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22.

‘읽는 글 → 보는 글’ 블로그 원고 편집 방법론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는 말했습니다. “만일 이야기 속에 권총이 나온다면, 그것은 발사되어야만 한다.” 소설, 희곡, 시나리오 등에 등장하는 소품들은 저마다 ‘존재의 목적’을 가져야 하고, 그 목적에 부합하는 드라마적 기능을 작품 안에서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우리의 인생을 거대한 이야기라고 놓고 본다면, ‘글’이라는 소품은 과연 어떻게 기능하고 있을까요? 정보 전달, 기록, 미의 추구, 감정의 배설, 계몽, 선도…. 대략 이러할 텐데요, 이 같은 글의 목적이 달성되려면 당연히 읽혀야 합니다. 설명문, 논설문, 기사, 시, 소설, 일기, 편지 등을 막론하고, 글이라면 우선 읽혀야 합니다.(일기는 예외가 될 수 있겠군요.) 


그런데 온라인 매체에서의 글은 조금 다릅니다. 분명 ‘읽혀야 한다.’라는 글의 태생적이고도 숙명적인 미션을 갖고는 있으나, 그 ‘읽힘(read)’이란, 차라리 ‘봄(see)’에 가까운 것이거든요.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인터넷 뉴스 기사들, 블로거들의 포스트,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의 게시물들 등등을 한 자 한 자 정독하는 네티즌은 몇 안 될 겁니다. 


읽히지는 못할지언정 보이기라도 해야 하건만, 보이지도 못하고 ‘스킵(skip)’의 굴욕을 당한다면, 글쓴이로서는 상심이 클 텐데요. 요컨대 온라인 매체 편집자의 역할이란, 필자가 받을 상처를 줄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블로그 원고 편집자의 특명. 네티즌들에게 ‘백스페이스’를 불허하라!>


읽히게는 못해드립니다. 다만, ‘보이게’ 해드립니다


저는 기업 블로그를 대행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된 업무는 콘텐츠 기획과 작성, 그리고 편집입니다. 업무 할당 비율은 ‘편집>작성>기획’입니다. 편집을 가장 많이 하지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총 7건의 원고를 편집 및 발행합니다. 한 달 동안 약 28~30건의 원고를 작업하는 셈입니다. 그중에는 제가 직접 작성한 원고도 한두 건 있지요. 물론 제가 쓴 글의 편집 또한 저의 몫입니다. 그렇기에 제 업무의 상당 부분은 편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업 블로그에 게시되는 글들은 대개 외부 필자의 것입니다. 계약직 자유기고가, 전문 분야에서 현역 활동 중인 칼럼니스트, ‘서포터즈’라는 네임태그를 달고 있는 대학생 기자단 및 파워블로거 등등. 이분들의 원고를 해당 기업 블로그의 양식(레이아웃, 톤 앤 매너, 디자인 등)에 맞춰 편집하고 발행하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고백하건대, 외부 필자 여러분의 글들을 읽히게는 못해드립니다. 한 달간 30건의 글들을 내보낸다면, 그중에서 정독되는 글은 단 한 건도 없을지 모른다고까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송구스럽고 마음이 아프지만, 아마도 그러할 것입니다. 


편집자인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의 성의는, 필자 여러분의 글들을 ‘보이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본래 ‘읽혀야’ 하는 글들을 ‘보이게’ 가공하는 작업은, 제게 일말의 죄책감을 갖게도 합니다. 그것은 마치, 어느 재능 있는 뮤지션에게 성형수술을 종용하여 대중의 간택을 받도록 만드는 작금의 대중문화계 생리를 제 자신이 답습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죄책감을 떠안고서라도 필자 여러분의 글들이 흔적도 없이 잊히는 일만은 막아내야 하는 것이 편집자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변명 같지만, 이런 이유로 인해 저는 온라인 매체 편집자로서 ‘읽힘’을 포기하고, ‘보임’을 택하였습니다. 


<블로그 원고 편집자의 흔한 폴더>


from 'Read' to 'See' 프로세스


몇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저만의 특화된 노하우라기보다는, 아마도 블로그 원고 편집자들이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보편의 프로세스일 것입니다. 


1. 장문 → 단문으로 쪼갠다 

길게 늘여 쓰는 문장은 소설에선 각광받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문열 작가나 황석영 작가는 만연체를 즐겨 쓰는 대표적 소설가들이지요. 그러나 만연체는 블로그 원고에는 맞지 않습니다. 문장이 짧아야 잘 ‘보입니다’. 


2. 통짜 문단 → 소문단으로 쪼갠다

고등학교 작문 수업에서, 문단을 자주 나누는 것은 글의 흐름을 방해하므로 좋지 않다고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블로그 원고의 경우라면, 통짜 문단은 기피 요소입니다. 깨알 같은 글씨들이 빼곡이 들어찬 거대한 통짜 문단은, 네티즌을 질리게 합니다. 그런 포스트는 ‘즉결 스킵’을 당하곤 하지요. 


3. 첫째, 둘째, 셋째 → ① ② ③

‘첫째, 둘째, 셋째,…’ 혹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 같은 식으로 열거하는 문장들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①, ②, ③, …’ 등의 원문자로 표현해야 잘 ‘보입니다’. 


4. 주어는 반드시 문장의 맨 앞에 있어야 한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합니다. 주어는 반드시 문장의 최선두에 위치해 있어야 합니다. 주어가 맨 앞에 있어야 문장이 잘 ‘보입니다’. 문장이 잘 보여야 문단도 잘 보이고, 글 전체도 잘 보입니다. 불가피하게 주어 앞에 수식어구를 두어야 한다면, 그 길이가 3cm를 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네티즌으로 하여금 주어를 찾아 헤매게 만들면 안 됩니다. 


5. ‘인용구’ 편집 툴 활용

블로그 플랫폼마다 각자의 편집 툴이 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는 ‘스마트 에디터’, 다음 블로그는 ‘다음 에디터’, 티스토리 블로그는 ‘티스토리 에디터’, ……. 이들 모두 큰따옴표 모양의 ‘인용구’ 메뉴를 제공합니다. 이 기능을 적절히 사용하면, 블로그 원고를 훨씬 잘 ‘보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인용구 편집 툴 활용 예>


6. http://www.외부링크url.com → 외부링크url

이미지 출처, 혹은 참고 자료 출처를 밝힐 때 url을 삽입합니다. 그런데 http 주소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지저분해집니다. 출처명을 적고, 거기에 url 삽입을 해주면 보기 좋습니다. 


<출처: http://yoon-talk.tistory.com/> → <출처: 윤톡톡>


7. 웬만하면 가로 사이즈 이미지로

블로그 원고에는 이미지가 들어갑니다. 이미지 종류는 그 형태에 따라 가로로 긴 것(약칭 ‘가로 사이즈’)과 세로로 긴 것(약칭 ‘세로 사이즈’)이 있습니다. 블로그 원고에는 가로 사이즈 이미지가 적합합니다. 세로 사이즈 이미지를 삽입하면, 스크롤바 길이가 쓸데없이 늘어나기 때문에, 네티즌들을 질리게 만들지요. ‘스크롤 압박 주의’ 같은 장난질 문구를 넣어 원고의 격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다면, 가로 사이즈 이미지를 삽입해야 합니다.(블로그 원고 기고 경험이 풍부한 필자 분들은 애초에 초고를 보낼 때, 가로 사이즈 이미지를 선별해주시곤 합니다.)



여기까지입니다. 매번 마감 시간에 맞춰 원고 보내주시는 필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그 수고로움이 허투루 소멸되지 않도록 최선의 에디터십을 계속 발휘할 것을 약속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