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8.

젊음이 넘치는 홍대 거리 속 한글 간판은 어디어디 숨어있을까?


얼마 전 촉촉하게 봄비가 내렸어요. 여기저기서 봄꽃 축제 소식들도 들려오고 있죠. 출근길 길가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의 꽃봉오리도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요. 이렇게 우리는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많은 곳에서 느끼고 있는데요. 다가오는 봄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 주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오고 있지요. 특히 젊은 문화의 중심지인 홍대 거리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는데요. 저 역시 회사가 이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홍대 거리를 자주 찾게 되네요. ^^


젊은 문화의 상징인 홍대 거리를 걷다 보면 제일 처음으로 시선이 끌리게 되는 것이 상호가 적힌 간판들 같은데요. 평범해 보이는 것부터 개성 넘치고 화려한 간판들까지 우리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고 있지요. 제가 서체 디자이너라서 그런지 간판에 써진 글자들을 유심히 보곤 하는데요. 요즘의 홍대 거리에서는 이곳이 한국인지 외국인지 착각할 정도로 영어를 주로 사용한 외래어 간판들을 흔히 볼 수 있어요. 아마도 ‘영어를 사용하면 좀 더 세련되어 보이거나 멋있어 보이겠지’ 생각에서 출발한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반면 한글로 된 상표나 간판은 어딘지 모르게 ‘촌스럽다’라는 편견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해외 관광객들을 위해 간판을 영문으로 써서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만 원짜리 지폐 속의 위대한 세종대왕이 우리나라에서 점점 구겨져 기를 펴지도 못하고, 구석에 앉아서 동그라미만 그리고 있는 꼴이 되는 것 같아 많이 아쉽기도 하네요.


하지만 이러한 한글 간판이 촌스럽다는 편견을 깨고, 자유분방하고 개성 넘치는 한글 간판들이 종종 눈에 띄고 있는데요. 여러 문화가 담긴 홍대 거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숨어있는 아름다운 한글 간판들을 찾아 소개하고자 합니다. 


홍대 거리 속 한글 간판, 어디에 숨어있는 거니?


홍대 거리에 달려있는 간판이 무수히 많은 관계로 일단 업종을 선택해야 했는데요. 홍대하면 딱 떠오르는 카페를 선택했어요. 카페 간판은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타 업종에 비해 영어를 사용한 간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윤디자인연구소 건물 간판도 한글 간판 소개에서 빼놓을 수 없겠죠? 엉뚱상상, 살아있네!>


다음으로 탐방 코스를 정해야 했는데요. 카페 밀집 지역을 조사한 후, 디자인연구소 건물을 기점으로 시작해서 KT&G 상상마당 건물을 마지막으로 끝내는 코스로 정해보았어요. 홍대에 위치한 모든 카페들을 모두 둘러보기에는 많은 시간과 체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저 같은 저질체력자(?)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유명한 카페가 있는 구역 위주로 가보기로 했죠~


<제가 둘러본 코스는 이러합니다~ 네모부터 시작해서 동그라미로 끝난 코스에요.>


탐방을 위한 간단하게 준비물을 준비해 보았는데요. 장시간 걸어야 하는 탓에 수분을 촉촉하게 보충해줄 물과 간판을 찍기 위한 카메라, 마지막으로 카페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한 지도를 챙겨 들고 본격적으로 우리의 문화를 대변하는 한글 간판을 찾아 떠났어요. 한글 간판들은 그 카페의 성격과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하나의 작품이기도 한데요. 눈으로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한글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감상해 보자고요. ^^



윤디자인연구소 건물에서 가까운 ‘물고기’ 카페에요. 여기는 와플이 유명하다고 하는데요. 물고기 카페의 첫 번째 간판은 둥글둥글한 느낌의 폰트를 사용하여 가독성을 높였고, 두 번째 간판은 중간 중간에 물고기를 그림문자처럼 표현하여 재미를 주었네요.



가수 10cm의 노래로 아주 유명해진 ‘은하수 다방’의 간판이에요. 일러스트 그림과 함께 옛 추억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들어졌네요. 간판에 쓰인 손 글씨가 카페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짧은 여행의 기록’ 이곳은 빈티지한 느낌의 북카페랍니다. 탐정영화에 나올법한 증거물 같은 느낌이 드는, 군데군데 지워진 한글 서체와 녹슨 철의 느낌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간판이에요. 왠지 모를 아늑한 느낌을 주며, 책을 읽기에 딱 좋을 여유 있는 카페 느낌을 잘 살려 만든 것 같아요. 



자음과 모음 출판사 건물 1층에 위치한 ‘자음과 모음’ 북카페 간판이에요. 한글의 특징을 잘 나타내어 제작된 간판으로, 깔끔하고 간결하지만 가독성이나 전달성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간판이네요.



합정 카페 거리에 위치한 분위기 좋고 조용한 술집 ‘달콤살롱’의 간판인데요. 개성 넘치는 손글씨로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 드는 한글 간판이군요. ^^



숨겨진 아지트 같은 반지하 카페, ‘안녕, 낯선 사람’의 간판입니다. 명조체로 쓰인 평범한 글자이지만, 흰 벽면에 내려앉는 그림자로 더욱더 감성적인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카페 간판이나 외관에서 주는 깔끔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은 카페 내부에서도 듬뿍 느낄 수 있는 곳인데요. 짐승 용량(?)의 커피와 음료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카페랍니다. (안녕, 낯선 사람의 레몬에이드와 자몽에이드 강력추천 합니다! ㅋㅋㅋ)



다방이라는 이름처럼,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가득한 ‘용다방’ 카페에요. 꾸밈없고 조금은 투박한 카페 분위기가 간판 서체에서도 묻어나고 있는 것 같군요!



용다방 대각선 맞은편에 위치한 ‘노PD네 콩 볶는 집’, 줄여서 ‘노콩’이라고 부르는 은은한 분위기의 카페에요. 간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직접 커피콩을 볶아 판매하고 있는데요. 손 글씨 느낌의 간판만 봐도 늘 커피콩을 볶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노콩 카페에서는 정기적으로 ‘노콩음악회’를 열기도 하는데요. 다양한 공연과 연극 기획자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노희정PD가 카페를 열면서 카페 이상의 문화공간으로 손님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 중 하나랍니다. (이곳 커피, 진짜 강추 합니다! 커피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커피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카페이기도 하죠. ^^)



주택을 개조해 만든 카페 ‘카페 일상’의 간판인데요. 그래서인지 건물 전체가 카페 공간이랍니다. 커피잔에 가득 차있는 꽃들과 함께 편안하게 적혀있는 글씨가 카페의 느낌을 잘 표현해주고 있군요. 느긋하고 나른한 주말에 한번 들리셔서 여러분의 일상을 ‘카페 일상’과 함께 공유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



고양이 사진과 그림, 소품들이 군데군데 놓여 귀여움을 더하는 반지하 느낌의 작은 카페 ‘게으른 고양이’입니다. 평범한 명조체로 쓰인 간판이지만, 한글 배치를 다르게 주어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과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 같네요. (이 곳에서는 막걸리도 판다고 합니다! 오오!!)



북카페 ‘작업실’ 간판입니다. 펜으로 흘려 쓴 느낌의 서체가 인상적이네요. 저곳에서는 정말 뭔가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간판 아래쪽에 직인처럼 찍혀있는 카페 이름도 눈에 쏙 들어오는군요!



상수역 근처에 위치한 카페&바 ‘디디다’. 자음과 모음으 굵기 변화가 재미있는 글자의 간판으로 변했네요. 간판에서도 뭔가 빈티지한 느낌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는데요. 제대로 된 빈티지 카페랍니다. 또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간이기도 하죠. 매일 저녁 다양한 밴드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라이브 카페이기도 해요.



카페의 겉모습처럼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와 소품으로 꾸며진 작은 공간 ‘정민언니’. 간판에서도 그런 느낌을 팍팍 주고 있는 것 같죠? 손 글씨와 손 그림으로 카페의 이미지를 잘 전달해주고 있네요. 실제 카페 사장님의 이름이 ‘정민’이라고 해요~ 이 카페에서는 ‘정민언니 손맛 와플’과 ‘민이 빵빵빵’ 메뉴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초콜릿으로 유명한 카페 ‘카카오 봄’ 간판인데요. 평범하게 쓰인 글자에서 초콜릿과 봄의 느낌을 온전히 받을 수 있도록 심플하게 표현하고 있네요. 



반지하에 위치한 카페 ‘출입구는 계단 밑에’. 일명 밥 카페라고 불리기도 한 이곳의 간판은 일러스트 이미지와 개성 있는 손 글씨로 반지하 카페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요. 식사류는 물론, 안주류, 커피 및 음료가 맛있는 아기자기한 밥 카페, 저도 한번 꼭 가보고 싶네요~




나만의 비밀 아지트 같은, 왠지 약간은 허름한 느낌이 나는 카페 ‘모과나무 위’ 간판인데요. 자신만의 느낌을 손 글씨로 자유로우면서도 또박또박 써내려 간 매력적인 간판이네요. 간판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왠지 모르게 모과 향기가 코 끝을 스치는 것 같아요~



핸드드립 커피를 판매하고 있는 카페 ‘커피와 사람들’. 커피에 중점을 둔 메뉴가 많은 곳인데요. 여러 가지 원두커피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죠. 커피와 함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간판이 아닌가 싶네요. ^^



홍대 거리를 걷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을 지나쳤을, 또는 보았을 건물. KT&G 상상마당입니다~ 상상마당 건물이 눈앞에 보이니, 드디어 한글 간판 찾기 투어가 끝이 났구나 싶더라고요. 조금은 먼 거리의 탐험 길이었지만 곳곳에 숨겨진 예쁘고 느낌 있는 한글 간판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 참 뿌듯했답니다. 



홍대 거리 한글 간판 탐방 결과, 많은 카페들이 영문으로 표기한 간판을 대부분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상호를 한글로 표기하고는 있지만 구석 자리에 영문보다 작게 표기한 간판도 있었고, 그런 간판들에 비해 한글로 표기한 간판들은 그 수에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답니다. 서체 디자이너로서 세종대왕님께 상당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ㅠㅠ 


그래도 한글 간판의 다양한 표현방법으로 영어 간판에서는 느낄 수 없는 멋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여유로운 멋스러움은 단순한 미적 차원을 넘어 영문 간판으로 둘러 쌓여있는 도시에서 잠시나마 쉴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상당히 새로웠답니다. 


이렇게 한글로 적혀진 간판들을 찾아보면서, 중국 여행을 떠났을 때가 떠올랐는데요. 중국의 중심가에 있는 수많은 간판, 그것들은 대부분 한자로 된 간판들이었어요. 그 간판을 보면서 ‘여기가 바로 중국이구나.’ 하며 신기해했고, 그렇게 중국문화에 점점 다가가고 있었지요. 


아름다운 한글 간판들이 모여 있는 대표적인 장소 인사동과 세종대왕릉이 있는 여주의 한글 간판 특화 거리와 같이 외국인들에게 관광명소로 잘 알려진 곳의 간판들을 살펴보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이국적인 풍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요. 한글 간판이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개성이 넘치고 역동적인 나라로 기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의 문화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일 텐데요. 이번 포스팅을 통해 한글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