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7.

한글 레터링의 오늘, 한글을 그려서 말하는 사람: 김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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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심심할 때 어떤 낙서를 하나요? 저는 전화 받을 때나 심심할 때 한글을 그립니다. 낙서의 소재가 한글인 것이지요. 한글은 한 글자에 포함된 요소(닿자, 홀자, 받침닿자)가 여러 개이기 때문에 그리는 것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고 효과도 다양해서 낙서를 하는 재미가 꽤 쏠쏠합니다. 그래서 주로 글자 낙서를 하곤 하는데요, 저는 이렇게 낙서의 용도로 한글을 그리지만, 자신의 생각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한글을 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김기조입니다. :) 


지난 시간에는 한글레터링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한글레터링의 대부인 김진평 선생님과 그의 작품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시대에는 지금보다 도구가 많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였기에 디자인에 사용할 만한 서체가 많지 않았었지요. 그래서 레터링이란 방법이 필연적으로 사용될 수 밖에 없었는데요. 그렇다면 한글레터링은 지금 도구가 지극히 발달한 이 시대에는 쓸모 없는 방법인가? 구시대의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물음에 당당히 “아니요”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이런 저의 주장을 증명해주는, 오늘날의 한글레터링 작업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 저는 김기조의 작업을 소개해 드리고 싶네요.






레터링의 용어를 정리해보자


그 전에 먼저 용어 정리를 하고자 합니다. 일종의 구획 정리라고나 할까요? 한글을 그리는 것에 대해 때로는 글자(서체, 활자, 폰트) 디자인이라고 하고, 때로는 레터링이라고 하고, 때로는 손멋글씨(캘리그라피)라고도 하는데, 과연 이것들이 어떻게 다른지 헷갈릴 때가 있지요. 이 세가지는 한글을 그린다는 점에서 비슷하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다르기도 합니다. 이 미묘한 차이를 사전적 정의로 정확히 알아볼게요.

 

<타이포그래피 사전(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안그라픽스)> 참고.



글자 디자인

글자를 디자인하는 일. (일반적으로 폰트디자인, 레터링, 캘리그래피를 포함한다.)

*폰트: 생김새와 크기가 같은 1벌의 활자

*활자: 1.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유형화하고 고정화하여 조립과 해체가 가능한 글자/ 2. 금속활자

활판인쇄시대에는 나무나 쇠 따위에 고정하여 반복 사용할 수 있는 글자(movable type)를 뜻했지만,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부터는 특정 재료와 상관없이 유형화와 고정성이라는 본질적 특성으로만 정의된다. 활판인쇄시대에는 활자의 재료를 중시하여 그에 따라 나무활자, 금속활자 등으로 표현된다. 


레터링 

손으로 직접 쓰거나 잘라 붙이는 등 여러 수단을 통해 글자꼴을 디자인하는 일.

(의도적으로 글자의 형태를 디자인한다는 점에서 일상의 쓰기와 다르다. 글자 그리기, 글자 표현이라고도 한다.)


손멋글씨(캘리그래피)

디자이너의 의도에 따라 디자인한 손글씨

(레터링이 도구에 제한을 두지 않는 포괄적 글자 표현인 반면, 손멋글씨는 손으로 쓴 것에 한정한다. 그 형태를 말할 때 손멋글씨체라고 한다.)



이 정의에 의하면 글자디자인이 가장 넓은 의미의 용어이고, 그 안에 폰트디자인, 레터링, 캘리그래피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 모두가 글자를 그리는 것(디자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레터링은 손멋글씨와 도구적인 차이로 구분될 수 있는데요. 작업 결과물을 보아도 대부분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레터링이 폰트디자인과 어떤 차이를 가지는가? 라는 것입니다. 여기선 양적인 차이, 혹은 표준화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나 할까요? 


주로 레터링은 한정된 문장, 문구 안에서 글자꼴을 디자인하기에, 그 문구에(만) 최적화된 글자 형태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형태를 찾아내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를 위해서라면 한글의 획도 과감히 생략하기도 합니다. 한글은 글자 획 하나를 생략하면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변형을 가하지 않는데, 레터링에서는 문장이 덩어리째로 보여주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가독성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변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폰트 디자인은 그렇지 않지요. 일단 1벌 당 한글을 최소 2,350자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소통의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글자꼴의 과도한 변형보다는 표준적인 꼴을 만드는 것에 더 중점을 둡니다. 누구에게나 동일한 글자로 읽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레터링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 개성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글자 디자인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 한글레터링에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부여한 대표적인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바로 김기조입니다. 




한글레터링의 현재, 김기조


김기조는 젊은이들 사이에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디자이너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음반 디자이너, 혹은 그래픽디자이너, 혹은 타이포그래피 아티스트라고 부릅니다. 여러 분야의 디자인을 다룰 수 있는 능력자인 것이지요. 그는 인디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의 창립 멤버이자 수석디자이너이고, 1인 스튜디오 ‘기조측면(kijoside)’의 대표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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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레터링으로 작업한 김기조씨의 디자인 / 출처: 기조측면



김기조, 그는 한글을 가지고 디자인을 합니다. 그래픽 혹은 사진 등 여러 분야의 디자인을 넘나들고 있지만 주로 한글을 그려서 말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런 그를 보며 폰트디자이너라고도 말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건 아니에요. :) 정확히 말하면 그의 작업방식이 주로 한글레터링인 것이지요.


그의 작품을 보면 전반적으로 복고적이면서 독특한 개성을 내뿜고 있습니다. 맨 처음 제가 그의 작품을 접했을 때에는 그저 젊은이의 똘끼(?)가 다분한 작품들이라 느꼈었습니다. (좀 안 좋게 말하면) 치기 어린 젊은이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들을 키치적으로 가볍게 뱉어내는 모습으로 보였었거든요. 그러다 기회가 닿아 그의 강연을 듣게 되었는데,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사유 속에서 작업하고 있고 한글에 대하는 태도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김기조씨의 작업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지요. :) 그는 자신의 사유 결과를 최적의 한글꼴로 표현하고 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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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하와 얼굴들 1집 앨범 자켓 / 출처: 큐비즘



초기에는 복고적인 맛이 좀더 강했지만 점차 담백해지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초기 작품 중 그의 레터링 재능을 도드라지게 보여준 것이 장기하와 얼굴들 1집 앨범 디자인인 것 같아요. 13개의 곡을 모두 다른 글자꼴로 표현해내어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개중에는 한눈에 읽히기 어려운 “싸구려커피” 같은 장식적인 글자들도 있고, 세리프와 굴림, 고딕 이 세 장르를 넘나들면서 독특한 한글꼴을 만들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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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잉여 잡지(제15호)에서 공개된 그의 필체 / 출처: 월간 잉여



그의 다양한 한글레터링 작품을 보다 보면 그의 필체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본인의 필력이 대단해서 이런 모든 글자꼴을 실제로 쓰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에 대해 조사해 보던 중, 어느 잡지 인터뷰에서 그의 필체를 발견했습니다. 음, 생각보다 남자청년의 글씨더군요. ㅎㅎ 김진평 선생님에 이어 한글레터링은 필력과 상관없이 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거리 속 글자로부터 전해지는 영감


그는 작업을 할 때 과거 선생님들의 작업을 참고하기도 하며, 오래된 동네를 돌아다니며 간판 글씨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합니다. 글씨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 사람의 필체가 들어있고 그의 생각이 들어있기 때문에 글자마다 획 운용방식이 다르고 생김새도 달라서 간판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한글은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계산되어 만들어져도 아름답지만, 사람의 필체로 각기 다른 손맛이 드러나도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첩을 들고 다니며 글자를 보면서 손수 스케치하는 버릇이 있다고 하네요. “손이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그 어설픈 매력을 살리기 위해서.” 이렇게 다른 이들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자신의 작업에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것은, 손으로 체득한 감각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내용 참고: 지콜론 <김기조의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기사)



거리에서 영감을 얻는 김기조 / 출처: Canon Korea ‘M Generation: 김기조 편’



그는 최근 첫 번째 개인 전시회를 <Message Works(2013)>이란 제목으로 열었었는데요. 한글 레터링 작업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는 그의 작업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전시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안타깝게도 이 전시회를 실제 가보진 못했고 이 전시회를 다녀온 몇몇 블로거들의 포스팅을 보았어요. 아담해 보이는 전시장 안을 포스터로, 그리고 자신의 레터링으로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위트 있는 김기조답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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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조 개인 전시회 <Message Works> 포스터 / 출처: F.OUND 매거진



그는 이 전시회를 위해 새로 작품을 만들어 전시한 것이었는데요. 이 작품들을 보면, 한글레터링에 더욱 깊숙하게 재미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초기의 작품들이 한글을 꾸미는 형태에 주로 집중하였다면, 이 작품들은 한글의 획 운용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생략과 축약의 기술을 드러내었으며 글자와 글자 사이의 흰 공간까지 활용하여 한글의 아름다움을 이미지적으로 드러냈다고나 할까요? 이것이 레터링의 묘미입니다. 


위 전시포스터만 보아도, 우리는 아무 저항 없이 “이 포스터는 포스터 전시의 안내를 위해 제작된 포스터입니다” 라고 읽어버립니다. 그런데 그 안에 ‘를’과 ‘입’ 글자를 보세요. 글자 획이 굵어서 공간이 부족하자 ‘를’에서 과감히 ㅡ를 생략해버리고 ㄹ과 ㄹ을 붙여버렸습니다! ‘입’에서는 ㅂ의 가운데 줄기를 없애버렸지요. 한글의 형태에 집중해서 보게 되면 이것은 잘못된 글자이며 폰트로 만들어질 수 없는 형태입니다. 그러나 한글레터링에서는 이런 변형이 가능하며, 실제 저 글자들이 원래의 글자 형태인 마냥 읽혔으니, 아무도 저 포스터에 돌을 던지지 못할 거예요. ;D





김기조, 그가 한글을 사랑하는 방식은 ‘보존’이 아닙니다. 그는 한글을 언어의 글자답게 도구로써 한글을 대하며 사용하고 있지요. 글자는 사람에 의해 쓰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변화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는 한글을 더욱 과격하게 실험하며 사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그는 한글을 격렬하게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 


(내용 출처: 월간 해피투데이 기사, <왕궁이 아니라 마부의 고단한 슬리퍼를 디자인하고 싶다

그래픽&타이포 디자이너 김기조(2013. 5)>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