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8.

아직도 금속활자로 책을 찍어내는 곳이 있다? 활판공방 견학기!


윤디자인연구소에서 폰트 디자인을 맡고 있는 타이포디자인센터 디자이너들은 무엇을 하며 업무 시간을 보낼까요? 매일 앉아서 보던 글자만 또 들여다보며 폰트를 만들고 있지 않겠냐고요? NO! 그렇지 않아요! 


섬세하고 디테일한 글자를 디자인하는 타이포디자인센터의 폰트 디자이너들은 시대를 보다 더 앞서가는 윤디자인연구소만의 윤서체를 만들기 위해 평소에도 끊임없이 폰트 관련 전시나 세미나를 비롯한 다방면의 공부거리를 찾아 움직이고 있답니다~ 이렇게 공부할 것들을 찾아 헤매던 중, 눈에 띈 것이 있었으니… 바로 대한민국 유일의 활판공방! 얼마 전 수십 명이 넘는 타이포디자인센터 디자이너들이 파주 출판단지에 위치한 활판공방으로 모두 출동했어요.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과 많은 업무 중에 한 템포 천천히 쉬어가는 시간을 바로 이 곳, 활판공방에서 보내고 돌아왔답니다. 그 생생한 체험기가 궁금하시죠? 폰트 디자이너들이 둘러본 활판공방 체험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



대한민국 유일의 활판공방을 방문하다!


무더웠던 여름날, 소풍 가는 기분으로 신나게 길을 나설 수 있었던 건 금속활자의 명맥을 계승한 국내 유일의 납활자 인쇄공장인 활판공방을 둘러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기뻤기 때문이에요. 저 말고도 다른 폰트 디자이너 분들도 같은 마음으로 한 곳을 향해 길을 걸었답니다. 



바로 저기 보이는 저곳이 바로 파주에 위치한 출판단지! 그리고 활판공방! 캬,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네요. 사실 조금 많이 더웠거든요…;;



활판공방에 도착하자마자 박한수 대표님의 친절하고도 상세한 설명을 듣게 되었어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떤 방법으로 인쇄를 하고 책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듣게 되었죠. 여러 가지 자료와 문서들을 직접 펼쳐 보여주시면서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셨답니다. 타이포디자인센터 이사님도 박대표님을 적극 도와 설명에 함께 동참해주시는 센스! ^^



간단한 설명을 듣고 난 후, 활판공방 입구부터 길게 늘어져있던 각종 기계들을 둘러보았어요. 박한수 대표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철로 만들어진 이 기계들이 새삼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납을 녹여 활자를 만드는 주조기와 원도를 기반으로 금속공에 글자를 찍어내는 기계들까지.. 손때 묻은 기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글자를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찍어내는 장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활판공방의 박 대표님은 우리나라 활판인쇄가 사라진 것이 아쉬워서 1996년부터 전국을 떠돌며 활자 주조기와 인쇄기, 활자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고 해요. 현역에서 물러난 주조공과 문선공같은 기술자도 찾아냈고요. 옛날 방식으로 책을 만든다고 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지만, 끝끝내 이루어낸 것이죠. 


활판공방에서는 그동안 정진규, 허영자, 오세영, 김남조, 김초혜 시인의 시집을 출간했다고 해요. 이들 시집은 한지에 납활자로 인쇄했는데요. 제본과 장정도 수작업으로 이뤄진 1,000권 한정본으로 시인들이 직접 고른 대표 시 100편이 실려 있다고 합니다. 시집은 제작 후 해판(판을 없앰)하기 때문에 같은 형태로 다시 찍어낼 수 없고, 권마다 일련번호가 있어 소장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 받고 있어요. 활판 인쇄에 적합하도록 특수 주문, 제작한 전통 한지를 사용해 보존성도 훌륭하다고 합니다. ^^



활판공방에서 활판인쇄 경험하기! 


지금까지는 활판인쇄에 대한 이론을 들어보았다면, 이제부터는 직접 활판인쇄를 경험해볼 차례에요. 함께 간 타이포디자인센터 폰트 디자이너들은 나만의 명함 만들기에 도전했어요~

  


본격적인 명함 만들기에 앞서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빙 둘러 앉아서 각자 나름대로의 명함 디자인을 생각해봤어요. 그리고 곧 명함 만들기의 첫 번째 단계에 돌입했죠. 가지런하게 세워져 있는 많은 납활자 중 원하는 글자 찾아 골라오기! 


 


모두들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시나요~ 다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명함을 예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커져 옆 사람이 뭘 하는지도 모를 만큼의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시나요? ^^



원하는 납활자를 가져온 후, 사각 틀 안에 촘촘하게 글자를 배치하는 단계가 있는데요. 빈 공간 없이 빽빽하게 납활자들을 채워 넣어야 예쁜 명함이 나온다는 조언을 듣고, 마치 퍼즐을 맞추는 듯 열중하게 되었어요. 띄어쓰기와 행간, 자간 등등 신경 쓸 것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글자 배치가 다 끝나면 고무줄로 납활자를 단단히 묶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시켜줘야 하는데요. 이때 정성껏 배열한 납활자들이 탈출하지 않도록 조심해줘야 해요. (저는 이 단계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해서 멘붕이 여러 번 왔어요. ㅠㅠ 몇 번을 다시 시도한 끝에 성공! 2인 1조가 되어 작업하는 게 좋더라고요.)

  


납활자를 고정하면 드디어 고정된 활자판을 종이에 찍어내는 단계를 거치는데요. 고무줄로 단단히 고정시킨 납활자들을 가지고 인쇄를 도와주시는 전문가분께 가져가면, 사진과 같이 인쇄판에 활자를 올려놓고,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켜주는 작업을 도와주신답니다. 기계를 작동시키면 롤러가 움직이고, 잉크가 묻은 활판은 정사이즈의 종이 위에 ‘철컥!’ 하고 찍혀 나오는데요. 저는 이 단계가 제일 신기하더라고요. 오랜 기간 동안 활자를 찍어내는 일을 하셔서 그런지, 뚝딱뚝딱 글자가 찍혀 나오는 작은 종이를 다루시는 모습이 정말 장인의 모습과 같았어요~



자, 이렇게 해서 완성된 윤디자인연구소 타이포디자인센터 폰트 디자이너들의 따끈따끈한 명함! 살짝 자랑해도 되죠? 각자 개성이 묻어나는 명함이 만들어졌어요~ 이렇게 만들고 보니, 한 자 한 자 오타 없이 활자를 배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활판인쇄는 일반 프린터가 아니니까요~ (저는 잠깐의 실수로 성별(♀♂)이 뒤바뀌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야 말았어요. ㅠㅠ)



바쁜 업무와 일정 속에 잠시 멈춰 서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어요. 각종 매체 및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인쇄 시스템이 첨단 기계로 바뀌어가면서 전통 그대로의 활판인쇄술이 퇴색되어가고 있는 요즘, 금속활자를 만들어낸 종주국으로써 그 자부심을 이어가는 장인들의 노력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정말 뜻깊고 알찬 시간이었답니다. 빠르고 간편한 인쇄기술이 우리 생활에 너무나도 가깝게 자리잡고 있는 요즘, 왜 굳이 활판인쇄술을 고집하느냐는 질문에 “전기 밥솥도 있는데 가마솥 밥을 찾는 이유를 모르냐”고 답하는 박한수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날로그시대의 손맛이 다시 한번 그리워지는 것을 느꼈어요. 



짜잔! 함께 간 윤디자인연구소 폰트 디자이너들의 기념샷을 마지막으로 너무나도 즐거웠던 활판공방 견학 체험기를 마칠게요. 우리 폰트 디자이너들.. 참 깜찍하고 사랑스럽죠? ㅎㅎ 조만간 또 다른 따끈따끈한 타이포디자인센터의 즐거운 소식으로 돌아올게요. 그때까지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