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7.

어느 직장인의 고상한 취미생활, 캘리그래피



“어? 병호야, 나도 너처럼 글씨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공부면 공부, 대인관계면 대인관계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잘하던 전교 학생회장 친구가 건넨 이 한 마디는 내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나’ 자신이 되었어요.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것 없던 저는 글씨를 쓸 때만큼은 칭찬을 받았어요. “병호야, 나 이 글 좀 써줘.”, “글씨체가 참 예쁘다.”, “이 책에 제 이름 좀 써주세요.” 캘리그래피는 제게 칭찬을 받을 수 있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머릿속이 복잡할 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랍니다.




글쓴이의 생각과 성향도 담아주는 캘리그래피

 

룸메이트에게 선물한 캘리그래피


2011년, 베트남 소수 민족 지역에 방문했을 때 선물한 캘리그래피



캘리그래피는 글씨체도 중요하지만, ‘희망을 꿈꿉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등 부탁하는 이들 대부분이 긍정적인 문구를 요청하기 때문에 내가 마음에 들 때까지 쓰다 보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어 잘 들어주는 편입니다. 컴퓨터 속에서의 글들은 대부분 명조, 고딕계열의 폰트로 표현되어 정보만을 전달하기 쉬운데요, 이러한 캘리그래피는 그 사람의 생각과 성향까지도 알게 해주는 것 같아요. 내 마음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게 해주는 캘리그래피라는 취미. 여러분들도 해보고 싶지 않으세요? 글씨를 잘 못 쓴다고 일찌감치 포기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한 사람의 글씨체는 유일하잖아요.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고 아름답죠. 지금이라도 펜을 들어 마음을 써보세요.




대학 동아리 컨퍼런스부터 유키 구라모토 공연까지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캘리그래피는 1만여 명의 대학생들이 참석한 ‘CCC 컨퍼런스’에요. 대학생 때 저는 CCC(한국대학생선교회)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요, 알음알음 인연이 닿아 알게 된 CCC 컨퍼런스 디자인 책임 간사님이 ‘불가능은 없다’는 표어를 요청하셔서 썼었어요. 뒤에 가면 나오지만 사실 1,500원짜리 모나미 붓 펜으로 아침 잠결에 쓴 글씨였거든요. 그 손글씨는 컨퍼런스에서 학생들이 캠퍼스별로 단체 티셔츠를 만드는데 활용하기도 하고, 수건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종이컵에 새겨지기도, 돌에 새겨지기도, 배너나 영상을 통해 활용되는 것을 보며 감개무량했습니다. 컨퍼런스에 참석했던 학생들이 ‘불가능은 없다’ 글씨만 보고 왠지 산에서 한복 입고 내려온 사람이 썼을 거라는 추측을 했었다더라고요. (웃음)



[좌] 유키 구라모토 15주년 기념공연 / 출처: CREDIA

[우] CCC 전국대학생 여름수련회 / 출처: CCC 한국대학생선교회



그 이후, 제 글씨체를 마음에 들어 한 학교 선배를 통해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 15주년 기념 공연 <회상>의 타이틀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작업 후 초대권을 주셔서 예술의 전당에서 유키 구라모토의 공연을 봤는데요, 공연을 보러 온 관광객이 줄을 지어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가만히 서서 바라봤어요. 남들은 모르지만 묘한 행복이 있더라고요. 윤디자인연구소의 폰트 디자이너들이 느끼는 행복감이 이런 것이겠구나 했답니다. 


 

CCC 홍보영상에 쓰인 캘리그래피 / 출처: CCC 한국대학생선교회




캘리그래피 입문을 위한 3가지 팁


1. 캘리그래피의 첫 걸음: 붓 펜으로 글씨를 써보기


저는 붓을 잘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저렴한 붓 펜으로 손글씨를 써요. 그중에 큰 실력이 없어도 붓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1,500원짜리 ‘모나미 붓 펜’은 저렴하고 충성스러운 캘리그래피 도구랍니다.


   

[좌] 직접 쓴 캘리그래피 [우] 모나미 붓 펜 / 출처: 모나미



2. 캘리그래피 공부하는 방법: 좋은 작품을 많이 보기


이제는 폰트도 완성도 높은 캘리그래피 스타일이 많이 나와 그 폰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캘리그래피를 하는데 공부가 되는 것 같아요. 책으로 공부하기보다는 좋은 작품을 많이 보기를 추천해요. 캘리그래피로 유명해진 분들도 계시지요. 윤디자인연구소의 ‘갤러리뚱’에서도 우리나라 대표 캘리그래퍼 강병인, 이상현, 오민준 씨와 그의 제자들의 작품을 전시했는데요, 이들의 캘리그래피를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를 하였답니다. 놀러오세요오~!!


윤디자인연구소 ‘갤러리뚱’에서 열렸던 캘리그래피 전시

1. 강병인 캘리그래피 ‘술통’ 작가전 / <한글, 멋짓다 헌집 다오 새집 줄게> (바로 가기)

2. 캘리그래피 콘서트 / 네버 엔딩 스토리 (바로 가기)

3. 캘리그래피로 만나는 우리 민요 / 얼씨구 좋다! <아리랑 展> (바로 가기)




3. 풍부한 표현을 위한 방법: 붓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기


저도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요. 바로, 서예 학원!! 요즘은 서예학원이 잘 보이지 않지만, 예전(컴퓨터학원이 생기기 이전)에는 서예 학원이 많았다고 해요.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집중력 향상을 위해 서예 학원을 많이 보냈었는데요, (80년대 이야기입니다.) 붓을 잘 다룰 줄 알면 어떠한 캘리그래피 도구보다도 풍부한 표현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연한 털이 모여 중심을 잡으면서 그려가는 붓의 매력!! 붓을 다루며 마음도 다스리고, 집중력도 생긴다면, 일할 때도 시너지 효과가 생기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직장인의 고상한 취미생활, 영업사원 강병호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