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2.

떠나요~ 혼자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혼자 떠나는 제주 여행!


여러분에게는 어떤 징크스가 있나요? 저는 이상하게도 매년 8월이면 안 좋은 일들이 하나씩 찾아와요. 제 작년 8월은 다니던 회사가 정리되어 어쩔 수 없이 백수가 되어버렸고, 작년 8월에는 눈코 뜰새 없이 바빠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어요. 올해 8월은 조용히 지나갈 줄 알았는데,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생겨버렸네요. 3년째 이어지는 8월의 악몽(?)에 몸부림치다 문득 평소 너무도 가보고 싶었던 제주도가 생각났어요. 결국, 곧바로 제주도행 항공권을 예약했죠. 


정말 급작스럽게 결정한 혼자 떠나는 제주 여행, 사실 걱정이 앞서긴 했어요. 혼자 떠나는 여행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드넓은 제주도를 혼자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막막하더라고요. 운전면허가 있기는 하지만, 장롱면허라 자동차를 몰고 다닐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버스나 택시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더라고요. 잠시 고민하다 또다시 급! 스쿠터 렌탈샵을 알아보고 스쿠터 한 대를 예약했죠.


부푼 기대를 안고 휴가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 지 어언 3주, 드디어 제게도 그 날이 다가왔습니다! 휴가 전날, 회사에서 업무를 부랴부랴 처리하느라 매우 바빴지만 기분은 이미 붕 떠 있었어요. 그렇게 혼자 떠나는 제주 여행의 서막은 시작되었답니다. 


비가 많이 오는데, 비행기가 뜰까?


사실 제주도로 떠나기 며칠 전부터 불안하게 생각되었던 게 하나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제주도 날씨! 비가 너무 오지 않아 가물었다는 제주도에 단비가 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하필이면 제가 제주도에 있을 때 그 비가 내린다지 뭐에요. 제주도에 있는 동안 끝내주는 제주도 풍경을 눈에 가득 담고 와야 하는데, 더군다나 스쿠터를 타고 계속 돌아다녀야 할 텐데! 으아니, 하늘 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비라니!! 



초딩 시절 소풍 날 제~발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는 마음으로, 떠나기 전날 밤 하느님 부처님 옥황상제님 선녀님 알라신 다 찾아가면서 빌고 또 빌었지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요? 아침에 눈을 뜨니 창 밖으로 내리는 무심한 비, 비, 비!! 하필 태풍이 오는 것 마냥 강한 바람까지 불더라고요. 절망 가득한 몸짓으로 주섬주섬 짐을 챙겨 공항으로 떠났습니다. 계속해서 제주도 날씨를 검색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제주도 날씨는 둘째치고 지금 비가 오면 비행기가 안 뜨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다시 하느님 부처님 옥황상제님 선녀님 알라신 다 찾아가면서 제주도 날씨는 어찌 되어도 상관없으니 제발 비행기는 정상 운행하게 해달라고 빌었죠. 그렇게 공항 도착! 다행히도 오전 내내 세차게 내리던 비가 잠잠해졌고 비행기도 뜬다네요. 오예! 저는 그렇게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몸을 실었답니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것도, 제주도를 처음 가보는 것도 아니었지만 모든 게 처음인 것 마냥 신이 났네요. 비행기에서 한 잔씩 주는 음료 사진도 괜히 한번 찍어보고, 창 밖의 하늘 풍경도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렇게 제주도로 향했어요. 


제주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서울 날씨는 상상이 안될 정도로 맑았던 그날의 제주 날씨!>


오후 느지막이 도착한 제주도! 맙소사, 뭍과는 다르게 날씨가 아주 좋아요! 조금 덥지만 쨍한 날씨에 저절로 광대승천 미소 발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스쿠터 렌탈샵으로 향했어요. 제주도에 머무는 2박 3일 동안 제 발이 되어줄 귀요미 분홍 스쿠터를 빌리자마자 제가 움직인 곳은…? 이틀 동안 묵을 게스트 하우스! 


사실 저녁때가 다 되어서 제주 시내에서 밥을 먹고 게스트 하우스로 출발할 계획이었지만, 스쿠터 렌탈샵 사장님이 어두운 제주도에서 스쿠터를 몰고 다니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며 겁을 엄청나게 주는 바람에 고픈 배를 부여잡고 제주 서쪽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로 바로 이동했어요. 제주도는 시내 쪽에는 언제나 차가 많지만, 외곽으로 조금 빠지고 나면 늘 차가 그리 많지는 않더라고요. 덕분에 스쿠터 초보인 저도 큰 무리 없이 잘 이동할 수 있었답니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해 짐을 풀고 고픈 배를 맥주 두 캔으로 채운 다음, 바로 잠이 들었어요. 이렇게 혼자 떠난 제주 여행의 첫 번째 날이 저물었네요. 


계획 없이 내려온 제주도, 바다와 마주하다


<제주도에서는 별 사소한 것도 다 맛있더라고요. 게스트 하우스에서 직접 해먹은 아침까지도;>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있어, 마음의 위안을 얻을 겸 급 결정하게 된 제주 여행. 그래서 여행 일정이나 계획 같은 건 전혀 생각해두지 않았어요. 일단 제주도를 가자, 가서 바다만 실컷 보고 오자는 게 계획이었다면 계획이었겠네요. 둘째 날 아침, 게스트 하우스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스쿠터에 올라 협재 해변으로 향했답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분간하기 힘든 협재 해변!>


제주도에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모두 같이 입을 모아 칭찬하던 ‘협재 해변’. 정말 좋긴 좋더만요~ 눈앞에 펼쳐진 하얀 백사장과 맑고 투명한 바닷물이 20대 처녀의 마음을 살랑살랑 움직였답니다. 혼자서 물놀이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 것 같아 발을 퐁당퐁당 담가보기도 하고, 모래 위에 글씨를 끄적끄적 적어보기도 했어요. 비록 지금의 생각과 느낌을 바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여행 친구는 없었지만, 협재 해변에 두 발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심심하다고 느낄 틈이 없었답니다. 


소름 끼치게 예쁜 협재 해변을 두 눈과 카메라에 가득 담고, 점심을 먹으러 머나먼 여정을 떠났어요. 제주 북서쪽에 위치한 협재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대정읍까지…정말 머나먼 길이죠? 스쿠터 초보인 제가 약 20km가 넘는 장거리를 감수해가며 제주 북서에서 남서까지 이동해 점심을 먹으려는 이유! 소문난 맛집이 바로 그곳에 있기 때문이죠! 


<긴 기다림 끝에 맛 본 산방식당 비빔밀면, 하아.. 마시쩡..>


블로거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집,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에 위치한 ‘산방식당’에 들렀어요. 밀면과 수육이 그렇게 맛있다던 산방식당. 왠지 제주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일 것 같아 꼭 먹어보고 싶었답니다. 유명한 맛집인 만큼, 저를 호락호락하게 들여보내 주지 않는군요. 대기 번호를 받고 30분을 기다려서야 드디어! 산방식당의 비빔밀면과 수육을 맛볼 수 있었어요. 


<경배하라! 산방식당 수육!>


수육에서 왠지 모를 후광이 느껴지지 않나요? (흐흐) 28년 고기 인생에서 이렇게 부드럽고 입에 넣자마자 입속에서 녹아내리는 듯한 맛의 수육은 처음이었어요. 한 점 입에 넣자마자 옆 테이블 사람이 들릴 정도로 감탄사를 내뱉었더랬죠. 곧이어 나온 비빔밀면 위에 수육 한 점 올려놓고 고기와 국수를 함께 돌돌 말아 입으로 가져가 아앙~♥ 지금도 그 맛이 생생하게 떠오를 만큼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산방식당에서 입을 호강시켜주고 난 후, 저는 다시 숙소가 위치한 제주 서쪽으로 올라갔답니다. 스쿠터로 무한 질주를 하다 문득 게스트 하우스 주인 언니가 알려준 ‘수월봉’이라는 곳이 떠올랐어요. 제주 서쪽의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절경이라고 하더라고요. 마침 수월봉을 안내하는 교통표지판도 눈에 띄어 망설임 없이 바로 그곳을 향해 달렸답니다.


<사진 실력이 누추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정말 아름다워요!>


맙소사, 역시 제주 서쪽의 아름다운 절경이 맞네요.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바다 모습에 넋을 잃기 충분했죠. 수월봉 정상의 정자에 한참이나 앉아 바다 감상에 빠졌답니다. 불어오는 거센 바닷바람쯤은 문제도 아니었죠. 해 질 녘에 왔다면, 아마 그대로 기절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아름다운 바다에서 바라보는 낙조라니…. 상상만 해도 황홀했어요.


여기저기 한참을 돌아다니다 해가 다 지고 나서야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숙소에서 절 반기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감자전! 게스트 하우스 주인 오빠가 솜씨를 발휘하셨더라고요. 따끈하고 쫄깃한 감자전과 맥주로 하루를 마감하고, 다가올 내일을 기대하며 잠이 들었어요. 


제주, 안녕. 안녕, 잘가.


<제가 묵었던 1474 게스트 하우스, 주인언니가 자수를 그렇게 잘 둔대요~>


제주에 도착한 지 3일이 지난 날이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조금은 슬퍼지는 하루가 밝았어요. 이날은 제주도에서 꼭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맛집을 식사 때마다 둘러보기로 했어요. 하필 그 맛집들이 제주 시내에 있어 어쩔 수 없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외곽 마을을 떠나야 했죠. 시내로 올라가던 길에 저는 또 이름 모를 해변에 들러 한참 바다를 바라봤어요.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겨우겨우 제주 시내로 향했죠. 


<서울에서는 왠지 이런 맛 못 볼 것 같아요.>


제주도에는 3대 해장국 맛집이 있다고 해요. 한식 중에서도 국물이 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해장국 맛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그래서 3대 해장국 맛집 중 한 곳인 ‘은희네 해장국’집에 들렀어요. 역시나 식당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었고, 20여 분을 기다리고서야 맛있는 해장국을 맛볼 수 있었죠. 해장이 필요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속이 시원하게 풀리는 것 같은 맛이더라고요. 최근 먹어본 해장국 중에 제일 맛있었던 해장국이었어요. 엄지가 절로 척! 하고 올라가는 맛이랄까요?^^



배부르게 점심을 해결하고, 근처에 있는 ‘제주 동문시장’에 들렀어요. 어느 지역에 가서든 그 지역의 시장은 꼭 들러봐야 한다는 저희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거든요. 시장 곳곳을 한참을 돌아다니면서 부른 배를 꺼트리고(;;) 여행 기념 선물을 살 겸 제주도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빵집에 들렀어요. ‘어머니빵집’인데요. 이름 참 정겹지 않나요? 정겨운 이름만큼이나 맛있는 빵과 쿠키를 팔고 있었는데요. 빵을 좋아하는 집 식구들을 위해 빵을 한 아름 샀고요, 뚱상 식구들을 위한 유기농 쿠키도 골고루 골라 보았답니다. 


<말 두 마리가 바다를 지키고 있는 이호테우 해변>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던 저는, 제주공항 근처의 ‘이호테우 해변’에 마지막으로 들렀어요. (끝까지 바다라니, 바다덕후같죠?) 이호테우, 이름이 참 이국적이지 않나요? 외국말 같은 이 지명은 이호라는 마을 이름에 제주에서 고기를 잡을 때 타는 배인 테우를 붙여 만든 이름이에요. 이호테우 해변에는 트로이 목마와 비슷하게 생긴 두 개의 말 등대가 서 있는데요. 독특하면서도 특이한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져요. 이곳은 제주공항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해변이기 때문에 제주에 도착하는 비행기가 육지로 점점 다가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저도 이호테우 해변에 잠시 머물면서 여러 대의 비행기를 목격했다지요!


<제주야 안녕. 안녕, 잘가.>


이호테우 해변을 마지막으로 아쉬운 발길을 돌려가며 제주 여행을 마무리했어요. 별다른 계획 없이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바다만 실컷 보고 왔던 여행이었지만 참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왔답니다. 8월 징크스에 마음을 좀 달래고 싶어 떠난 여행이지만, 생각이나 마음 정리는 둘째치고 제주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제주도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었답니다. 저가항공을 이용했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여비가 들지 않아 그리 부담이 되는 여행도 아니었어요. 제주도에 흠뻑 빠진 저는 이른 시일 내에 다시 한 번 제주에 들른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답니다. 징크스나 마음속 어두운 이야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눈부셨던 8월의 제주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기억으로 자리할 것 같아요. ^^