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10.

낙원상가(樂園商街) 이야기, 낙원에 사는 사람들


오래된 만년필이 하나 있어요. 내가 산 물건이 아닌 걸 보면 어릴 때 아버지가 쓰던 것이거나 누군가 집에 왔다가 두고 간 물건일 겁니다. 그런데 그 만년필이 참 신기한 건, 손에 쥐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느낌을 준다는 거예요. 그렇게 어릴 때부터 글씨 쓰는 걸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글씨들을 모아 글을 만드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 같고요. 낙원상가는 나에게 만년필과 같은 느낌입니다. 보고만 있어도, 그 속에 들어가 있기만 해도 행복하다고 느끼거든요.


낙원에 내가 자주 출현하게 된 건 고등학교를 졸업한 무렵부터입니다. 낙원상가 4층에 있던 허리우드 극장(지금은 허리우드 클래식이나 실버 영화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의 회원카드를 갖게 되면서부터예요. 매월 한 장의 시사회권이 제공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교는 수원, 집은 대림동이었지만 심심치 않게 낙원에 들락거렸죠.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4-6번지에 낙원이 도로 위로 솟았다



질문을 하나 하고 싶네요. '낙원상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세요?' 이 질문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는 생김새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건물이 생기게 된 히스토리를 의미하죠. 그럼 건물의 생김새와 히스토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낙원상가 입구



낙원상가는 주상 복합건물, 그리고 필로티(Pilotis) 건축 구조물입니다. 상가 1층은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나 있죠. 이런 건축 양식을 필로티라고 하더군요.



낙원상가 1층 4차선 도로



당시 맞춤법에 따라 낙원빌딩의 현판은 '낙원삘딍'이 되었어요.



1967년 서울시 도심부 재개발 사업 일부로 건립 계획이 수립되어 1969년 완공되었습니다. 당시 서울시는 종로에서 한남대교를 연결하는 도로를 건설하려고 했는데 지금의 낙원상가 자리에 있던 재래시장이 문제였던 거죠. 사유지 보상 가격이 시세에 한참 못 미쳤거든요. 하지만 서울시가 상인들이 낙원상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가하면서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주민과 건설업자, 그리고 정부가 서로 윈 윈(win-win)한 사례로 꼽히고 있는데요. 이런 우여곡절 끝에 강남 지역 아파트와 맞먹는 고급 주택이 도로 위에 우뚝 솟게 된 것이죠. 


▶ <참고기사> 프레시안 김경민의 도시 이야기7. MB·오세훈 '뉴타운 광풍'과는 다른 '낙원삘딍' 탄생사(바로 가기)

 

 

 

낙원에서 악기(樂氣, 즐거운 기운)를 파는 사람들



고등학교 때 통기타 하나를 샀습니다. 낙원이 아니라 동네 악기점에서 산 기타였지만, 난 그 기타가 어쩌면 낙원에서 온 악기(樂氣, 즐거운 기운)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대학교 때 돈을 모아 일렉 기타를 사러 낙원에 가게 됩니다. 그걸로 밴드를 한다거나 잘 쳐보자는 간절함보다는 강철과 니켈로 구성된 현, 그리고 그 현이 달린 일렉 기타 하나를 갖고 싶었던 것 같아요. 별다른 지식도 목적도 없이 갔으니 기타는 득템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미친 척 아무거나 하나 살걸’ 후회하기도 하는데요, 그랬다면 나와 낙원의 인연이 더 질겨졌을 거란 생각 때문입니다.



출처: 낙원상가 블로그



예전처럼 사람들이 북적거리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채워야 할 공간을 기타와 피아노,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 소리가 대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요, 국민 소득이 높을수록 악기연주를 취미로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겁니다. 2014년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맞이하면서 더욱 많은 사람이 악기를 가지게 되었다고요. 


낙원상가 사장님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냥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입니다. 그런데 이분들, 알고 보면 대단한 분들입니다. 우리에게 동경의 대상이던 유명한 기타리스트나 가수들, 그들이 유명해지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들이거든요. 



낙원상가의 이야기를 더 보려면 ▶우리들의 낙원상가 블로그  (바로 가기)




낙원을 상영하는 사람들, OLD MAN만의 낙원


낙원상가에 올라가기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묘한 감상에 젖게 됩니다. 엘리베이터에는 머리가 허리까지 오는 젊은 뮤지션과 머리 희끗희끗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 타고 있어요. 젊은 친구는 악기를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영화를 보러 가는 길입니다. 옛날 허리우드 극장은 지금의 실버 영화관으로 바뀌었어요. 

 




허리우드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대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클래식들입니다. 이날도 1956년에 개봉한 자이언트가 상영 중이었습니다. 개봉 예정인 영화 중에는 카사블랑카도 있군요. 실버 영화관은 55세 이상 2,000원, 청소년은 5,000원, 성인은 7,000원입니다. 하지만 55세 이상 어르신과 동반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2,000원으로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OLD MAN의 진정한 낙원, 실버영화관



낙원의 한 끼를 파는 사람들


얼마 전에 먹거리 X파일에 착한 식당으로 소개되었던 일미 식당 덕에 낙원상가도 주목을 받았는데요, 옛날부터 유명했던 곳입니다. 이곳 낙원시장은 외국인의 필수 관광코스이기도 합니다. 외국 사람들이 그렇게 우리 것을 찾는다고 하더군요. 



낙원상가 지하, 출처: 낙원상가 블로그



낙원상가 주변 종로 일대는 한 끼에 2~3천 원 하는 맛집이 많습니다. 



낙원상가 주변 음식점



낙원상가도 세월을 견디며 참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종로에 극장이 10개가 전부였던 시절, 허리우드 극장은 참 많은 사람이 울고 웃었던 장소였습니다, 통기타 붐이 일었던 그때의 젊은 악기점 사장님들도 이제 주름살이 제법 늘었고요. 저는 오늘도, 이 낙원에 사는 이들이 참 좋았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찾아주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