기


건축을 전공한 저에게 폰트는 새로운 도전이었으며, 신선함을 주는 분야였습니다. 건축을 설계하는 관점과 글꼴을 디자인하는 관점은 큰 차이가 있는 동시에 비슷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선과 선들이 만나 한 공간을 나누고, 공간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 그것이 저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회사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된 시점, 인턴분들의 작업을 보면서 글꼴 디자인의 열정이 다시 불타올랐죠. 그래서 저 또한 개인 폰트를 작업해보기로 했습니다.


글·사진 _ TDC 방성재



글꼴 기획


윤디자인그룹의 폰트 중 래픽 요소가 강한 제목용 글꼴을 연두색으로 표시


글꼴을 디자인하기에 앞서, 어떤 폰트가 윤디자인그룹에 필요할까를 생각했습니다. 우리 회사의 폰트들을 고딕, 굴림, 명조, 손글씨로 크게 구분하여 정리한 후에 관찰했죠. 분포도를 살펴보니 본문용 글꼴과 손글씨 글꼴은 많았지만, 독특한 그래픽 요소가 강한 제목용 글꼴은 상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그래픽 요소가 강한 제목용 글꼴


디자이너들은 보통 포스터와 같은 작업을 할 때 타이틀을 위한 글꼴을 몇 글자만 만들어서 쓰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글꼴은 일반인들이 활용하기 쉽지 않아요. 그래서 일반인들도 사용하기 좋은 그래픽 요소가 강한 제목용 글꼴을 만들고 싶었고, 가볍게 그린 것이 아닌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붓글씨를 기반으로 한 글꼴을 기획했습니다.



디자인 컨셉


날려 쓴 필력의 붓글씨보다 꾹꾹 눌러쓴 붓글씨가 제 방향에 맞는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어떤 붓글씨를 참고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왕들의 필체가 가장 신중함과 진지함을 담은 글자라고 생각했죠. 그중 정조의 붓글씨가 가장 명필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정성이 느껴지는 정조의 필체


정조의 어록 중 ‘글을 쓸 때는 정성을 다하라’라는 얘기가 있는데요, 한 글자, 한 구절도 대충 넘어가지 않았다는 정조의 위엄 있는 붓글씨 필체를 컨셉으로 가져왔습니다.



디자인 특징


붓글씨의 다양한 획 맺음


먼저, 획의 표현은 붓글씨의 다양한 획 맺음 중 약하게 빠지지 않고 끝까지 신경 써서 마무리 지은 듯한 무게감 있는 맺음을 선택했습니다. 정조의 붓글씨에서 느껴지는 위엄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죠.


볼드(Bold) 굵기의 글꼴들을 참고하여 굵기 선정



굵기의 경우, 붓글씨 기반의 제목용 글꼴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강한 주목성을 지녀야 했어요. 그래서 볼드(Bold) 굵기의 글꼴들을 리서치해 굵기를 정했고, 이를 바탕으로 기본 꼴인 ‘ㅁ’을 시작으로 다른 자소와 구조를 설계했습니다.


정성붓체의 자소별 특징


자소의 각 부분에는 정성의 힘과 붓글씨의 섬세함을 담고자 했는데요. 전체적으로 강인하며 단단하게 마무리되는 보, 신중하고 곧게 쓴 시작과 맺음을 가진 기둥에서 정성의 힘을 표현했고, ‘ㅈ, ㅅ’의 삐침, 붓 터치 느낌을 살린 맺음돌기와 흐름을 표현한 ‘ㅎ’에 붓글씨의 섬세함을 담았습니다.


정성붓체의 자소별 특징


글줄에는 상단, 중단, 하단의 글줄이 있는데요, 상단과 하단의 글줄은 위쪽이나 아래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정렬되지만, 그 반대되는 부분은 들쭉날쭉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반면 중단의 글줄은 관습적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이 있죠. 붓글씨의 기울어진 구조를 중단의 글줄로 설정하여 기울기가 있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 있는 글꼴로 디자인했습니다.


안정감 있는 중단의 글줄


이러한 과정을 거쳐, ‘ㅁ’ 꼴을 먼저 디자인한 후 나머지 글자들을 디자인해 나갔으며, 188자를 파생했습니다. 개인 작업인 만큼 제 색깔이 많이 묻어나도록 글자들을 디자인했죠.



파생한 글자들을 정조의 어록에 적용하며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입사 후 처음으로 업무가 아닌 개인 작업을 하면서 혼자 글꼴을 기획하고 컨셉을 잡으며,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많이 헤매기도 했고, 붓의 느낌을 표현한다는 게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이번에 인턴사원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저 또한 새롭게 배우는 것이 많았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타이틀에 쓸 수 있는 정성붓체의 목적에 맞게 제작해본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