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23.

담배는 마법이다 끊지 말고, 풀려나자




담배는 ‘마법’입니다. 그냥 이렇게 정의하도록 합시다. 담배갑의 경고 문구처럼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자 “발암성 물질인 나프틸아민, 니겔, 벤젠, 비닐크롤라이드, 비소, 카드뮴”을 함유한 것이기 이전에, 담배는 그냥 마법인 겁니다.(건강에 안 좋은 것이 어디 담배뿐이겠으며,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은 담배 말고도 대도시의 대기오염 역시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 그래서 우리는 담배를 ‘끊는다’는 지루한 표현 대신, 담배에서 ‘풀려난다’고 말하도록 합시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내내 잠에 취해 있는 것이나, 인어공주가 목소리를 잃게 된 것이나, 왕자가 야수의 탈을 쓰고 있는 것이나, 또 다른 왕자가 개구리로 변해버린 것이나, 우리 손에 담배 한 개비가 들려 있는 것이나 다 똑같다고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흡연에 대한 썰 


선거에서 가장 질 나쁜 것이 일명 ‘네거티브 전략’입니다. 상대 후보의 추한 면을 부각하는 마케팅이죠. 남의 약점을 들추어 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매우 비겁한 행태입니다. 반면, 상대를 치켜세워주면서 자신의 ‘잘남’도 은근슬쩍 내보이는 고아한 ‘자랑질’은 많은 이들에게 거부감 없이 환영받죠. 이런 게 흔히들 말하는 ‘긍정의 힘’ 아닐까요. 


흡연에도 긍정의 힘이 필요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흡연을 긍정하자는 뜻입니다. 스모커들 가운데 이렇게 말하는 분들 꽤 많습니다. “몸에 안 좋은 줄도 알고, 언젠가 끊어야 한다는 것도 아는데, 어쩔 수 없이 피우게 된다.” 이렇게 부자연스럽고 처절한 태도 말고, 긍정의 힘을 발휘하여 자연스럽고도 여유롭게 흡연을 해보자는 이야기입니다. 네, 압니다. 이게 쉽지 않다는 것을. 


논스모커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스모커들은 꽤 심각한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며 담배를 피웁니다. 담배갑에 적힌 폐암 발병 경고 문구를 비롯하여 온갖 대중매체들이 앞다퉈 흡연의 부정적 면을 부각해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죠. 담배가 좋아서 피우면서도 내심 ‘불안’을 느낀다는 것이 스모커들의 가장 큰 딜레마일 겁니다. 



해외의 금연 포스터들 / 출처: http://goo.gl/wuFG4S



‘부정적 면을 부각한다’는 것은, 그 반대 개념의 측면들을 보도하지 않거나 축소 보도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담배가 해롭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앞서 서두에도 언급했듯, 몸에 안 좋은 것이 비단 담배뿐이겠습니까. ‘오늘 먹은 점심 식사가 과연 나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고 자문해봐도 우리의 낯빛은 금세 변하게 됩니다. 우리 몸에는 ‘폐’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오장육부(五臟六腑)라는 것을 우리는 배우지 않았습니까. 간장•심장•비장•폐장•신장 등의 오장, 대장•소장•쓸개•위•삼초•방광 등의 육부. ‘오늘 먹은 점심 식사에 함유된 성분들이 과연 나의 오장육부에 흡수됨으로 인하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고 심각하게 자문할 때, 우리의 낯빛은 변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처럼 우리는 ‘몸에 안 좋은 것들’로 이루어진 행성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담배에 대한 비상경보기들은 여기저기서 자주 울리는 걸까요. 이는 아마도 ‘국민 건강’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적•문화적 시각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2012년 12월 8일 시행된 국민건강진흥법에 따라 금연 구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 법은 이른바 ‘금연법’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올해 7월 1일 개정안 시행 이후, 대한민국의 관공서, 의료기관, 150㎡(약 45평) 면적 이상의 음식점•카페•술집 등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습니다. 2015년부터는 면적에 관계없이 모든 음식점•카페•술집이 금연 구역으로 지정될 예정입니다. 이 같은 분위기에 발맞춰 일부 건물주들은 (금연 구역 조건에 해당되지 않음에도) 본인 소유 건물을 ‘금연 건물’로 선포하는 경우도 있죠. 우리나라 스모커들은 이제 명실공히 ‘왕따’가 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국민 건강 진흥’의 훼방꾼 신세가 된 셈이죠. 


‘안티 스모커’ 트렌드는 대한민국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세계 주요 담배 생산국인 미국에서는 어떨까요? 올 9월, 유엔 총회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유엔 관리와 사담을 나누며 “아내가 무서워서 담배를 끊었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이 모습이 취재 카메라에 포착되어 이슈화된 적이 있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6월 담배 산업 규제법에 서명하기도 했었죠. 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 이렇듯 언행일치의 금연 행보를 보이고 있음이 세계 각국으로 전파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매체들을 통해서도 많이 소개되었고요.(오바마 대통령의 대외적 이미지를 선양하는 데 국내외 언론이 일조한 꼴이 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만..)


2012년 제26회 ‘세계 금연의 날’(WHO가 ‘연기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1987년 제정) 표어가 ‘담배회사의 거짓말과 음모’였습니다. 세죠. 담배는 그야말로 세계적 공공의 적이요, 세계인의 건강을 해치는 악의 축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담배에게도 화양연화가 있었더랬죠. 아래 포스터들을 한번 감상해보시겠습니다. 



1940~1950년대 담배 광고 이미지 / 출처: http://www.vintageadbrowser.com/tobacco-ads



빈티지 광고 속에 묘사된 담배란, 사교와 낭만과 심지어 가족애의 상징인 것처럼 보입니다. 당대 최고 스타였던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모델로 등장한 포스터도 보이고요(위 이미지 둘째 줄 왼쪽에서 네 번째 Camel 광고). 어린이들의 친구인 산타 할아버지도 흡연자로 그려졌네요. 여성 흡연에 대해 유달리 배타적인 우리나라 정서에 반(反)하는 포스터들도 많이 보입니다. 1940~1950년대가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던 시기였음을 상기해본다면, 빈티지 광고 속의 귀족적이고 세련된 여성 흡연자들의 이미지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때 그 시절의 담배란 그런 것이었나 봅니다. 부(富)와 교양의 아이템. 


광고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죠. 1940~1950년대 빈티지 담배 광고 이미지는 당대인들의 담배에 대한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아마 그때 사람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오늘날의 사회를 살아간다면, 팍팍한 흡연 규제 탓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입니다. ‘올드 골드(Old Gold)’ 담배 브랜드의 광고처럼(위 이미지 넷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 “왜 그리 짜증을 내요?(Why be irritated?)”라고 위로하며 담배 한 대를 건네는 쿨한 연인은 현실에는 없습니다. 네, 없고 말고요. 


말에 올라탄 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멋진 카우보이, 말보로맨을 기억하는가? 이 상징은 50여 년 동안 미국 광고를 주름잡으며 잠재적 흡연자들과 실제 흡연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새겼다. 그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흡연하는 이들은 멋지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새로운 이미지가 등장하여 말보로맨에 도전했다. 담배를 피우며 서부인임을 자각하던 말보로맨은 이제 구취를 풍기는 침울한 사내가 되었다.

_ 샌더 L. 길먼, <흡연의 문화사, 담배라는 창으로 내다본 역사와 문화> 중 


위 인용구는 담배의 흥망성쇠(?)를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문화와 제도의 변화를 겪으며 담배의 위상은 점차 전락하고 만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담배라는 아이템에 대하여 좀 더 유연한 사회적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국민’과 ‘건강’이라는 거대한 담론으로부터 자유로워져보자는 것입니다. 어쩌면 흡연의 마법 못지않게, ‘국민 건강 진흥’의 마력이 발산하는 금연의 주술이 더욱 강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문답 같은 소리일 수 있겠는데, 흡연하기 어려운 사회일수록, 금연하기는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흡연을 긍정해야 흡연에서 풀려난다 


결국 이 얘기를 하기 위해 여기까지 ‘썰’을 늘어놓은 것입니다. ‘흡연을 긍정해야 흡연의 마법에서 풀려난다.’ 담배는 나쁜 것이 아니며, 따라서 힘겹게 ‘끊어내야 할’ 전투의 대상이 아니라는 자각이죠. 또한, 흡연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성질의 행동양식이며, 그러므로 부자연스럽게 ‘끊어냄’이 아니라 스르르 그 행동양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즉 ‘풀려나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결론입니다. 그래서 담배와 흡연을 ‘마법’이라는 일종의 대안 판타지(alternative fantasy)로 규정함으로써, 스모커와 논스모커를 차별하는 작금의 경직된 주술적 논리(국민 건강 증진)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해박(解縛)하여, 종국에는 국민 모두가 경계 없이 밝게 웃을 수 있는 실로 건강한 사회를 증진해보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