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7.

그 남자의 주말 취재 블루스 – 3부 : 아프락시아, 그리고 달


[지난 이야기] 

클라이언트 잡 종사자인 ‘그 남자’. 비 내리는 일요일 오전. 1,800일간 만났던 그녀와 이별한 지 200일째. 일요일의 비는, 헤어진 연인의 잔상을 씻어 내리기는 커녕, 더욱 맑고 선명하게 드러내버렸습니다. 그리운 때를 차마 세척하지 못 한 채, 남자는 클라이언트 기업이 지원한 행사인 ‘2013 춘계 희망기원 만리포 만인 입수대회(春季 希望祈願 萬里浦 萬人 入水大會)’를 취재하러 서울에서 서해 만리포로 향합니다. 오후 4시 시작 예정이었던 행사는 참가자들의 지각으로 지연되고… 남자는 자신의 차 안에서 대기하는 동안, 그녀가 글로브 박스에 놓아두었던 블루스 CD를 재생하고선, 담배 한 대에 취해버립니다. 남자가 잠든 사이에 행사는 시작되고, 설상가상 제대로 꺼지지 않은 담배 불씨가 운전석 시트에 옮겨 붙습니다. 좁은 차 안을 팽창시켜버릴 기세로 잿빛 담배 연기는 꽉 들어차고, 남자는 그제서야 잠에서 깨 살려달라 외쳐보지만, 나른한 질식 상태에서 서서히, 원치 않은 수면 상태로 빠져듭니다.


Sunday Moon


다시 눈을 떴을 때, 압도적으로 검고 커다란 무언가가 제 시야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네이비 블랙의 거대한 천막이 제 온몸을 덮어버리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 검고 커다란 것은 시체 안치용 시트이고, ‘나는 명백한 시체가 되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디지털 카메라의 오토 포커싱처럼, 네이비 블랙 곳곳에 촘촘히 박혀 작게 빛나는 상(像)들이 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다른 것들에 비해 크고 둥글었습니다. 희미하긴 해도, 그 둥근 것은 노란색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노랑은 개나리나 해바라기의 그것과 같은 고운 농담(濃淡)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그것은, 서늘했습니다. 그 둥근 것은, 달이었습니다.


<달, 둥글고 서늘한 달.>


“어이, 기자님! 내 목소리 들려유? 나 좀 봐봐유. 

눈은 떴응께 목숨은 붙어 있는갑만.. 아유 다들 뭐 혀! 

사람 죽게 생겼는데 구경 났슈? 얼른 누구든 일일구 눌러서 응급차 좀 불러봐유! 

응, 그래, 그 박 전우가 전화 좀 혀봐~”


동공의 오토 포커싱이 끝나자 제 눈앞에 보인 건 수영복 차림의 중년 사내였습니다. 작게 째진 눈과 굵은 매부리코, 포크레인의 삽 날처럼 각지고 억세 보이는 (마치 티라노사우루스를 연상시키는)아래턱, 달리 힘들이지 않고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와 충청도 사투리, 말할 때마다 짤각거리며 흔들리는 군번 줄... 그렇습니다. 지금 제 눈앞의 이 남자는 ‘2013 춘계 희망기원 만리포 만인 입수대회’ 행사에 참여한 희망 전우회 회원인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해냈다는 것은 즉, 저의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여전히 몸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가만히 눈동자를 굴리며 사위(四圍)를 살핍니다. 


만리포 모래밭에 누워 있음.

별과 달이 뜬 밤.

희망 전우회 회원을 비롯한 오늘의 행사 관계자들이 다 나를 둘러싸고 내려다보고 있음.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끝나고 제가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자, 갑자기 잠이 쏟아집니다. 오토 포커싱 기능이 마비되듯, 다시 시야는 흐려집니다. 저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먼저 지워지고, 뒤이어 네이비 블랙 하늘의 별들이 하나씩 소거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지막까지 달 하나만은 선명한 채로 남아 있습니다. 그 달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저는 잠이 듭니다. 눈을 감고 난 뒤에도, 달은 여전히 남아 그 서늘한 노란 빛을 발합니다. 눈꺼풀 안에 잠긴 눈이 시려옵니다.



만리포 모래밭에서 눈을 떴을 때와는 정반대로, 이번에는 눈부신 흰 불빛들이 동공을 찌르고 들어올 기세로 비칩니다. 눈을 여러 번 깜박여 초점을 맞춥니다. 온통 흰색인 여기는 병원입니다. 아마도 아까 그 중년의 티라노사우루스가 ‘박 전우’라고 칭했던 사내가 부른 응급차에 실려 온 모양입니다. 천장에 매달린 길쭉한 형광등들이 빗줄기처럼 보입니다. 왕가위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스텝 프린팅(step printing:뚝뚝 끊어지는 듯한 영상 기법) 화면인 마냥, 응급실 공간 전체가 흰 빛으로 일렁입니다. 그런 와중에 여전히 떠 있는 둥글고 노란 달, 만리포 모래밭에서 올려다보았던 그 달이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달이 보인다는 것은 즉, 제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뜻일 겁니다. 달을 응시하고 있는데,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남자는 의사인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의 말을 전부 다 듣기 위해 애써보지만,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달을 보고 있는 지금의 이 비정상적인 상태로는 그저 몇 개의 단어들만이 명확히 들릴 뿐입니다.


담배 꽁초.. 

불씨.. 

화재.. 

일산화탄소 중독.. 

휴식 필요.. 

아프락시아(apraxia)..


Monday Sun


일출이 얼마 안 남은 새벽 네 시 무렵에 응급실을 나왔습니다. 날짜상으로는 월요일. 만리포에서 일요일 밤을 보낸 셈입니다. 회사에 사고를 보고했고, 삼 일의 휴가를 허락 받았습니다. 어제의 행사는, 저의 사고로 인하여 더 크게 이슈화되었다고 합니다. 만리포 바다에 입수하려던 희망 전우회 회원들이 긴급 상황(제가 차 안에서 질식한...)을 신속히 조치하여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는, 대략 이런 내용의 보도들이 전파를 탔고 희망 전우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제 클라이언트 기업은 발 빠르게 보도자료를 배포하여 희망 전우회의 영웅적 행동에 동참해 한 젊은 남성을 구조해냈다고 공공연히 홍보했습니다. 저와 주로 접촉하는 클라이언트 측 담당자는 제 사무실로 퍽 고가의 건강음료 세트를 성의 표시로 보냈다고 합니다.


<제 눈에 저 둥근 것은, 해가 아니라 달로 보였습니다.>


서해 만리포에서의 하룻밤은 어느덧 1년 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눈에선 여전히 달이 보입니다. 일산화탄소 연기를 머금고 있었던 제 차를 되찾으러 다시 만리포로 향했을 때도, 제 눈에는 달이 보였습니다. 제가 구조되던 순간에 다행히 희망 전우회 회원들이 소화(消火)를 잘 해낸 터라 운전석 시트만 검게 그을렸을 뿐, 차 안의 다른 부분은 멀쩡했던 것입니다. 하룻밤 만에 다시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았을 때, 차창 밖으로 해가 뜨고 있었습니다. 서해 일출을 그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당시엔 꽤나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때의 저는 자신의 눈 앞에 떠오르는 해를 ‘달’이라고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눈이 부셨고, 그래서 글로브 박스 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착용했는데도, 그 순간의 저는 차창 밖 바다 위로 달이 떠올랐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까지도 이어집니다. 저는 그날 새벽에 달을 보았습니다. 그 달은 일요일 밤 만리포 모래밭에 누워 보았던 바로 그 달이었습니다.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선글라스를 찾으려고 글로브 박스를 열었을 때, 그 안에 들어 있던 블루스 음반들이 너무나도 낯설었다는 것. CD 트레이에 걸려 있던 음반을 재생(▶)하여 빌리 홀리데이를 들었을 때도, 그 참을 수 없는 생경함에 그만 정지(■) 버튼을 누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병원에서 들은 바로는, 1년 전의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로 인한 ‘아프락시아’ 증세 때문이라고 합니다. ‘행위상실증’이라고 하는 아프락시아는, 이미 습득한 동작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증상입니다. 익숙했던 행위들이 어느 순간 낯설어지는 것.



아프락시아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결혼 소식을 접했을 때 저는 대단히 무신경할 수 있었습니다. 하기야, 월요일 아침의 해가 그 전날 일요일 밤의 달이라고 믿는 저이니까요. 제게 사랑은 기억이 아니라 ‘행위’였나 봅니다. 그녀를 사랑했던 기억은 남아 있지만, 그녀를 어떻게 사랑했는 지에 대한 행위의 이미지들은 이제 온데간데 없습니다. 기억 역시 하나의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면, 저는 ‘그녀를 기억하는 행위’를 상실한 것일 테죠. 


<Billie Holiday의 I wished on the Moon>


I wished on the moon, for something I never knew

I wished on the moon, for more than I ever knew

A sweeter rose, a softer sky


난 달에 가기를 원했다네. 내가 전혀 몰랐던 것들을 위하여. 

난 달에 가기를 원했다네. 내가 알았던 것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위하여. 

달콤한 장미와 부드러운 하늘처럼.


_ 빌리 홀리데이 ‘I Wished on the Moon’ 중 


언젠가 아프락시아 증세에서 벗어날 즈음이면, ‘월요일 아침에 내가 본 건 해가 아니라 달이었다.’라는 믿음도 거짓으로 판명 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날, 어째서 해를 달이라고 믿게 된 걸까요. 언제쯤이면, 지금 제 눈에 보이는 달이 사라지게 될까요.


그 남자의 주말 취재 블루스, 끝. 그동안 애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