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22.

글꼴 디자인에서 시작한 브랜딩, 티머니 CI 및 전용글꼴 개발 프로젝트



2019년 교통 결제 서비스 기업 ‘티머니(Tmoney)’의 CI 및 전용글꼴 개발을 진행한 윤디자인그룹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글자와브랜딩’이 이번 프로젝트를 되돌아보며, 글꼴 디자인과 브랜딩에 관한 생각을 전합니다.


글 _ 글자와브랜딩 최치영·이재상



기업·브랜드 전용글꼴을 만드는 일반적인 이유


기업이나 브랜드의 이미지를 만드는 브랜딩 프로젝트 단계는 보통 다음과 같다. 로고를 만들고, 색상을 설정하며, 모티프를 만들고 마지막 단계로 글꼴을 지정하거나 개발한다. 브랜딩에서 글꼴은 필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가장 우선시되지는 않는다. 앞 단에 먼저 큰 그림이 그려진 뒤, 마지막 단에서 ‘선택 사항’ 같은 개념으로 인식된다. 즉, 브랜딩 프로젝트에서 글꼴부터 만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얘기다.


기업 브랜딩에서 글꼴을 먼저 개발하는 유형 중 가장 많은 사례는 무엇일까. 사업 확장으로 다양한 계열사가 생겨나는 과정에서 매번 로고타입을 만들기는 효율적이지 않으니, 글꼴을 만들어 로고타입으로 사용하는 경우다. 계열사-모회사 간 연결고리를 강력히 설정함으로써 신뢰와 보증의 이미지를 어필하는 기업들이 적잖은데, 특히 이런 기업 모델에서 로고타입을 글꼴로 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 많은 금융사들의 전용글꼴 개발이 그 대표적 예다.



하나금융그룹의 하나체(2008)는 은행권 최초 전용 폰트로 개발되었고, 이후 모든 계열사의 로고타입을 통합했다.



또한, 우리나라는 대기업 중심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대기업의 아이덴티티 사례가 표준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사례처럼 일관된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으면, 전용글꼴을 통해 모회사부터 계열사까지 이미지를 효율적으로 통합시킬 수 있다는 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브랜딩에서 ‘통합’은 그리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전용글꼴 개발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통합하는 게 좋지만, 서로 다른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브랜드별 글꼴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인 예시로, 윤디자인그룹이 개발한 JTBC 보도국 전용글꼴을 브랜드 이미지 통합 차원에서 JTBC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사용한다면, 예능 프로그램이 다큐멘터리처럼 보일 것이다.


이렇듯 ‘통합’이란 간단히 ‘합쳐버리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이 점을 클라이언트에게 잘 설명하기란 늘 어렵다. 중소기업 산업단지를 가 보면, 로고와 이름이 대기업과 거의 유사한 ‘짝퉁’ 같은 회사 로고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이론에 충실해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고유의 로고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도, 중소기업 관계자는 ‘우리는 대기업에 납품한다는 충성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비슷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답한다.


글꼴을 제안하고 사용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항상 아쉬웠던 부분이 하나 있다. 글꼴에 대해 약간의 다른 시각을 가지면 더욱 풍부한 요소로 브랜딩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일반적으로(관성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글꼴을 다른 시각으로 보도록 설명하는 데에는 늘 어려움이 따른다.



글꼴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시도


이러한 여러 시대적 고민과 생각을 갖던 와중, 티머니 전용글꼴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티머니 전용글꼴 개발 프로젝트는 일반적인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티머니는 본래 사명이 아니라 ‘㈜한국스마트카드’의 브랜드명이었다. 그러다 이 회사가 2019년 6월 사명을 아예 ‘㈜티머니’로 변경하면서 브랜딩이 시작된 것이었다.


사명이 바뀌면서, 기존 ㈜한국스마트카드의 동글동글한 로고타입 같은 티머니의 한글 표기 로고타입이 필요하게 되었다. ㈜한국스마트카드(현 ㈜티머니)는 다양한 사업과 브랜드로 확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티머니 외에도 다양한 브랜드를 운용하고 있다. 이번 계기에 로고타입을 글꼴로 만들어 계열사와 브랜드 로고타입에 적용함으로써 가장 효율적인 이미지 통합을 이룬다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이었다.


기존 로고타입을 글꼴로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부분은 라틴과 한글의 크기감을 맞추는 작업이다. 대소문자 로고타입의 경우, 디자이너는 본능적으로 소문자 크기를 키워 균형감을 맞춘다. 티머니 로고 또한 그러했다.


로고타입에 있는 대소문자 크기를 그대로 글꼴로 개발하면 소문자가 매우 크게 보인다. 반대로 글꼴만을 개발할 경우, 대소문자 크기감을 가독성 중심으로 맞추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소문자 크기도 상대적으로 작아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반대로 로고타입에서 소문자가 굉장히 왜소해 보이게 된다. 문자를 로고로 디자인할 때, 소문자는 대문자만큼 키워 판독성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문자를 글꼴로 디자인할 경우는 다르다. 소문자를 작게 해서 가독을 높여야 한다.



'money'가 큰 처음 시안과 'money'가 작아진 결과



또 한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티머니처럼 표기가 ‘Tmoney’인 경우, 균형을 맞추는 것이 정말 어렵다. 특히 y로 인해 오른쪽 하단으로 쏠려 내려가 보이는 현상이 생긴다. 그래서 일단 우리는 처음 로고의 소문자 ‘money’를 매우 크게 디자인해보았다. 그런 뒤 라틴을 모두 파생하여 조판을 해보니 소문자가 너무 커지면서 가독성이 떨어졌다.



티머니 대표 상징 ‘T’. 이것만 봐도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티머니로 인식한다.



글꼴 디자인 과정에서의 이 같은 현상은 ‘옳다/그르다’를 규정지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바로 본질이다. 우리는 다시 고민했다. ‘대중은 티머니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인식할까?’ 독특한 형태를 지닌 ‘T’의 모양만으로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는 티머니를 인식한다, 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머니’를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또한, 글꼴일 때 콘텐츠(이야기)를 보기 좋게 전달할 수 있는 가독성에 집중하기로 결정했고, 이를 근거로 소문자를 첫 시안보다 작게 디자인했다. 소문자 ‘y’의 경우는 디센더를 짧게 디자인했으며, 아래로 뻗은 형태가 아닌 왼쪽으로 꺾은 형태로 만들어 시각 균형을 맞췄다.



y 디센더가 길고 꺾이기 전 시안과 y 디센더가 짧고 꺾인 결과



고민은 (당연하게도) 끊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소문자 ‘a’의 형태가 화두였다. 보통 글꼴의 경우, 소문자 a는 2층 구조(double storey) 형태로 디자인한다. 1층 구조의 ‘a’는 작아졌을 때, 소문자 ‘o’와 구분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고타입을 글꼴로 만들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로고에서 2층 구조의 ‘a’는 회색도가 뭉치는 현상이 심해졌다. 로고의 최소 규정을 설정하고 출력을 하니 왜곡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로고 역할에 집중시킬지, 글꼴 역할에 집중시킬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었다.


고민, 고민, 고민, ···. 우리는 로고 최소 규정을 선택의 기준으로 잡았다. 산업 특성상 티머니는 카드처럼 작은 규격 매체에 로고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작은 사이즈에서 소문자 ‘a’가 뭉치지 않는 형태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1층 구조 형태의 ‘a’는 작은 사이즈에서도 뭉치지 않는다.



이야기를 입히는 기묘한 발상


기업 이미지를 브랜딩할 때 우리는 철학과 미션 등의 정돈된 카피를 보면서 시작한다. 이 작업이 선행돼야만 기업의 중요 메시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기업 메시지는 ‘양복’을 입고 있다. 뭐랄까, 멀끔히 정돈된 형태라 이해는 되는데, 고객 관점에서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고 할까. 


우리가 느꼈던 티머니는 굉장히 쉽고 친근했으며, 새로운 곳을 경험시켜주는 고마운 브랜드였다. ‘스마트한 이동과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여 더 편리한 세상을 만든다’는 슬로건은 그들의 철학을 아주 정확히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약간의 도발을 감행했다. 제안서에 샘플 글꼴을 적용한 애플리케이션 합성 문구를 ‘티머니와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라고 넣었다. 클라이언트는 철학이나 미션으로 사용하기엔 어려움이 있지만, 티머니 고객 눈높이에서 와 닿는 표현 같다는 의견을 주었다.


우리는 한 번 더 생각해 봤다. ‘티머니와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모빌리티, 스마트, 이러한 티머니의 친근한 이미지를 글꼴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이런 질문들을 이어가던 중 대문자 ‘I’에 바람이 불었을 때를 상상해봤다.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고, 그러한 문자들이 여기저기서 돌아간다면 모빌리티가 표현되지 않을까? 당장 우리는 대문자 ‘I’를 15도씩 돌리면서 그래픽 모티프를 만들어봤고, 그것을 ‘티머니 윈드’라 명명했다. 그리고 다양한 매체에 티머니 바람을 입히는 작업을 시작했다.


바로 여기서부터다. 단순히 글꼴을 파생하는 개념이 아닌, 글꼴을 개발하면서 ‘이야기’를 입히는 브랜딩이 진행된 것 말이다.


우리는 단순히 이미지 체계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정리하는 걸 브랜딩이라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브랜딩’이라 부르는 작업은, 아래의 조건들을 전제해야 한다.



─ 브랜드에 이야기를 입히기

─ 이야기를 표현하는 디자인 요소를 만들기

─ 만들어진 디자인 요소의 체계적 활용안을 매뉴얼로 정립하기



이상의 절차가 모두 갖추어져야만 우리는 그 작업을 ‘브랜딩’이라 표현한다. 이번 티머니 프로젝트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과정의 중심에 글꼴이 있었다는 점이다.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일반적으로 전용글꼴은 아이덴티티 작업이 완료된 이후 진행되거나, 함께 진행하되 개별 프로젝트로 취급된다. 전자의 경우, 이미 정해진 로고타입이나 조형에 맞추어 글꼴 디자인이 이루어진다. 후자의 경우는 각개전투 식으로 전개되는 탓에 관계자(작업자)들끼리 상호 간 이야기를 뼛속까지 공유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티머니 프로젝트의 진행 방식은 전자도 후자도 아니었다. 기존의 관습과는 전혀 달랐다는 의미다. 아이덴티티 디자인과 전용글꼴을 관계자들이 함께 바라보았고, 그랬기에 상호 간 교류가 활발히 지속될 수 있었다. ‘보다 편리하고, 보다 친절하게’라는 단 하나의 콘셉트를 통해 아이덴티티 디자인과 글꼴 디자인이 만들어져갔고, 이는 결과적으로 ‘브랜드 이야기의 결속력’을 공고히 해주었다.




우리는 글꼴 회사에 다닌다. 글꼴 회사의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우리가 해야 할 임무는 ‘글자와브랜딩’이라는 디자인 분야 개척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우리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10여 년 전 서비스 디자인, UI 디자인, BX 디자인 등 새로운 디자인 분야가 개척되었을 때처럼, 우리는 지금 ‘글자와브랜딩’이라는 새로운 디자인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어려움은 당연히 뒤따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글자와브랜딩’이라는 디자인 분야를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우리는 지금과 같은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제안하고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티머니 프로젝트 참여자

총괄. 최치영

브랜딩. 이재상

글꼴 디자인. 허수정

인트로 영상. 이영빈

사이트 디자인. 이영빈

사이트 개발. 리메인


글자와브랜딩 웹사이트

www.letters-branding.com


‘글자와브랜딩’은 윤디자인그룹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로 문화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글자와 글꼴, 브랜드, 콘텐츠의 관계를 탐구하고 연결하는 새로운 디자인 스펙트럼을 만들어갑니다. 우리는 미디어의 경계 없이 콘텐츠가 가진 고유한 가치를 다채로운 문화의 실험적 만남을 통해 시각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